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윷놀이는 우리 전통민속놀이로써 설날에 주로 행해지는 놀이다. 정월 초하루부터 대보름날까지 이어진다.
세시풍속은 해마다 같은 시기에 반복되어 전해오는 주기전승의례(한국민속대백과사전)로, '농경의례'라 불릴 만큼 우리의 주업이던 농사와 관련해 지켜져왔다.

농사를 준비하는 봄에는 이월초하루, 삼짇날, 한식 등이 있으며, 본격적으로 농경을 시작하는 여름에는 초파일, 단오, 유두와 삼복 등을 지킨다. 한 해 농사를 마무리 짓는 가을에는 칠석과 백중, 추석, 중앙절이 있으며, 일년을 마무리하며 하늘에 감사를 드리는 겨울엔 동지와 섣달그믐을 챙겼다.

수고를 위로하고 정 나누는 공동체정신

명절과 24절기 등으로 지켜지는 세시풍속은 계절에 맞춰 음식으로 사시사철 변화하는 자연의 섭리를 느끼게 하는 교육의 현장이었다. 정월 초하루 설날은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고 어른에게 세배를 올리며 감사와 공경심을 심어주었고, 정월대보름은 달맞이, 다리밟기 등으로 모든 마을 사람들이 협력과 소통을 다졌다.

설날, 단오, 추석과 함께 4대 명절 중 하나인 한식은 동지 후 105일째 되는 날로 긴 겨울 얼었던 땅이 녹아 파손된 묘소에 다시 떼를 입히고 차례를 지내는 날이다. 양기가 가장 왕성한 음력 5월5일 단오는 모내기를 막 끝내고 곧 바빠지는 농사철을 대비해 잠시 휴식을 취하는 시기다. 단오를 여성들의 명절이라고 부르는 만큼, 창포물에 머리를 감고 그네를 뛰며 집안의 평안과 오곡의 풍년, 자손의 번창을 기원했다.

민족 최고의 명절 추석은 햇곡식으로 차례를 지내며 한 해의 풍성을 감사하는 날로 강강술래, 줄다리기, 지신밟기, 가마싸움 등이 펼쳐졌다.

10월은 각종 민속신앙의 행사가 집중된 상달로, 각 가정에서 길일을 잡아 고사를 지냈다. 성주신, 조왕신, 터주신, 삼신, 우물신 등 가신에게 시루떡을 올렸으며, '장독대에 올라서서 지붕이 보이는 집엔 모두 고사떡을 돌린다'는 미풍양속으로 그간의 수고를 서로 위로하고 정을 나누는 공동체정신을 실천한다.

전북의 노두놓기와 제주의 신구간

세시풍속은 해당 지역의 색을 드러내는 지역적 토속문화가 되기도 한다. 자연환경과 위치, 타 지역과의 연계성에 따라 그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세시풍속도 전해져 내려온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곡창지대인 전라북도는 평야지대가 발달했으며 큰 자연재해가 발생하지 않아 주민들의 품성이 착하고 온순하며 느리다. 이에 당장의 먹고사는 문제보다는 더 나은 공동체를 추구하거나 복을 쌓는 차원 높은 세시풍속이 눈에 띈다.

순창이나 익산 등 전북 북부의 '노두놓기(노지놓기)'는 마을 주민들을 위한 선행으로 복을 쌓는 전북의 특별한 세시풍속이다. 정월 열나흩날 노둣돌, 즉 하마석을 마을 개울에 놔 일종의 징검다리를 만드는 풍습으로, 무거운 바위나 돌와 흙을 넣은 가마니 등을 놓는다.

특이한 문화가 많은 제주도에서는 지금도 '신구간'이 지켜진다. 음력 정월 초순경을 전후해 집안의 신들이 천상으로 올라가 비어있는 기간이라는 뜻으로, 이 기간에 이사나 집수리 등 평소 금기되던 일들을 할 수 있다. 올해는 1월26일부터 2월1일로, 이 기간에는 제주의 모든 이삿짐센터나 집수리점, 가구 및 가전제품 등이 성황을 이룬다.

개신교와 불교의 통알, 법고놀이

제주의 신구간이 다신이라는 토착신앙에 기반한 문화인 것처럼, 우리나라에 유입된 종교들은 전통적인 세시풍속과 결합해 다양한 모습을 보여왔다.

