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성택 원로교무
須菩提야 菩薩도 亦如是하야 若作是言호대 我當滅度無量衆生이라하면 卽不名菩薩이니 何以故오 須菩提야 實無有法일새 名爲菩薩이니 是故로 佛說一切法이 無我無人無衆生無壽者라하나니라.

수보리야! 보살도 또한 이와 같아서 만일 이러한 말을 하되 "내가 마땅히 무량 중생을 멸도하였노라" 하면 곧 보살이라고 이름하지 못할지니, 어찌한 연고인고.

수보리야 실로 법 있음이 없을새 이를 보살이라 이름하나니라. 이런 고로 불타의 말이 "일체 법이 아(我)도 없고 인(人)도 없고 중생(衆生)도 없고 수자(壽者)도 없다"고 하나니라.

부처님은 그 수많은 일을 하고도 마음속에 '내가 그러한 것을 했다'고 하는 상이 없다. 부처님은 설법할 적에는 오감(五感)으로 하여 찰나 찰나에 느끼는 것을 그대로 표현한다. 일원상 법어에서 큰 원상은 진리를 깨달은 경지를 대체로 표현 것이고 안이비설신의의 작은 원상은 육근 동작이 그대로 나타나는 것을 설명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須菩提야 若菩薩이 作是言호대 我當莊嚴佛土라 하면 是不名菩薩이니 何以故오 如來說莊嚴佛土者는 卽非莊嚴일새 是名莊嚴이니라.

수보리야! 만일 보살이 이러한 말을 하되 "내가 마땅히 불토를 장엄하노라" 하면 이는 보살이라 이름하지 못할지니, 어찌한 연고인고 여래의 말한 불토 장엄이란 것은 곧 장엄이 아닐새 이것을 장엄이라 이름하나니라.

장엄에는 3가지가 있다. 첫째가 세간불토 장엄으로 마당에 풀을 정리하는 것, 교당을 신축하는 것 등이다. 다음은 몸불토 장엄으로 몸을 잘 관리하는 것이다. 몸은 마음을 담는 그릇이기 때문에 건강관리를 잘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마음 불토 장엄이다. 가장 중요한 장엄으로 금강경의 시명장엄이 바로 마음불토 장엄을 말하는 것이다.

須菩提야 若菩薩이 通達無我法者는 如來說名眞是菩薩이니라.
수보리야! 만일 보살이 무아의 법을 통달한 이는 여래가 참으로 이 보살이라고 이름하나니라.

금강경에서 가장 위대한 단어는 '무상' '무아'라고 할 수 있다. 진정한 보살은 무아법을 통달한 사람인데 그런 사람은 무시선 무처선을 실천하여 수행의 구경자리에 합일하는 것이다. 합일한 사람은 영육쌍전 이사병행으로 나타나는데 그것이 무아봉공이다.

무아는 영(靈)이요 이(理)로써 이치적으로 진리를 깨닫는 것이다. 봉공은 육(肉)이요 사(事)로써 육신으로 물질로 일하는 것이다. 무아와 봉공이 같이 가야 참다운 깨달음이고 원불교가 지향하는 신앙이고 수행이다.

일체동관분(一體同觀分)

제18분은 모든 것을 한 몸으로 보라는 뜻을 담고 있다.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如來- 有肉眼不아 如是니이다 世尊이시여 如來- 有肉眼이니이다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如來- 有天眼不아 如是니이다 世尊이시여 如來- 有天眼이니이다.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냐 여래가 육안이 있느냐?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육안이 있나이다.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냐? 여래가 천안이 있느냐?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천안이 있나이다.
육안은 보통 사람이 가지고 있는 눈으로 청황적백 고저장단을 구별하는 눈이다. 온전한 육신의 눈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정말 소중한 일이다. 천안은 시공을 초월하여 전생 후생을 내다보는 눈이다.

〈대종경〉 서품 13장에서 "지금 물질문명은 그 세력이 날로 융성하고 물질을 사용하는 사람의 정신은 날로 쇠약하여, 개인·가정·사회·국가가 모두 안정을 얻지 못하고 창생의 도탄이 장차 한이 없게 될 것"이라고 예견하셨듯이 천안을 얻게 되면 이런 능력이 나타난다.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如來- 有慧眼不아 如是니이다 世尊이시여 如來- 有慧眼이니이다.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냐? 여래가 혜안이 있느냐?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혜안이 있나이다.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으로는 신언서판(身言書判)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으로 지혜의 눈을 갖춘다는 것은 대소유무에 바탕 하여 시비이해(是非利害)를 정확하고 빠르게 판단하는 것을 말한다.

대(大)라는 것은 우주의 진리ㆍ본체를 말하는 것이고, 소(小)라는 것은 우주의 삼라만상을 말하는 것이다. 유무(有無)란 우주의 조화ㆍ변화 즉 생로병사ㆍ춘하추동 등이다. 이런 대소유무에 바탕하여 인간의 시비이해를 판단하는 것이 혜안인 것이다.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如來- 有法眼不아 如是니이다 世尊이시여 如來- 有法眼이니이다.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냐? 여래가 법안이 있느냐?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법안이 있나이다.

법안이란 중생제도를 위해 법을 만들 수 있는 제법의 능력을 말하는 것이다.
정전 법위등급 출가위 조항에 보면 "대소 유무의 이치를 따라 인간의 시비 이해를 건설하며"라고 나와 있다.

사람들은 대중 속에서 시비이해로 운전해가며 살아간다. 이러한 가운데 지도자는 정기(正氣, 定氣)를 지니고 있으면 상대와 다투지 아니하여도 삿된 것은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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