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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 / 서울교구 상계교당 최용문 교도
신앙인 / 서울교구 상계교당 최용문 교도
  • 강법진 기자
  • 승인 2016.02.05
  • 호수 178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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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문사경 80회…매일 대종사 만난다
법문사경 원불교100주년기념대회까지 85회 목표
공부 할수록 세상사가 다 나를 위해 존재함 느껴
쉼 없는 적공으로 5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인터넷 법문사경을 해온 상계교당 심산 최용문(63·審山 崔勇文) 교도. 이를 대변하듯 그의 법문사경 랭킹 순위는 1월말 기준, 전국 4위와 30일 누적 전국 1위를 달리고 있다. 그가 지금까지 완료한 사경 횟수만 80회, 원불교100주년기념대회 전까지 85회에 도달하는 것이 그의 목표다.

"개교 100주년에 맞춰 100번 쓰기로 마음먹었는데 중간에 〈대산종사법어〉가 삽입되면서 계획이 미뤄졌어요. 하지만 더 오래 꾸준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욕속심도 놓아지고 사경하는 그 순간을 즐기게 됐어요."

무슨 일이든 한번 하기로 하면 그 목표점까지 쉬지 않고 가야만 직성이 풀리는 그에게 법문사경은 그야말로 '취향저격' 교리공부였다. SK그룹에서 재무담당을 맡아 30년간 일해 온 그는 5년 전 정년퇴직 했다. 초창기에는 밤 11시가 되어야 귀가할 정도로 바쁜 직장생활을 해온 그였기에 정년퇴직 후 보내야 했던 시간은 그에게 큰 화두였다.

"퇴직 후에도 중소기업에서 재무 컨설팅을 요청해 오고 있지만, 평균 3개월을 넘기지 않는 조건으로 일을 해주고 있어요. 그 외 시간에는 등산을 하거나 서울역 노숙인 밥차 봉사, 보육원 봉사활동을 했어요. 그러다 스님의 삶이 궁금해서 일주일간 템플스테이를 다녀왔는데, 우리 교법을 제대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 교당에서도, 훈련에 가서도 교도들의 공부하는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 중 법문사경을 하는 타 교당 교도들의 이야기에 솔깃했다는 그는 사경을 시작했던 2010년 10월28일부터 현재까지 매일 같이 틈만 나면 법문사경하기를 잊지 않았다. 그 결과 지난해 원불교 100년성업회 위원총회에서 4년 개근상을 받았다.

"법문사경을 1회 완료하면 총부(정보전산실)에서 사경 컵을 보내줘요. 처음에는 제가 쓰다가 하나둘 모아지면서 아들에게 하나, 딸에게 하나, 교도들, 주위 친척들에게 하나씩 나눠 주면서 법문사경을 권장했어요. 그게 인연이 되어 상계교당은 현재 65명이 법문사경을 하고 있답니다."

법을 전하는 일이 어디 말로만 된다 했던가. 그가 열심히 적공한 결과 받은 선물을 주위 인연과 나누고, 그렇게 맺은 인연들에게 매일매일 자신의 공부 진도를 낱 없이 보여주니 말없는 교화가 따로 없다. 그래서 그가 좋아하는 법문도 〈대종경〉 요훈품 14장이다.

그는 "대종사께서 다른 사람을 바루고자 하거든 먼저 나를 바루고, 다른 사람을 가르치고자 하거든 먼저 내가 배우라고 하셨다. 그러면 나의 구하는 바를 다 이루는 동시에 자타가 고루 화함을 얻는다고 말씀하셨다"며 사경을 시작하며 마음에 표준으로 삼는 법문이라 소개했다.

지금은 아들딸 모두 반듯한 직장을 얻고, 자신도 법문공부에 재미를 붙여 날마다 행복이 진진하지만, 사실 그에게는 일찍이 어려운 경계가 있었다. 아이들이 사춘기를 넘기지도 못했는데 16년 전, 부인이 병으로 열반한 것이다. 결혼 전 시어머니를 여의고 병상에 누운 시아버지를 간호하다 병을 얻게 된 부인에게 그는 내내 무거운 마음으로 살아야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어머니 유학 갔다고 생각하고 우리가 1/3씩 맞들고 살아요"라는 딸아이의 말에 그는 정신이 바짝 들었다. "그래, 진리가 나에게 큰일을 맡기려고 이런 시련을 주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돌아보면 아내의 도움이 컸어요. 직장에서 밤 10시에 퇴근해서 오면 4가족이 모여 1시간씩 대화를 나눴거든요. 그 중심에는 아내의 기다림이 있었고, 일원가족이라는 신앙의 힘이 자리했죠. 그래서 이 법 만난 것에 감사해요."

그가 정년퇴직을 하고 인터넷 법문사경과 목요교리공부방, 천일기도에 정진하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금평교당 창립주인 최도화 선진이 집안 어른이 그는, "어릴 적 종교는 원불교만 있는 줄로 알았고, 내가 배운 첫 노래가 원불교 교가였다"고 할 정도다.

"공부를 할수록 세상사가 다 나를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느낀다. 은혜 아닌 것이 하나도 없다. 예전에는 정상을 목표로 산을 올랐지만 지금은 오르는 과정 중에 보이는 나무, 풀, 물소리, 바람소리가 너무 소중하고 감사하다. 법문사경을 하면서 보이지 않는 것도 볼 줄 아는 눈을 얻게 됐다." 눈에 보이는 세계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훨씬 더 크고 넓다는 것을 알게 된 그. "퇴직 후 법문사경을 하게 된 것은 내 인생의 큰 전환이었다"며 "대종사님을 직접 대면하지는 못하지만, 이것만은 확실해요. 법문을 공부할 때라야 대종사님을 만날 수 있고, 중생의 티를 벗고 불보살의 길에 들어설 수 있어요."

그는 올해 지난 10년간 맡아왔던 상계교당 교도부회장직을 놓고 단장을 맡기로 했다. 세대교체를 위해 뒤에서 회장단을 서포트 해주겠다는 계획에서다. 10년 동안 교당 헌공금 관리며 한 해 예·결산을 설계하고 관리해 주다보니 교당 살림이 눈에 훤하다는 그. 이제는 젊은 교도들에게 그 일을 넘기고, 그는 건강한 교당, 행복한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데 힘을 보태고 싶다고 한다. 소모임 활성화로 사랑방 같은 교당 만들기, 가례의식문화 정착으로 교당 수익구조 정착이 그 목표다.

문득 그가 25살에 만들었다는 가훈이 뇌리를 스친다. "정직하고 신의 있는 사람이 되자.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자. 작은 일에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자. 시간과 건강을 잘 다스리는 사람이 되자." 수많은 경계 속에서 그 마음을 추어잡고 살아온 인생이 벌써 40년도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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