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덕찬 교무 / 청해진다원
우리나라의 최남단이며 지금은 연육교로 이어져 육지가 된 완도 초입의 불목(佛目)리에 자리한, 옛 지명이 은선동(隱仙洞)이라 불렸던 청해진다원! 그 규모가 약 99만㎡에 차밭만 9만9천㎡이다. 그 경관 또한 얼마나 좋은지 별유천지비인간을 절감하고도 남는다.

새벽 안개가 피는 날이면 그 속에 안겨 헤아리기 어려운 깊은 해인(海印)에 들고, 슬그머니 부끄러운 듯 소리없이 노루가 선보하고, 흑두루미는 허공을 가르며 선무를 한껏 뽐낼 때, 질세라 까투리와 장끼가 자잘거리며 요란스레 춤추고, 이름 모를 산새들은 저마다의 화음으로 환상의 판타지를 연출하는 이곳에, 더불어 가득 피워내는 아름다운 차향(茶香)이 있다.

그러나 이곳은 아직도 손길이 닿지 않은 곳으로 차밭이라기 보다는 밀림을 방불케 한다. 온갖 알 수 없는 기화요초에 넝쿨식물들이 온 산을 치렁치렁 감고 있고, 잡초와 잡목 속 차밭은 모양조차 찾기 어려운 곳이 아직도 지천이다. 그래도 한 옹큼의 차를 만들려면 찻잎을 따야 하고, 차를 따려면 차 따는 이가 들어갈 수 있는 차밭골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 직전부터 시작되는 것이 바로 풀과의 전쟁이다. 풀을 이겨내지 못하면 차밭이 묵어 버리기 때문이다. 벌써 그런 형국에 놓여 있다.

이른 아침부터 예초기를 메고 나서면 초저녁까지 풀속에서 살아야 한다. 그렇게 50여 일을 해야 한 번의 제초 작업이 끝난다. 그리고 다시 처음자리에 오면 새로이 작업을 해야 하는데, 최소 이렇게 네 차례는 해야 한다. 혼자하다 보니 그렇다. 제초작업하고, 마을 할머니들을 모셔다가 찻잎 따고 혼자서 차 만든다. 주말이면 정토가 쉬지 못하고 달려와 손을 보태지만, 평소 한 사람만 더 있어도 조금은 수월할 텐데. 이리되고 보니 양도 적고 제대로 만들기가 쉽지 않다. 이전에도 그렇게 해 왔을 터이다.

그 동안은 어찌될지 모르니 어느 누구에게도 말 한마디 못했는데, 다시금 그 일을 시작하려고 하니, 마음부터가 먹먹하고 답답해진다. 지난 1년 동안은 적응하고 파악하고 고민하면서 살아왔었다. 차 역시 그 성정이 강하여 여느 찻잎과 다르기 때문에 일반 제다법으로는 원하는 차의 맛과 향을 만들어 낼 수 없었다.

무려 38회 정도의 제다법을 실험했다. 이곳 차의 성정에 가장 맞는 제다법을 찾기 위해서였다. 완벽한 방법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러나 나름 다른 맛과 향에 뒤지지 않을 만큼의 제다법은 찾은 것 같다. 그리하여 가장 먼저 종법사전에 올렸고, 마침 5월 차철에 찾아준 좌산상사는 휘호를 내려 주며 "철산다향 숙승개오(哲山茶香 宿僧開悟)"라, 철산은 철산농원으로 청해진다원을 이름하고, 이 한 잔의 차향으로 숙승(공부인)들이 모두 깨어나 깨닫기를 축원해 준 법문이었다. 또한 그럴 수 있고, 그러리라는 희망과 함께 수기를 천명해 줬다.

이곳 청해진다원은 우리 교단에 하나밖에 없는 대단위의 차밭이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차가 우리 교단을 대표할 만한 명품 브랜드로 만들어 내는 것이 작은 소망이다. 올해는 대량으로 생산하여 널리 보급할 예정이다.

해풍과 지리적 환경여건이 약용작물이 자라기에 좋은 천혜의 조건을 갖춘 곳이라는 특징을 활용하여, 차의 종류도 다양한 약용차들을 더 만들어 낼 계획이다. 그 종류는 쑥차와 꾸지뽕잎차, 감잎차, 비파잎차, 국화차, 그리고 만들자마자 완판된 작설차와 발효차는 맛과 향이 보다 더 부드럽고 강하게 대량으로 만들 예정이다. 이 작업에 함께 숙식하고 사상선으로 활선하며 다선일미의 진미를 느끼면서 함께하고 싶은 인연들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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