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문사경으로 묵은 업장 녹여
1분 선, 1분 기도로 대중 잡는 공부
남편은 나를 비추는 거울

▲ 한인봉 교도/서전주교당
화학비료를 권장량의 1/3만 쓰는 무농약에서, 농약과 화학비료를 전혀 쓰지 않고 키운 농산물을 전환기라 한다. 이 전환기는 작물에 따라 1~3년이 지나야 원래 토양의 본질을 회복하게 되고 미생물 등 자연적인 재료로만 재배한 농산물은 유기농인증을 받는다. 손쉽게 내 마음, 남의 마음을 맘대로 쓰려했던 묵은 업장을 풀어내고 주의심으로 유무념대조 공부를 통해 본성을 회복하려는 나의 과정과 비슷해 전환기에 비유해봤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교당에 다니기 시작해 중학교 1학년 때 입교했다. 왕성한 학생회·청년회 활동을 하다가 일반으로 올라갔는데 아이 데리고 법회보기 힘들다는 핑계를 대고 잠자는 교도로 전락했다.

원기96년 어느 날, 전주교당 이유복 교도의 소개로 인터넷 법문사경을 알게 됐다. 그 당시 나는 육아에 많이 지쳐 있던 상태였다. 결혼 후 첫아이를 낳고 둘째를 임신하면서부터 몸이 힘들어지자 약자이면서 늘 곁에 있는 큰아이한테 화풀이를 많이 하게 됐다. 버럭버럭 화를 자주 내는 내 모습을 보며 내가 싫어했던 부모님의 모습이 떠올랐고, 버럭 화내는 모습을 드러내게 한 건 큰아이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사랑하는 아이인데 왜 큰아이만 보면 화가 날까? 의문을 갖던 차에 법문사경을 접하게 됐다.

자판 실력이나 늘려 볼까하고 별 기대 없이 사경을 시작했는데 오랫동안 멀리했던 교전을 정전부터 써나가며 교리를 접하자 새로운 느낌이 들었고, 특히 일원상서원문을 쓸 땐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 날 이후로 집에 있던 교전도 펼쳐보게 되고 책꽂이에 전시만 해놨던 원불교 책들도 보게 됐다. 그 중에서 권도갑 교무의 <행복을 여는 마음공부>를 읽었다. 그때의 감흥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맑고 밝은 자성에 자기를 부정하고 혐오하는 어두운 생각들이 가려 있으면 그 때문에 속이 상하고 화가 나는 것이다. 경계는 다만 나의 마음을 보여주는 거울일 뿐, 마음을 일으킬 힘이 없다. 결국 일어나는 마음은, 어떤 마음이든지 내가 만들고 있는 것이다."

경계는 없애는 것으로 잘못 인지하고 있던 나를 발견하게 됐고, 나에 대한 어두운 생각 때문에 상대도 어둡게 봤다는 걸 알게 됐다. 더 상세히 공부하고 싶었고, 내가 새롭게 알게 되는 것들이 맞는지 점검 받고 싶고, 일상생활에 대조해서 실천해 보고 싶었다.

법회에 다시 나가기 시작했고 교당에서 교화단 책자를 통해 유무념공부를 시작하게 됐다. 그때의 일기를 보면 유무념공부를 막 시작하려던 나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알고자 하는 마음이 큰 만큼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염려에 나의 만행을 스승에게 모두 꺼내는 게 부끄럽고 숨기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러다 보니 해오 얻는 기회를 잘 갖지 못했다. 상시일기 또한 교화단 마음공부 책자에 기록하는데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1년쯤 지나니까 띄엄띄엄 건너뛰던 날짜가 점점 적어지고 계문을 범한 횟수는 점점 늘어났다. 처음엔 다 범하지 않고 사는 듯했는데 알고 보니 몰라서 못 본 것이었다. 아만심을 보게 되니 시기심이 보였다. 교무님은 아만심, 시기심, 진심, 치심이 동시에 작용한다고 말했다. 그 마음 보는 공부에 재미가 붙었다.

1분 선, 1분 기도를 시작할 때는 대중잡기가 참으로 어려웠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하는지 기준 잡기가 힘들었다. 그러다 훈련감상담을 발표한 어느 교도의 생활 속 1분 선, 1분 기도 공부담을 듣고 나도 조석심고 시간, 식사시간, 운전하기 전, 컴퓨터가 부팅될 때에 1분 선, 1분 기도를 했다. 처음에 하루에 한 번 유념했던 것이 한동안은 5번으로, 몇 달 전부터는 8~9번 정도 챙겨서 하고 있다.

일상의 바쁜 마음을 멈추고 1분 선 1분 기도를 하고 난 후부터는 모든 일이 원만하게 해결되는 만족감을 얻게 됐다. 이 외에도 교화단에서 공동 유무념으로 정해 하고 있는 감사일기와 법문사경을 통해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경외심이 생기고 매일 놀라움을 경험하고 있다. 모든 것을 '하나로 보는' 유무념을 하고 보니 힘든 만큼 재미를 얻어가고 있다.

나의 유무념 마음공부를 통해 가장 큰 변화를 느끼는 건 남편이다. 상대는 나를 비춰주는 거울임을 아는 나는 마음에 들지 않은 남편의 모습일지라도 잔소리를 하지 않고, 아이들을 큰소리로 다그치는 일도 줄었다. 남편은 내가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내가 느끼는 가장 큰 변화는 의두가 생긴 것이다. 왜 딸아이가 밉지? 라는 의문에 상대가 아니라 어둡게 보는 내가 있다는 걸 알게 된 과정에서처럼 반문하는 일이 많아졌다. 왜 그렇지? 내가 왜 이러지? 저건 뭐지? 하며 자주 생각할 거리가 생겼다. 그 의문들을 가지고 있다가 사경하던 중 그에 맞는 법문이라도 발견하면 그렇게 기쁘고 행복할 수가 없다.

사람들은 밥을 먹고 산다고 하지만 우리는 마음을 먹고 산다. 각자 어떤 마음을 먹고 살 것인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면 그만한 기쁨이 또 어디 있겠는가. 나 역시 이 법 만났을 때 정말 기쁘고 소중하게 마음을 먹고 유무념공부로 진급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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