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효천 교무 / 군종교구
하루 일과를 마치고 잠자리에 누웠다. 추운 날씨에 찬바람이 느껴져 창문을 바라보니 굳게 닫혀 있다. '오늘 날씨가 춥다더니 창을 통해서도 한기가 느껴지는구나'하며 잠에 든다. 다음 날 개운하지 않게 아침을 맞이하고 하루를 보낸 뒤 저녁에 똑같은 상황을 느껴 창문으로 다가가 자세히 살핀다.

닫혀 있긴 하지만 의아한 생각에 문을 점검해 보니 약간의 좁은 틈이 있었다. 다시 문을 닫아 꼼꼼히 틈새가 생기지 않게 잠갔다.

바람 새어나오는 것이 확실히 줄어든 창문의 상태를 보며 나의 마음을 비교해 본다.

창문의 역할은 실내 생활의 불필요한 것들의 차단이다. 비나 눈이 실내로 들어오는 것을 막아주고, 외부의 추운 바람을 막고 실내의 따뜻한 온도는 지켜준다.

우리는 교법의 울타리 안에서 외부의 경계를 당했을 때 나의 마음을 지키려 노력하며 생활한다.
따라서 큰 죄업을 짓고 살지는 않는다. 이것은 창문이 외부의 눈, 비와 바람을 막아주는 것과 비슷한 경우로 볼 수 있다.

겉으로 보면 외부의 죄업에 대한 경계에 굳게 닫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게 되면 내 마음의 좁은 틈이 생겨 경계를 대할 때 안일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없는지 생각해본다.

내 마음의 창은 외부의 경계를 당하여 굳건히 잘 막고 언제나 마음의 창에 또다시 조그마한 틈이 생기지는 않았는지 주의심을 갖고 세밀히 살필 줄 아는 것이 마음공부하는 우리의 자세가 된다.

마음공부라고 하는 것은 큰 경계만 잘 돌리면 된다고 생각했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기회가 되었다.

소태산 대종사는 급히 밥을 먹으며 자주 말을 하는 제자에게 이런 가르침을 주신다. "사람이 밥 하나 먹고 말 한 마디 하는 데에도 공부가 있나니, 만일 너무 급히 먹거나 과식을 하면 병이 따라 들기 쉽고, 아니 할 말을 하거나 정도에 벗어난 말을 하면 재앙이 따라 붙기 쉬운 지라, 밥 하나 먹고 말 한 마디 하는 것을 작은 일이라 하여 어찌 방심하리요.

그러므로, 공부하는 사람은 무슨 일을 당하든지 공부할 기회가 이르렀다 하여 그 일 그 일을 잘 처리하는 것으로 재미를 삼나니 그대도 이 공부에 뜻을 두라"(〈대종경〉 수행품 32장)

보통 진리를 깨친 성자들은 매우 큰 틀에서만 생각하고 행동을 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 큰 자리를 깨친 높은 분들도 반드시 이 현실의 문제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자리에서, 어떻게 진리적인 삶을 살 것인가? 어떻게 사실적인 훈련을 통해 행복한 삶을 영위해 갈 것인가 하는 문제로 돌아오게 된다. 따라서 이런 분들은 밥 하나 먹고 말 한 마디 하는 것도 모두 공부의 기회로 바라보게 된다.

우리 또한 이 분들처럼 살아가자. 내 마음을 공부한다는 것이 멀리 있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현실 속에서 챙길 수 있는 모든 행동에서 나의 마음을 바라보고 나의 마음을 알아 나의 마음을 올바르게 사용하자는 것이다. 조그만 틈이 생긴 창문이 나에게 일깨워준 가르침이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