소태산 대종사의 불법의 시대화·생활화·대중화 정신은
계속 영원하게 진행되어야 할 우리들의 진로이다
지금 시대는 더 풀어내고, 번역에 공들일 때다

▲ 송천은 원로교무
시대를 읽는 눈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대각개교절 기념식에 일원상법어를 봉독한다. 한 예를 들면 이 원상의 진리를 '깨치면' 할 것을 '각(覺)하면'으로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 집 소유를 '오가(吾家)의 소유'로 표현한다. 대종사 생존시에 사용하던 의식 등은 시대에 따라 개혁한 부분이 많은데 교전 언어는 계속 불변인 것이 많다.

현대 지식인들도 알 수 없는 용어들이 깊은 성찰 없이 오래 유지되고 있는 일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지금 원불교100주년기념대회를 앞두고 있다.

소태산 대종사께서 주창하신 교법의 시대화·생활화·대중화가 현실에 잘 반영되어야 한다. 소태산 대종사의 시대화·생활화·대중화는 대종사 당대 때 끝난 것이 아니라 계속 영원하게 진행되어야할 우리들의 진로이다.

전통 불교가 새로운 불교가 되고 있다는 방증은 그들이 반야심경을 한글로 번역해 전국의 사찰과 법요행사에 적극 활용하도록 하고 있는 것에서도 볼 수 있다. 새 불교를 주장하는 원불교가 이러한 면에서 더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가톨릭은 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많은 변혁적인 정책으로 자체를 바꾸었다. 알다시피 그후 한국에서는 가톨릭은 개신교와의 형제화, 기도문의 한국화, 타종교와의 관계 개선, 성서 공동 번역 기타 많은 정책을 쏟아냈다. 그로써 가톨릭은 확대 재생산의 길을 크게 열었다.

교법 소프트웨어 개발에 관심 둬야

성품의 원리를 알아 사리연구를 하면 교법의 새로운 해석이 다양해진다. 소프트웨어의 지평을 여는 건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지혜를 굴리면 큰 빛이 보일 것이다. 소태산 대종사 당시의 〈불교정전〉에는 반야심경의 번역본도 한문 반야심경 바로 옆에 첨부되어 있다. 물론 지금은 현시대에 더 맞는 표현이 들어가야 한다.

지금 시대는 더 풀어내고, 번역에 공들일 때다. 〈정산종사법어〉 무본편 57장에서 세 딸을 출가시킨 사람이 각각 벼 한말씩을 주어 보냈는데 그 중 한 딸만이 그것을 종자삼아 많은 농사를 지어 잘 살았으며 공중에도 널리 전파하여 공익을 주었다는 법설처럼 번역도 대종사의 유업을 진전 확산시키는 유업이다. 사실 어느 종교나 경전을 중심으로 대중화 해서 교화를 끌고 나가는 것이 사실 아닌가?

이번의 시도는 하나의 시험작이다

교서편수절차와 수위단회의 의사결정에 따라 결정될 것이니 그것은 당무처에서 알아서 할 일이다. 이것은 이 분야의 도움을 위한 하나의 조력으로 생각한다. 이 번역본을 작성하면서 아직 원불교에 최근 이러한 일이 적었으므로 새로운 인식이 들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이러한 분야에 여러 노력이 더 어우러져서 풍성하고 희망찬 원불교를 만드는데 한 도움과 경사들이 나타나는 조그만 계기라도 되었으면 싶다.
▲ 원기20년 4월 중앙총부 대각전에 봉안된 법신불 일원상.

<일원상서원문 한글 번역문>

일원은 말과 글의 분별이 끊어진 입정처요, 있음과 없음을 초월한 삶, 죽음의 출입문 즉 궁극자인 바, 천지 부모 동포 법률의 본원이요, 모든 부처님과 성현, 범부와 중생의 성품으로, 능히 불변의 진리와 변화의 진리를 이루었으니, 불변으로 보면 항상 없어지지 아니하는 여여한 무량세계가 전개되었고, 변화로 보면 우주의 성주괴공과, 만물의 생노병사와, 네가지 생령들의 마음과 몸 작용을 따라, 여섯 길로 변화를 시켜, 혹은 진급으로, 혹은 강급으로, 혹은 은혜로부터 해로움으로, 혹은 해로움에서 은혜로, 이와 같이 무량세계를 전개하였다.

이에 우리 어리석은 중생은, 이 법신불 일원상을 체 받아서, 마음과 몸을 원만하게 수호하는 공부를 하며, 또는 일과 이치를 원만하게 아는 공부를 하며, 또는 마음과 몸을 원만하게 사용하는 공부를 지성으로 하여, 진급이 되고 은혜는 입을지언정, 강급이 되고 해독은 입지 아니하기로서 일원의 위력을 얻도록까지 서원하고, 일원의 체성에 합하도록까지 서원함.

