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역자 급료제도 현실화, 세대 전무출신 도입 절실
소태산 대종사의 시대화·대중화·생활화 점검해야

▲ 원기100년 출가교화단 총단회에서 현장의 교무들이 교정원 관계자의 답변을 경청하고 있다.
▲ 서경전 원로교무 / 원광대학교 원불교학과 명예교수
원기101년 현재 원불교 교화 현주소를 살펴보자. 3년 이내에 법회에 1회라도 출석한 관리교도와 전혀 법회에 출석하지 않는 잠자는 비관리 교도, 정례 법회에 출석하는 교도들의 통계를 살펴봐도 교단의 교화 침체는 심각한 상태다.

더불어 금년에 원불교학과 신입생이 6명뿐이라는 충격적인 현상을 종합해 볼 때 최근 들어 퇴임하는 교무들은 연 평균 30~40명에 이르고 보니 향후 5~6년 후 부터는 지방교당에 파견할 교무가 절대적으로 부족해서 교무 부재의 지방교당이 매년 30~40여 교당이 나타날 것이다.

또 교역자가 부재한 교당은 자연 이웃교당에서 출장 교화하는 피상적인 교화 활동 현상이 나타날 터이니 생각만 해도 눈앞이 캄캄하고 답답한 심정을 헤아릴 수 없다.

원불교 교화 현실은 침체 상태이고 이같은 현실을 극복하는 방법을 찾아 보고 그 길에 정성을 모을 때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신앙 집단으로 다시 살아나자

원불교는 신앙집단으로 다시 살아나야 한다. 지금 교단은 수도집단의 성격을 강하게 띄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수도집단의 성격을 배제하자는 것이 아니라 신앙 집단의 성격을 강화하는 기반에서 수행적 성격을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태산 대종사의 기본 정신은 "원불교는 자력수행과 타력신앙을 병행하는 신앙과 수행을 병행하는 특징을 지닌 바람직한 종교"라고 말씀 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교단 행태를 보면 수도집단의 성격이 강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전국 교당의 교무들의 설교 제목을 보면 수행에 관한 제목이 50% 내외 이고 신앙에 관한 설교 제목은 10% 내외임을 보아도 원불교는 수도집단의 성격을 강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느낌이다.

또한 교단 선진들의 〈구도역정기〉라는 책을 보면 일원상에 대한 신앙 체험이 부재하고 자각적 결심과 자기 의지가 교역자 생활하는 중심이 되어있음을 보아도 원불교 선진들의 신앙체험의 부족함을 알 수가 있다. 〈구도역정기〉 이후 반백년이 다가오고 개교 101년이 된 오늘에도 교도들의 신앙이 강화되고 심화되었다는 점을 느낄 수가 없다는 점이 아쉬운 점이다.

신앙 호칭, 다시 생각해 봐야

30여년 전, 원광대학 병원이 개설되기 전에는 익산시내 김외과병원에서 우리 교무들이 큰 수술을 받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어느 날 김외과 원장이 평소 친분이 있던 우리 선진을 만나자 이렇게 물어 보았다고 한다. "원불교에 법사님이 누구십니까" 하고 묻자 "어째서 물으신가요" 하고 되묻자 그분은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병원에 입원해서 수술을 받는 환자들 중에 불교신자들은 수술 후 깨어나면서 첫 마디가 '부처님 감사합니다' 하고, 기독교 신자들은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하는데, 원불교 교무님들은 '법사님 감사합니다'라고 말해서입니다"라 했다.
이같은 현상의 원인은 신앙 호칭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 한다.

법신불 사은이라는 신앙 호칭은 종교신앙 호칭의 기본 이론적 원칙인 '단순성(單純性), 간결성(簡潔性), 함축성(含蓄性)'을 벗어난다. 또 한민족의 오랜 정서인 3박자(예를 들면, 부처님이나 하느님과 같은 세글자) 정서에도 벗어나 있어 쉽고 간결하게 부르기 어려운 점이 있다.

원불교라는 교명과 직접 관계가 있는 '원불님'이라는 신앙 호칭을 외면하고 너무 장황하고 길어서 신앙심을 불러일으키는 데에 체질화 되지 못하다 보니 이같은 비본질적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보인다.

대산종사께서는 이점을 통찰 하고 '원불님'을 강조해 줬던 깊은 뜻을 우리는 헤아려야 한다. 그래서 원기101년 부터라도 기존 호칭인 '법신불 사은님'과 함께 '원불님'을 활용하여야 한다.

인류정신사에 나타난 고등종교에서 신앙 호칭의 보편적 상식은 그 종교의 교명과 신앙호칭이 일치하고 있다는 점인데, 예를 들면 불교는 부처님을 믿고, 천주교는 천주님을 믿고, 예수교는 예수님(하나님과 동격)을 믿고, 원불교는 원불님을 믿는다는 점이다.

그런데 지금 원불교 신앙호칭은 이같은 상식을 외면하고 있어서, 교명은 원불교인데 신앙호칭은 법신불 사은님이어서 사람들이 쉽게 찾고 부르기 어려워졌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취약한 점이다.