한국 개신교의 경우 새해심방에서부터 성탄절에 이르기까지 20개에 이르는 전통적인 세시풍속이 우리나라에서는 11개로 지켜지고 있다. 숭실대학교 이복규의 '한국 개신교의 세시풍속(2015)'에 따르면, 가장 큰 명절인 설과 추석을 개신교에서는 세시풍속화하지 않으며, 그 기간에는 교회 행사를 쉬는 등의 존중을 한다고 밝히고 있다.

불교는 우리나라에 전해진 지 오래된 만큼 민간문화와 습합된 사례가 많다. 새해 첫 세배인 통알은 사찰에서 삼보를 향해 일체 중생의 평안과 행복을 발원하는 '삼귀의'의 의미를 담고 있으며, 일부 사찰에서는 새해 첫 자리를 '통알법회'로 봉행하기도 한다.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불교 세시풍속으로는 '법고놀이'가 있다. 설날 스님들이 마을에 내려와 법고를 두드리고 염불하는 것으로, 이때 스님들이 사찰에서 만든 떡 '승병'을 각 가정에 나눠주는 풍습이다. 또한 '부처님오신날'에는 염불에 사용한 콩을 나눠 먹는 '결연두' 풍속도 있었다.

원불교의 절기는 4축2재로, 대각개교절은 종교 역사상 유례없이, 창시자의 탄생일이 아닌 깨달음을 얻은 날을 기념한다. 대각개교절에는 교당들에서 인근 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보은봉공활동을 펼치는데, 기념식 외의 풍습이나 문화가 통일되지는 않았다. 추석이나 추수감사절 같이 지난 한 해와 선조들에 대한 감사를 담은 명절대재는 감사와 추원을 보본하며 한 해를 마무리하는 자리다.

여름휴가, 지역축제 등으로 현대화

명절을 제외한 24절기는 이제 뉴스 및 달력에서나 볼 수 있는 단어가 됐지만, 전통적인 세시풍속은 여전히 현대사회에서 바뀐 모습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설날의 풍속이던 윷놀이는 세시로서보다는 평소에도 즐기는 전통놀이가 됐으며, 씨름대회나 연날리기 등도 시간과 공간의 제한 없이 다양하게 행해지고 있다. 윷으로 점을 치던 윷점은 연초에 보는 토정비결로, 삼짇날 무렵의 화전놀이는 학생들의 봄소풍, 벚꽃놀이 등으로 변용됐다.

단오날에 쑥떡을 먹는 풍습도 각 가정에서 전해져오며, 유두명절 물맞이는 바다나 계곡으로 떠나는 여름휴가로 지켜진다. 또한 강릉 단오제나 청도 소싸움 등 전통적인 세시풍속을 선택적으로 현대화한 축제들은 이제 지역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발돋움했다.

이러한 축제처럼, 세시풍속에 내재된 농경문화와 공동체 정신을 지켜가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남산골한옥마을이나 전주한옥마을, 안동한옥마을 등에서는 설이나 추석 단오, 동지 등 전후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모두가 함께 잘 살자는 세시풍속의 상생 정신에 따라, 어려운 이웃에게 팥죽이나 떡국 등을 나누는 따뜻한 기회로 쓰이기도 한다.

세시풍속을 보존하며 세상과 공유하는 전통마을도 늘고 있다. 경북 칠곡군 매원전통마을은 500년 전통의 세시풍속을 전승해 문화재청의 '생생 문화재사업'에 3년연속 선정되기도 했다. 매월1회 한 해 12마당으로, 정월에는 달불체험, 2월에는 영등할매 쑥덕잔치, 3월에는 삼짇날 화전잔치 등 세시풍속을 특화시킨 스토리텔링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세시풍속 전통마을 발굴사업의 일환으로 공주 계룡면의 칠석제, 정읍 진산마을 당산제, 강릉 망월제, 강진 해신제, 완주 창포마을 정월대보름 등이 선정, 세시풍속의 원형을 찾으며 문화관광 콘텐츠로 발전시키는 여정을 이어가고 있다.

이처럼 방방곡곡에서 앞다투어 되살리려 노력하는 세시풍속은 이미 잃어버린 옛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론 현대인의 삶에서 변화된 모습으로 여전한 영향을 주고 있다. 불신과 탐욕이 팽배한 차가운 시대, 농경사회와 대가족제도, 지역공동체의 따뜻한 정과 상생을 담은 세시풍속의 형태는 변하더라도 그 정신만큼은 더욱 필요하다.
▲ 신윤복의 작품 '단오풍정'에는 창포물에 머리감기, 그네타기 등 단오의 세시풍속들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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