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경진 교도 / 강북교당
4년째 문화코드란 이름으로 한 달에 한번 칼럼이란 것을 쓰는 것이 기적일 만큼 나는 책을 잘 읽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글 쓰는 것 또한 남의 일이었다. 학창시절 그 많던 백일장이나 글쓰기대회에서 상 한번 받아 본 적 없고,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해 본 적도 없었으며 그저 남의 일이라 생각하며 살았다. 도서관에 크게 적혀 있던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친다'라는 안중근 의사의 명언을 보며 그저 '가시가 돋으면 아프겠군' 하는 멍한 생각만 하던 나에게 읽고 쓰는 것의 즐거움과 소중함을 알게 해 주신 분이 있다.

타지로 대학을 가게 되면서 불행인지 다행인지 기숙사에 들어갈 수 없게 되어 1년 동안은 학교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외삼촌댁에 살며 통학을 하게 되었다. 나의 외숙모는 책을 굉장히 많이 읽는 분인데 당시 그 집이 59.5㎡ 정도 되는 매우 작은 아파트였음에도 불구하고 책 보유량은 어마어마했다.

방과 거실은 물론이고 현관까지 책으로 가득 차 있었고 책꽂이에 다 꽂지 못한 책은 가로로 누워 탑처럼 쌓여 있었다. 고개만 돌리면 보이는 것이 책이었으니 아무리 관심이 없던 사람이라도 책을 펼쳐들지 않고서는 안 되는 그런 집이었다.

수동적이고 빡빡하기 그지없던 고3을 지나 찾아온 대학교 1학년의 무한 자유는 나에게 심심함을 선물하였고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 심심함을 책으로 채우고 있었다. 책을 읽고 그 책에 대해서 외숙모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점점 즐거워졌다. 외숙모는 항상 책을 읽고 글 쓰는 생활을 꾸준히 하셨다. 나 역시 여러 책들을 읽으면서 좋아하는 장르도 생겼고 좋아하는 작가도 생기게 되었다. 이 단계를 지나니 책을 읽고 넘치는 부분이 생겼고 자연스럽게 글을 쓰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저 외숙모의 많이 읽고 쓰는 모습이 보기 좋아 따라 하다 보니 이렇게 신문에 칼럼이라는 것까지 쓰게 된 것이다.

주부였던 외숙모는 읽고 쓰는 생활을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했다. 수필을 주로 썼는데 그렇게 즐기며 오랜 시간 글을 쓰던 내공이 빛을 발하여 올해 첫날 두 군데 신문사에서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는 소식을 받았다. 내가 그 분의 지나온 삶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최근에 외숙모의 작품을 읽으며 많은 힘든 일들과 고비를 글쓰기의 힘으로 이겨내며 지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외숙모의 수필은 솔직했고 쉬웠으며 편안했다. 잘 모르는 내가 읽어도 훌륭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서점가에는 글쓰기 관련 책들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많은 작가들이 자신만의 노하우와 스타일을 전달하며 글쓰기의 장점을 어필한다. 나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절대 아니고 그저 조금 즐기는 사람이지만 일단은 뭐라도 써보라고는 말하고 싶다. 글쓰기에는 분명 어떤 힘이 있다.

평소에는 잘 모르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읽기와 쓰기를 게을리 할 때 뭔가 생활이 잘 정리가 되지 않고 어수선해지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그럴 때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면 정신적으로 정리가 되는 느낌이 든다. 내적으로 조금씩 성숙하는 느낌은 덤이다.

또 누군가 나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지 않는다고 생각될 때, 누군가와 한참 대화를 했는데도 그 대화가 잘 풀리지 않아 마음 한구석이 찝찝할 때, 어떤 일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생각이 잘 정리되지 않을 때 그 시작 지점부터 이야기를 꺼내어 글을 쓴다.

주로 글을 쓸 때는 컴퓨터 자판을 이용하는 것보다 종이에 직접 쓴다. 글씨를 예쁘게 쓰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그냥 쓰다가 맘에 안 들거나 틀린 부분은 죽죽 그어 지워 버린다. 연필이나 펜이 종이에 닿는 느낌도 참 좋다. 글을 쓰다 떠오르는 이미지는 공책 한 귀퉁이에 그림으로 그려보기도 한다. 그렇게 무언가가 쓰고 싶을 때마다 즉흥적으로 쓴 공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는 정말 기분이 좋다. 그 중에 마음에 드는 글은 타이핑을 해 보관해둔다.

한편으로는 이 글을 읽게 될 많은 분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부끄럽다. 이런 이야기를 할 만큼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은 못되기 때문이다. 그저 자기고백 정도로 생각해 주면 고맙겠다.

어찌되었든 종이책은 유물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많고, 국내 성인의 1년 평균 독서량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디지털 시대에 더욱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을 놓지 않도록 애써야겠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