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궁동 사람들' 프로젝트로 지역과 소통
2011년 대한민국공간문화대상 '대통령상'

▲ 이색 전시공간인 대안공간 눈 & 예술공간 봄 갤러리.
수원 화성 성곽길에 들어서면 좁고 비뚤한 골목들이 마치 빛바랜 동네를 연상케 한다. 한때 조선의 신도시였던 이곳, 세월의 풍화를 겪으며 이제 구도시가 됐지만, 낮은 담장 너머로 사람냄새 물씬 풍길 것 같은 마을에선 정겨움 마저 든다. 구도시 안에는 정조가 머물던 '행궁'이 있다. 행궁동은 수원의 전통 도심인 화성 안 지역 가운데 12곳의 마을을 통칭하는 이름이다.

행궁동에는 숲과 나무와 구름이 어우러진 들판을 자전거로 내달리며 웃는 남녀와, 보리밭 앞에 서 있는 파란색 자전거, 술상을 앞에 놓고 훈훈한 수다를 풀고 있는 젊은 친구들이 벽화 속에 자리해 있다.

사람의 얼굴 같기도, 꽃 같기도, 나비 같기도 한 묘한 선이 어우러져 있는 건물은 마치 하나의 거대한 캔버스가 된다. 이곳이 '예술공간 봄'이고, 같은 건물에 '대안공간 눈'이 있다.

행궁동 예술마을 만들기

'대안공간 눈'은 수원이 토박이인 이윤숙 대표, 김정집 관장 부부가 주거공간을 개조해 만든 비영리 전시공간이다. 마을이 낙후되는 것을 지켜만 볼 수 없었던 이 부부는 40여 년 간 부모와 함께 기거하던 집을 개조했다.

부부가 마을 가꾸기 프로젝트를 시작한 건 2005년. 스스로에게 의미 있는 삶을 살아보자 생각하던 중, 김 관장이 먼저 아내 이 대표에게 제안을 해왔다. 마을을 위해 도움이 될 지역 공동체 프로젝트를 해보자고 한 것이다. 부부는 운영하던 입시미술학원을 과감히 팔고 집을 비영리 전시공간으로 내놓았다. 텃밭으로 쓰던 땅은 예술인들의 창작공간으로 개방, 그곳에 거주하는 예술인들과 함께 마을을 가꾸기 시작했다.

부부의 노력으로 대안공간 눈은 990㎡ 규모의 1,2전시실과, 작은 윈도우 전시실, 북마켓, 자기만의 방, 10여평의 아트샵 겸 카페, 소그룹 회의공간, 야외전시공간으로 꾸며진 문화플랫폼이 됐다.

대안공간 눈은 개관한 이래 현재까지 485회의 전시를 통해 350여 명의 작가활동을 지원해왔다. 신진작가를 발굴해 전시, 홍보, 리뷰, 창작공간 등을 무료로 지원해주고 있다. 또 새로운 골목문화를 위한 골목난장, 뒷마루 야단법석, 현대미술 쉽게 읽기 등이 이 공간에서 진행된다.
▲ Raquei Lessa Shembri(브라질) 작가의 Big gold fish. 금보여인숙 물고기로 유명한 작품이다.


행궁동(북수동)골목벽화

2010년 '이웃과 공감하는 예술프로젝트-행궁동사람들'은 국내외 입주 작가들의 기획전시와 함께 주민과 필요한 것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소소하게는 문패 만들기부터 벽화그리기, 경로당 어르신들의 솜씨 발굴까지 다채로운 움직임들로 꾸며졌다. 화성 성곽이라는 담장 안에서 살아가는 이웃들의 삶과 역사에서 예술적 영감을 얻어 작품으로 풀어내는 가치 있는 작업이었다.

무엇보다 주민 스스로가 창작 과정의 주인이 되는 환경 조성으로 공공의 삶에 생기를 부여하고자 기획됐다. 시각적으로 외부에 보여지는 것 뿐 아니라, 그동안 성곽복원에만 집중된 정책으로 인해 기대와 실망으로 활기를 잃어가는 행궁동 주민들의 마음에 희망과 사랑의 씨앗(눈)을 심어가는 작업이었다.

