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과 홍콩을 비롯한 전 세계 도시들에서 비닐 대신 면 장바구니를 이용하는 '비닐봉지없는 날(no plastic bag day)'을 시행하고 있다.

버려지는 비닐봉지가 5천억 장에 이른다
원유 1천2백만 배럴 맞먹어 전세계 바다에 1억5천만톤
플라스틱 쓰레기가 떠다니고 있다

플라스틱 없이 하루를 살 수 있을까? 결코 쉽지 않은 미션이다.

하루의 대부분을 플라스틱으로 만든 의자에 앉고, 플라스틱 쟁반 또는 접시에 놓인 음식을 먹고, 플라스틱 병에 든 음료를 마시고, 플라스틱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보고 플라스틱으로 만든 컴퓨터로 일을 하고, 플라스틱 전화기를 사용하고, 플라스틱 카드로 계산을 한다. 플라스틱은 이토록 사방천지에서 '편리'와 '간편'을 이유로 소비되고 있다.

세계에서는 매년 1억톤의 플라스틱을 소비하고 8백만톤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바다에 버려진다. 얼마전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에서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50년까지 물고기보다 플라스틱의 무게가 더 커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플라스틱 업계 전문가 180명 이상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 이 예측에 따르면 생산된 플라스틱 가운데 32%는 회수되지 않고 강이나 호수, 바다로 유출되고 한 번이라도 재활용 수거되는 플라스틱은 전체 중 14%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미 바다에는 1억5천만톤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분해되거나 떠다닌다. 바다로 버려지는 8백만톤의 플라스틱 쓰레기는 트럭 1대 분량을 1분마다 바다에 던지는 것과 같은 양이다. 이대로라면 2030년까지 1분당 1대에서 2대가 되고 2050년에는 4대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플라스틱 아일랜드의 비극

얼마전 플라스틱으로 가득찬 알바트로스라는 새의 뱃속을 담은 동영상을 보았다. 이유 없이 새들이 죽어가자 해양학자들은 죽은 알바트로스의 배를 갈랐고 새의 뱃속은 플라스틱 쓰레기로 가득 차 있었다.

우리가 소비하고 버린 플라스틱 쓰레기가 해류를 따라 무리를 이루며 5대양에 거대한 섬을 이루고 있다. 십수년 전에 이 쓰레기섬을 발견한 무어선장은 처음엔 신대륙을 발견한 줄 알았다고 한다. 태평양에서 관측되는 플라스틱 아일랜드는 거대 쓰레기섬으로 면적이 무려 남한의 14배가 넘는다.

플라스틱 쓰레기들은 바다로 흘러가고 대부분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작은 입자로 나눠진다. '마이크로 플라스틱(microplastics)'은 오랫동안 바다 생태계의 먹이사슬에서 흘러 다니다가, 결국 우리가 먹는 물고기나 소금의 형태로 되돌아온다.

더 큰 플라스틱 조각은 갈매기 등 바닷새들이 먹거나 물고기, 바다거북, 고래의 뱃속에 들어가고 결국 플라스틱 때문에 고통스럽게 죽어간다.

플라스틱지구의 저자 데이지 뒤마는 "오래된 플라스틱 폐기물은 죽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거의 볼 수 없는 머나먼 곳으로 옮겨질 뿐"이라고 일갈한다.

▲ 알바트로스 한 마리의 배에서 나온 플라스틱. 매년 4만마리의 알바트로스가 플라스틱을 먹고 죽는다.
'비닐봉지 독립선언' 모드베리 마을

2007년 5월1일 비닐봉지가 사라져버린 마을이 있다. 영국 남서쪽 데번주의 아름다운 바닷가 마을 모드베리가 그곳이다.

가정집 761채, 교회 두 곳, 초등학교 한 곳, 영국식 술집 세 곳, 테이크아웃음식점 두 곳, 외과의원 한 곳 그리고 작은 슈퍼마켓과 43개의 고만고만한 상점들이 모인 모드베리에서는 식품점에서 말린 올리브를 사거나 정육점에서 스테이크를 사면 옥수수전분 종이에 담아준다. 갤러리, 철물점, 선물가게에서는 면가방에, 테이크아웃음식점에서는 종이가방에 담아준다. 꽃가게는 생분해 아세테이트로 포장해 라피아야자줄로 꽃다발을 묶어준다. 모드베리 사람들에게는 유기농공정무역제품인 면 장바구니가 필수품이다.

'비닐봉지 독립'을 이룬 모드베리의 혁명은 이마을 출신 여성카메라 기자로부터 시작됐다. 영국 국영방송 카메라기자 레베카 호스킹은 하와이 바다생물을 하루 동안 촬영하면서 맞닥뜨린 거대한 플라스틱 쓰레기에 충격 받았다. 비닐봉지를 먹고 서서히 죽어가는 거북이, 비닐봉지를 새끼에게 먹이로 주는 알바트로스를 촬영하며 그녀는 카메라를 끄고 우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자연의 비극이 플라스틱을 그냥 쉽게 던져버리는 인간들의 생활에서 비롯됐음을 깨닫게 된 레베카는 고향 바닷가를 보며 '비닐봉지 없는 마을'을 상상한다. 레베카가 하와이에서 촬영해 온 처참한 바다생물다큐를 본 고향사람들은 움직이기 시작했고 한 사람의 성찰로 시작한 이 운동은 마을공동체 전체의 상상력으로 커졌다. 더 이상 쓰지 않는 비닐봉지는 플라스틱의자 등의 물건으로 재활용하는 도매업자에게 팔렸다. 모드베리 761가구 모두에게는 유기농 공정무역면으로 만든 가방이 나눠졌다. 장바구니를 잊었거나 관광객으로 들렀다면 상점에서 모드베리 면가방을 사면 된다. 바닷가 작은 마을의 비닐봉지독립 실험은 영국을 흔들어 120여개의 마을을 '비닐봉지 없는 마을'로 변화시켰다.

비닐봉지 없는 교당

얼마전 생태교리모임에 참석한 교무님이 새해 유무념실천으로 '비닐봉지 줄이기'를 잡고 한달여 생활해보니 비닐봉지가 내 삶에 얼마나 많이 들어와 있는지 알겠더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

월드워치에 따르면 해마다 버려지는 비닐봉지가 미국에서만 1천억 장, 세계 전체로는 5천억 장에 이른다고 한다. 원유 1천2백만 배럴을 쓰는 양과 맞먹는다.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2억장의 비닐봉지가 사용된다.

비닐봉지 아홉 장에는 승용차 한 대가 1킬로미터를 달릴 수 있는 석유가 들어있다고 한다.
비닐봉지가 분해되는 데는 1천 년 이상이라는 상상을 넘긴 시간이 걸린다.

모드베리처럼 작은 마을의 실천이 영국의 많은 마을들을 바꿔냈듯이 교무님의 실천이 전국 교당의 '비닐봉지 독립선언'이라는 상상으로 확산될 수는 없을까?

"줄이고, 다시 쓰고, 재활용하기." 이미 수백 번 이상 들어 본 뻔한 이야기 같지만, 비닐봉지를 없애고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서는 이 고전적인 방법부터 다시 시작해야겠다.

가방에 이미 손수건과 텀블러는 챙겨두었으니, 그동안 챙기지 못했던 장바구니 하나 더 넣어두는 것부터 시작하자.

까만 비닐봉지를 든 손보다 장바구니를 든 손, 멋지지 않은가!
▲ 이태은 교도/원불교환경연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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