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세명 기자
창작과비평 창간 50주년을 맞아 시도되고 있는 명사특강 '공부의 시대'에 참가했다. '공부'란 주제에 가슴이 설레기도 했지만, 우리시대 지성들과 간격 없이 대화할 수 있는 밀착형 토크가 매우 인간적이었다.

'공부하는 사람이 되자. 나를 위한 공부, 우리를 위한 공부'의 3가지 화두 속에 7명의 명사들은 '무엇을 공부할 것인가?'를 진솔하게 풀어낸다. 페이스북을 통해 강좌 당 2000명 이상 신청하고, 추첨을 통해 겨우 100여 명이 참석할 수 있다.

왜 이렇게 우리는 공부에 갈증하는가? '진짜 공부를 하고 싶다'는 참석자들은 살아남기도 벅찬 시대, 고민이 사치가 돼 버린 이 시대에 '공부만이 살길'이라 말한다.

최근 '장영실'과 같은 역사 사극을 통해, '왜 조선조 세종시대에 창의적 인재가 유독 많았을까?' 궁금해졌다. 광운대 경영학과 이홍 교수는 리더들의 '창조습관'을 말한다. 리더가 직접 나서서 창조에 앞장서는 것이 아닌, 주위 사람들이 창의적이 되도록 하는 사고 습관이 조직의 혁신동력임을 강조했다. 특히 그는 '박스사고'를 경계했다. 마치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경험'이란 박스는 밖을 보지 못하고, 받아들일 수 없게 한다.

이 교수는 박스 밖을 보는 세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하나는 창조적 요동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 둘은 창조적 다양성을 수용하는 것, 셋은 창조적 마찰을 활용하라는 것이다. 세종은 이를 통해 공부를 확충했다.

실제로 세종의 일과를 분석해 보면, 새벽5시 기상 후 오전9시에서 11시까지 윤대(輪臺)를 했다. 고위급과의 독대가 아닌 하급 관료들과 진솔히 대화했다. 이를 통해 나라의 문제를 냉철히 인식했다. 오후 1시부터 3시까지는 경연이다. 신하들이 임금을 가르치는 자리지만 나이 든 대신들과 집현전 젊은 학자들을 동시에 참여시켜 마찰을 일으켰다. 밤 10시부터 12시에는 구언(求言)을 했다. 백성들로부터 직접 듣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으로 세종은 자신의 박스습관을 깨뜨렸고, 창의적 인재가 등용됐다.

공부문화·적공풍토가 교단 내부로부터 터져 나와야 한다. 우린 오래전부터 '사람타령'에 떨어져 있다.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판화가 이철수씨는 대종경 판화전을 마치고, "정전과 대종경이란 지혜서가 있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얼마나 다행인가"라고 반문했다. 다시 솥을 거는 심정으로 재가출가가 함께 쪄지는 교전운동이 결사돼야 한다. 우리에겐 이미 교당과 교화단이란 공부조직이 너무나 정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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