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빛내는 정전

▲ 김준영 교무 / 벤쿠버교당
살면서 누군가에게 신세를 졌다고 느끼면 갚고 싶은 마음을 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기회만되면 누구에게 뭔가를 해줘야겠다'하는 마음을 가진 분들이 있을텐데요. 그 내용을 보면 큰 은혜를 입은 경우도 있지만, 어렵거나 아쉬울 때 도움이 되어주든, 돈이든 선물이든 뭔가를 받아서 등 사실은 사소한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큰 은혜는 어떻습니까? 부모님이나 스승님으로부터 평생을 통해 받은 은혜와 일상에서 우리 생명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천지, 동포, 법률의 은혜에 대해서는 대부분 둔감합니다. '내리사랑'이라고 하죠. 아낌없이 주는 은혜에 대해서는 그 받고 신세지는 것을 당연한 듯 여기기가 일쑤입니다. 그래서 이미 크게 받고 있는 은혜에 대한 감사함은커녕, 지금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 불만, 불평, 원망심 등을 갖기가 쉽죠.

생각해보세요. 천지, 부모, 동포, 법률의 은혜가 없이도 우리의 삶이 지금과 같을 수 있는지. 부모 없이 만사만리의 근본인 이 몸을 얻기가 어렵고, 태어났다해도 그 무자력한 몸으로 부모의 사랑과 헌신이 없이는 오늘같은 삶은 상상하기 어려울뿐더러, 동포의 도움이 없다면 당장 입고 먹고 거처하는 것들도 어려워지고, 천지의 은혜없이는 한순간의 생명을 이어가기조차 쉽지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모든 은혜를 깊이 느끼기도 어렵고, 그 은혜를 갚으려는 마음을 일으키기는 쉽지 않죠.

하지만, 조금만 겸허한 마음으로 지난 세월을 돌아보고, 돌아가는 세상사에 대한 이치를 이해하고 보면 마음은 달라집니다. 그간 받은 은혜는 너무 크고, 나는 너무 어리고 어리석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죠. 부모님, 스승님, 동지, 친우, 지인을 비롯하여 이름조차 알지 못했던 고마운 인연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가 인식하든 인식하지 못하든 어떤 형태로든 도움을 받게 되는 수많은 사람들, 생명들.

그 은혜를 자각하게 되면, 삶의 태도가 달라집니다. 사소하게는 신세를 졌기 때문에 그에 상응하는 뭔가를 갚아야 한다는 계산적인 마음이 아니라, 크고 고마운 은혜를 너무 많이 받았기 때문에, 욕심은 내려놓고 감사하며, 살아가는 내내 조금이나마 일상에서 은혜를 베풀고 살아가는 보은자의 삶의 태도를 갖는 거죠.

그렇다면 과연 일상에서 은혜를 베풀고 보은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헌금을 많이 내고, 어떤 단체나 기관의 봉공활동에 참여하며, 스스로의 삶을 절제하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남을 위해 헌신하는 삶도 하나의 방법이 됩니다.

하지만, 그런 어떤 특정한 행위가 아니라 삶 속에서 몸과 입과 마음을 쓸 때에 불만 불평보다는 감사와 만족이 앞서고, 남의 행복이 나의 기쁨이 되며, 타인이나 다른 생명에게 유익을 주려는 그 따뜻하고 선량한 삶의 태도가 보은자의 삶으로 이끌어주기도 합니다.

결국, 은혜임이 느껴져야 합니다. 스쳐지나간 인연들은 모두 은인이었고, 우리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이 결국은 은혜였다는 것이 느껴져야 한다는 거죠. 스스로 느껴지면 그 보은의 방법은 어떻게든 찾게 될테니까요.

이미 너무 많이 받은 은혜, 어떻게 하면 느껴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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