소태산 대종사의 정신은 교법의 시대화(時代化), 대중화(大衆化), 생활화(生活化)인데 법신불 사은이라는 신앙호칭은 복잡한 한자 중심이라 시대화(時代化)와도 거리가 멀고, 법신불과 사은의 합성어(合成語)라 대중화(大衆化)와도 거리가 멀고, 법신불 사은이라는 호칭이 너무 장황하고 길어서 생활화(生活化)와도 적합지 않은 점등이 우리 신앙생활에 영향을 미쳐왔다고 생각한다. 원불교라는 교명이 자랑스럽고 부르기가 즐겁다면 원불님이라는 신앙 호칭도 자랑 스럽고 부르기가 즐거운 것이다.

우리는 법당에 원불을 모시고 살면서 '원불님!' 하고 부를 때 자연스러운 것이지 법당에는 원불님을 모시고 호칭은 법신불사은님 하는 것은 실제 신앙을 하는데 있어서 매우 부자연스러운 점이다.

원불교를 신앙하는 교무나 교도들이 스승님들의 법어나 법설을 통해서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가질 수는 있겠지만, 진정한 자신감이란 자기가 믿어온 종교의 신앙심을 바탕으로 형성되는 것이 진정한 자신감이 되는 것이다.

굳건한 신앙심이 자기의 내면적 주체성으로 자리 잡을 때에 그 사람에게는 굳건한 신념이 확립되고, 그 신념이 확립되었을 때에 그 사람에게는 역경난경에도 흔들림 없는 자신감이 확립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확립된 자신감은 어떠한 역경난경에도 흔들림 없이 정의를 위해서는 목숨이라도 바칠 수 있는 행동하는 양심으로 나타나게 된다.

인류역사는 고사하고 교단 초기의 구인선진들(천지신명 신앙과 대종사님 신봉)이나, 우리나라의 민주화에 기여했던 김대중 대통령이나 노무현 대통령, 지학순 주교나 김수환 추기경, 근래에 지구상에서 가장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프란치스코 교황 등 행동하는 양심을 보여주었던 지도자들은 이처럼 한결같이 종교 신앙심을 자기의 내면적 주체성으로 확립한 신념의 건아들인 것이다.

교역자 정기 급료제 실현돼야

다음으로는 전 교역자들에게 정기 급료제를 통하여 교화 활성화를 실현해야 한다.

원기100년대 부터는 무보수가 무아봉공이라는 사고를 과감히 탈피하고 국가가 지정한 최저 임금제에 바탕한 급료화를 실행해야 한다. 국민소득 2만불 시대에 교역자 지망생이 감소하고 있다. 전체적인 인구감소 현상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를 외부적인 요인으로만 생각해서는 안된다.

원불교는 생활 속에서 공부하고 사업해나가는 단체이기 때문에 급여 부분도 현실적이고 시대에 맞도록 보완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젊은 교무들에게 최소한의 유급제가 정착 된다면 3포 세대니, 5포 세대니, 7포 세대니 하는 절망하는 한국 젊은 청소년들 중, 원불교 청년들에게 비록 급료는 많지 않을 지라도 생활이 안정되고 생계가 보장되는 원불교 성직은 또 다른 희망과 용기를 돋아 주는 새로운 일터로 각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성직과 봉사에 마음은 있으나 가정을 직접 이끌어야 하거나, 현실적인 문제로 출가를 주저하는 젊은이들도 있을 것이다. 현실에 맞는 급여 체계를 갖추고 전환함으로써 경쟁력있는 젊은 예비교역자를 한명이라도 더 받아들이도록 하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교무직은 틀림없이 한국 사회에 보람 있는 터전으로 각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초빙 유급 교무제와 교역자 후원재단

어느 정도 재정 자립도가 있는 교당은 초빙 유급 교무제를 실시해 교화 활성화를 실현 해야 한다. 또 경제적 자립도가 낮은 교당은 교역자 후원재단 등을 마련해 일이라도 지원하는 방안도 생각해야 한다.
군 소재지 교당이나, 도시 교당에서는 교무 유급 초빙제를 정착하고, 총부와 기관에서는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이 모색돼야 한다.

남녀 교역자 결혼 등 열린 교단으로

그리고 남녀 교역자 결혼과 세대 교무제를 정착해 보다 열린 교단이 되고, 교화활성화에 효율성을 높이도록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총부 서울이전 비용, 교역자에게 사용해야

마지막으로 중앙총부를 서울로 옮기지 말고 그 비용으로 총부 근무자들의 유급제 정착에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나는 이 문제를 생각하기 전에는 중앙총부가 촌티를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서울로 옮길 것을 주장하고 제안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전체 교무들의 유급제 정착을 위해서는 그 주장을 철회 하고 싶다.

장·단기적인 경제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현재 상태에서 총부를 서울로 이전하는 것은 이사비용의 부담이 적지 않을 것이며 그로인해 자칫 총부 근무교역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유급제 문제가 뜬구름 잡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상 유지를 하면서 총부 근무 교무들의 최소한의 유급제 문제가 해결 된다면 총부 서울 이전 문제는 좀더 시간을 두고 충분히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어느 정도 경제 자립도가 확립되면 재가출가들의 의견을 두루 경청해서 결정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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