슬럼화된 행궁동에 생명의 싹눈을 틔우는 역할, 대안공간 눈이 마땅히 해야 할 역할이었다. 국내외 작가들과 마을 주민, 그리고 자원봉사자들의 활동으로 골목의 생기를 불어넣는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 2010년 이웃과 공감하는 예술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북수동 경로당할머니들. 작품명 그녀들의 꽃밭.

창작공간, 행궁동 레지던시

대안공간 눈의 10여 년의 성과는 주민들의 가치인정으로 지역자원이 된 행궁동 레지던시와도 함께한다.

행궁동 레지던시는 2009년 행궁길 주민, 수원의제, 대안공간 눈이 뜻을 같이하며 지역 활성화를 위해 유휴공간(철거예정건물)을 활용한 행궁동 역사문화마을 만들기 사업의 일환으로 시작됐다. 주민이 제안하고 운영하는 특별한 행궁동 레지던시는 한해 25~30명의 작가의 활동으로 행궁동에 문화예술을 피어오르게 만든 계기가 됐다.

대안공간 눈은 2011년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 대통령상을 받았다. 도시재생, 마을만들기의 탐방지로 수원의 명물이 된 것이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수원 화성 그리고 행궁동 사람들, 그 중심에 대안공간 눈이 변함없이 희망의 싹눈을 틔우고 있다.

미니인터뷰 | 대안공간 눈 이윤숙 대표

"모두 함께 행복하게 살고 싶다"

주민주도, 도시재생 마을 만들기의 성공사례를 일궈낸 대안공간 눈 이윤숙 대표(56). 그는 "수원 화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화성 복원과 문화재 보호정책으로 화성 안 사람들의 주거형태는 60~70년대 모습 그대로 낙후된 상태로 머물러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화성 복원에 많은 예산이 투자되는 것과 달리 행궁동은 모든 개발과 증축이 제한됐다. 그는 "젊은 사람들은 모두 떠났고, 남겨진 사람들은 개발과 보상에 대한 기대와 상실감으로 상대적 박탈감을 안고 살아가던 시기였다. 당연히 마을은 점점 슬럼화 됐다"고 말을 이었다.

"젊은 예술가들을 이곳에서 활동시키면서 마을의 변화를 가져오자는 생각을 했다"는 그는 비영리전시공간을 만들기 위해 살고 있던 집을 직접 개조했다. 늘 같은 마음이었던 남편이 갤러리를 먼저 제안했다.

"곧 보상받으면 허물어질 곳에 투자를 하느냐, 차라리 집을 허물고 다시 지으라는 등 주변의 얘기도 많았다"는 그는 "하지만 시아버님이 손수 지으시고, 시어머니와의 추억이 깃든 손때 묻은 이 집의 모습을 최대한 간직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부부는 비용을 아끼고, 발품을 팔면서 1년 넘게 주거공간을 개조하는 작업에 매달렸다.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고비 또한 여러 번 있었다"는 그는 "2~3년 운영하면 문 닫아야 되는 거 아닌가 여러 번 생각하기도 했다. 돈이 없었기 때문에 여름과 겨울 비수기 때는 냉 난방기가 없어서 갤러리 문을 닫기도 했었다"고 어려웠던 시기를 전했다. 제6회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 대통령상 수상으로 받은 상금을 그는 무엇보다 냉 난방기를 구입에 사용했다. 갤러리를 상시 운영하고픈 마음에서다.

"2010년 '이웃과 공감하는 예술프로젝트-행궁동사람들'이 선정돼 처음으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지원을 받았다"는 그는 "지역 시각예술에 대한 지원과 지역 활성화에 대한 대안을 제시했다는 점이 대안공간 눈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안공간 눈이 사람의 가치와 마을공동체의 의미를 심어주는, 그런 씨앗을 뿌린 곳이라는 의미다.

대안공간 눈은 방문객들의 모자이크 벽화체험으로 갤러리 벽면을 채워가고 있다. 행궁동 예술마을 만들기에 지역주민은 물론 방문객들도 함께 참여시키고픈 그의 아이디어다. 지금까지 총 5300여 개의 모자이크 벽화가 갤러리 벽면에 채워졌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재미있고 행복하게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한 그는 "나만 행복하면 절대 행복해질 수 없다. 주변의 삶이 행복해야 내 삶도 같이 행복해지는 법이다. 모두 함께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감했다. 이 대표의 마음이 대안공간 눈에 그대로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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