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칼럼

▲ 박시현 교도 / 한국외국어대 프랑스어과 교수

어제 뜬 해와 오늘 뜬 해가 같은 해인가 다른 해인가? 우리는 같음과 다름의 사이에서 시비이해에 얽혀 산다. 같은 것을 두고도 옳거니 그르거니, 좋거니 나쁘거니 한다. 만물은 변화한다. 어제와 오늘의 모습이 같다고 판단되면 한결 같아서 좋다고도 하지만 경우와 입장에 따라서는 발전이 없다며 나무라기도 한다.

'대소유무의 이치로써 건설'되어 있는 세상을 '시비이해의 일로써 운전'하며 살아가는 우리. 당장은 자신에게 불편함이 없다 하더라도 사회 어디엔가 부당함이 있으면 언젠가 자신도 불편해진다는 것을 잘 아는 우리다. 세상이 바르게 가야 개개인이 행복하다. 세상이 바르게 가려면 물론 개개인이 바르게 살아야 한다.

다행히도 우리는 원각성존 소태산께서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신 '지식 사용하는 방식, 권리 사용하는 방식, 물질 사용하는 방식, 감사 생활하는 방식, 복 짓는 방식, 자력 생활하는 방식, 배우는 방식, 가르치는 방식, 공익심이 생겨나는 방식'을 잘 알고 있으니 그대로 실천만 하면 된다.

많은 사람들이 시간에 쫓기며 바쁜 일상을 살다가도 새해를 맞이할 때는 앞날에 대한 희망과 기대 속에 각오를 새로이 한다. 더욱이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면서는 아주 특별한 때를 만난 기회로 삼아 사뭇 감격하며 소란을 피우기까지 한다. 지난해는 원기 백년이라 중요한 해이었고 올해는 백주년이라 중요한 해라고 한다.

우리 교단이 지난 100년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되돌아보며 우리 각자는 자신이 서있는 자리에서 반성도 하고 다짐도 한다. 그 동안 훌륭한 교법을 알고 있다는 데에 안주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정신개벽 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어야 했던 우리 교단이 그 실천에 있어서 게을리 한 점은 없었는지, 정신문명 촉진을 담당한 종교로서 그 역할을 다 하지 못하고 도리어 세상을 따라가는 면이 없지는 않았는지 반성하게 된다.

원불교 교도는 출가교도와 재가교도로 구분이 되지만 두 범주 사이에 차별은 없다. 이는 공부인의 처지에 따른 구분이며 그 자격과 대우를 정하는 데에 있어서는 차별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헌 제 2장 제 15조 2항 참조)

출가교도는 이른바 전무출신(專務出身)으로서 '오로지 교단의 일에 헌신하는 교도'이며, 재가교도는 '개인의 가정생활 및 사회생활을 영위하면서 원불교를 신앙하고 수행하는 교도'이므로 교단 내에서 맡아 하는 일이 다르기 마련이다. 전무출신은 '정신과 육신을 오로지 공중에 바쳐서 개인의 명예와 권리와 이욕은 불고하고 오직 공중을 위한 일에만 전력하는 것을 본분'으로 한다. 이와 같이 무아봉공의 표본이 되는 삶을 사는 전무출신의 거룩한 뜻을 우리가 존경하고 마음속 깊이 떠받드는 것은 당연지사(當然之事)이다.

그러나 어느 한 쪽이 항상 스승이라는 의식이 고착되면 곤란하다. 원각성존께서는 불합리한 차별이 없는 평등세계 건설을 위하여 우리가 실천해야 할 네 가지 요긴한 윤리 덕목으로 자력양성·지자본위·타자녀 교육·공도자 숭배의 사요를 밝혀주셨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할 대목은 지자본위의 조목을 다섯 가지로 제시하시고 '이상의 모든 조목에 해당하는 사람을 근본적으로 차별 있게 할 것이 아니라 구하는 때에 있어서 하자는 것'이라고 덧붙이신 점이다. 지자본위의 정신은 근본적 차별을 하지 않고 구하는 때에 있어서 지자와 우자의 차이를 인정하자는 데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출가교도와 재가교도를 근본적으로 차별하는 자세는 바람직하지 않다.

어느 새 자리 잡은 관습이나 조직과 이에 따른 의식구조에 대한 혁신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우리의 정체성을 확실히 하자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교법의 우수성을 자랑하면서 제대로 실천을 하지 못하고, 출가 재가의 차별이 없음을 내세우면서 어느 한 쪽이 다른 쪽을 내려다보는 자세를 취함으로써 대립의 구조를 키워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병든 사회 치료에 앞장서야 하는 우리가 도리어 치료의 대상이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재가출가의 일심합력이 절실한 때다.

교단 밖의 세상에서도 '상생협력'을 외치고 실천하는 노력을 하는 마당에 상생이 무엇이고 일심합력이 무엇인지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우리가 모범적 실천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보다는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약자에게 강자가 될 수 있는 법을 안내하는 교단으로 거듭나야한다. 무엇보다도 소태산 대종사의 본의를 받드는 데에 부단한 노력을 경주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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