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경 공부

▲ 나성제 교무 / 우인훈련원장
눈이 펑펑 쏟아지고 온 산천이 새하얗게 빛나고 있는 날! 훈련원 뒷산 중앙봉에 올랐다. 낙락장송들은 하얗게 꽃피우며 위엄과 의젓한 자태로 산을 지켜주고 있다. 그 사이로 바람과 함께 거니는데 온 정신이 맑아진다.

나의 정신도 산천도 모두가 이렇게 청량해질 수 있을까. 한 호흡을 할 때마다 우주의 기운이 느껴지고 새삼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것에 경이로움을 느낀다. 자연스레 무엇이든지 다 받아줄 수 있을 것 같이 마음이 가벼워지고 커진다. 무엇을 대하더라도 하나가 될 수 있을 것 같이 아집 아상들이 사라져 간다.

마음결에 하나둘씩 지나가는 망상 번뇌마저 자유로이 노니는 것 같다. 이러한 시간들이 지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보면 천근이나 되는 바위같은 업장들이 눈앞에서 서성인다.

이 일 저 일을 생각하노라면 그 녀석들은 더욱 눈덩이 같이 크게 나를 휘감아 버리기도 한다. 모든 변화는 바로 찰나지간에 이루어진다. 백지 한 장 차이다. 저 산 너머에 있을 것 같았던, 저 바다 건너에 있을 것 같은 무명 업은 늘 내 곁에 빈 허공처럼 함께 자리하고 있음을 본다. 유유상종이라 했던가.

그동안 알게 모르게 쌓아 놓았던 탐진치 삼독심에 장단을 맞추기 위하여 늘 기다리고 있다. 옛 선사 이르기를 '한 티끌이 눈에 있으매 허공 꽃이 요란하게 떨어지나니라' 하였다. 사시사철 무한량하게 천지자연의 호대한 기운은 나를 감싸 주고 있을텐데 한 티끌에 가려 전체를 놓치고 울 안에 갇아 족쇄를 채워버린다. 자업자득이라 하지만 그러한 이치로 우주 만물을 주재하는 법신불의 위력에 또 한번 놀라경외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자신이 비록 조물주라 가르쳐 주었지만 조물주의 만능은 철저한 신앙과 수행에 의하여 얻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 인류에게 없어서는 살 수 없는 것이 종교이다. 그러나 미신적이고 불합리한 종교는 설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오직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으로써만이 현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개인 가정 사회 국가 세계를 살리는 길이 된다. 이렇게 빠르고 복잡다단한 세상이지만 혼돈의 세계에서 벗어나서 안정과 행복, 평화와 평등세상을 지켜줄 수 있는 방법으로 소태산 대종사는 상시로 정기로 심신을 단련하기 위한 훈련법을 밝혀주었다. 번뇌 즉 보리라 하였다. 내가 존재하고 있는 한 티끌 경계에 서 있는 것이다. 그 속에서 자유로운가. 아니면 묶여 있는가. 둘 중의 하나다. 오직 자기가 자기의 심신을 수호하고 가르치고 밝히고 바르게 사용하는 자체가 자유로움이다. 일원의 체성에 합해지는 자리이다. 진리 자체가 오직 공(空)과 공(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무엇인가에 집착하는 것은 그 자체가 사심(私心)이다.

공부심을 놓는 순간 이미 사심으로 사로잡혀서 진리의 정로(正路)에서 탈선되어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어 있다. 그러니 죽을 때까지 아니 세세생생 한 순간도 방심하지 않고 오직 이 법에 질박아 가는 자만이 자유와 부귀를 누리는 주인공이 될 것이다.

※ 다음 호부터는 안양교당 이상선 교무의 전망품이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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