-부연설명
▷'궁극자'는 동서양의 모든 종교와 사상을 회통할 수 있는 적합한 단어이다. 하나님도 부처님도 법신불도 인류 시민사회에서 회통할 수 있는 사실적인 개념이다.

궁극자는 원불교에서 말하면 곧 일원상이다. 입정처만 가지고는 일반에게 그 내용을 잘 전달할 수 없으므로 궁극자의 명칭이 도움이 된다. 삶도 죽음도 궁극자와 연관된다. 따라서 교리도에서도 유무를 초월해 있는 삶과 죽음의 근원으로 일원상을 연관시키고 있다.

▷'제불조사'를 부처님과 성현의 개념으로 표현했다. 더욱 포괄적이고 적절하다.

▷'본원이요'는 궁극자의 표현과 같다. 독일태생 신학 거인 폴 틸리히(Paul Johannes Tillich)는 종교란 '궁극적 관심(Ultimate concern)'이라고 말했다. 대종사께서는 성리(性理)를 밝히지 않는 종교는 참 종교라 할 수 없다고 했다. 궁극자는 궁극적 존재를 말하는데 영성과 본원 존재를 통합한다 이는 원불교의 사상을 밝히는데 중요하며, 앞서 밝혔듯이 일원상과 통해진다. 궁극자(궁극적 존재, Ultimate Being)는 원불교 사상을 밝히는데 필수적인 부분이 될 것으로 이해한다.

▷'유상과 무상'을 불변과 변화로 한글화 했다. 불변과 변화는 그 표현이 아주 쉽다고 생각했다.
▷'사생(四生)'이란 것은 네 가지 생령들로, 육도(六途)는 여섯 길로 표현했다.

<반야바라밀다심경 한글 번역문>

관자재보살께서 깊은 반야바라밀 공부를 할 때에 업장 몸인 오온이 다 빈 것을 비추어 보시고, 일체고액을 넘으셨다. 사리자야 나타난 색이 텅 빈 공에 다르지 않고, 텅 빈 공이 나타난 색에 다르지 않으니 즉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다.

오온이 다 그러하다. 사리자야, 이 모든 법은 본래 텅 빈 형상이니, 생기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으며, 때 묻지도 않고, 조촐하지도 않으며, 더하지도 않고, 적어지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텅 비어 있는 공 가운데서는 오온의 집착이 소멸되었으므로 본연 청정이며, 눈과 귀, 코와 혀, 몸과 뜻도 다 비게 된다. 색과 소리, 냄새와 맛, 부딪침과 모든 법도 없으며, 눈 경계, 의식 경계, 무명 경계도 없고, 무명 자체도 없으며, 무명이 없어졌다는 생각도 일으키지 않는다. 늙음과 죽음도 없고, 늙음과 죽음을 초월했다는 것도 없으며 네 가지 초전법문의 고와 집과 멸과 도도 없고, 지혜도 없고, 또한 무엇을 얻었다는 것도 없다. 얻은 바가 없으므로 보살이 이 반야바라밀다 공부에 의지하여 마음에 걸림이 없고, 공포심도 놓아버렸다. 이에 따라 마음의 뒤집힘과 혼돈을 멀리 떠나서 마침내 열반의 참 본원에 들게 되며, 삼세 모든 부처님이 다 이 반야바라밀다 공부에 의지하여 위없는 큰 도를 얻었다. 그러므로 알라. 반야바라밀다는 크게 신비한 주문이요, 크게 밝은 주문이요, 위가 없는 주문이며, 등위를 말할 수 없는 주문이다. 능히 일체 고통을 제거하며, 진실하여 헛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주문을 밝힌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제 사바하(3창)

-부연설명
반야바라밀다심경은 상당히 많이 한글로 보편화 되어진 상태이기는 하나 여러 가지로 설명되고 있다.
여기서는 ▷'오온(五蘊)'을 '업장몸'이라 표현했다.

▷'오온이 다 그러하다'는 말로 긴 설명을 줄였다.

▷처음에 색(色)을 현상이라 생각하기도 했으나, 현상은 오온의 정신현상까지 포함되어야 하므로 색을 현상이라 번역하는 것은 무리라고 보았다.

▷'공(空)'을 텅빈 공이라 표현했다.

의견을 나눴던 원로, 원불교신문사, 총부 임원, 원광대학교 교수 등 모든 관계자 여러분에게 감사를 드린다.

정리=안세명 기자 asm@wo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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