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광대, 한국민족종교 콜로키움
민중 혼과 얼 보존한 종교운동

▲ 원광대 종교문제연구소가 17일 개최한 '한국민족종교' 콜로키움에서 서울대 윤승용 교수가 발표하고 있다.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가 '한국 민족종교 연구의 현황과 과제'란 주제로 17일~18일 원광대학교 교학대학에서 콜로키움을 열었다.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박광수 소장은 "150년 역사의 한국민족종교를 사회적·역사적으로 어떻게 정의하고 연구할 것인지 조망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 이번 콜로키움을 열게 됐다"며 "각 종단별 자료는 연구되어 있지만, 민족종교가 모여 전체적으로 공유하는 시간들이 없기 때문에 각 방면 연구자들이 모여 2일간 연구발표를 하게 될 것이다"고 콜로키움 취지를 설명했다.

첫째날은 '한국 민족종교 연구의 현황과 과제'의 주제로 민족종교의 연구현황과 과제, 민족종교의 지형변화와 계파형성과정, 사회사적 맥락에서 본 민족종교의 중요사건 등에 대한 연구발표가 있었다. 둘째날은 '한국민족종교 지식지도(종교연표) 콜로키움'의 주제로 원불교, 동학, 천도교, 유교, 대종교, 대순진리회, 보천교, 무교 등 각 민족종교 관련 연구자들의 발표가 있었다.

'사회사적 맥락에서 본 민족종교의 중요사건'을 발표한 서울대학교 윤승용 교수는 "전·근대 사회는 종교가 사회 전체를 운용하는 방향과 기반을 제공하고 있었기 때문에 종교의 변화는 전체 사회의 변동에 있어서 중요한 함수로 작용했다"고 전체역사 속의 민족종교를 연결시켜 보는 연구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한국의 민족종교들은 국가가 어려운 시절 탄생됐기 때문에 전근대적 사회현상과 역사속에서 재조명해야 그 가치를 올바르게 재해석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민족종교 개념'에 대해 윤이흠 교수가 정의한 개념을 도입하면서 "시련에 빠진 민족의 구원을 추구하려는 역사적 운동이 한국민족종교 운동이다"며 "역사주체로서의 민족이라는 자연집단과 그에 대한 사랑과 참여라는 민족애가 한국민족종교의 역사적 실체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민족종교란 한국자생종교들이고, 민족공동체 의식을 갖고 있으며, 민족고유 얼의 개발을 기도했고, 고난으로부터 해방된 민족 영광을 약속한 종교단체를 말한다. 그러므로 국가와 민중이 도탄에 빠져있을 때 이를 외면하거나 재물을 착취하지 않고 그 고난을 함께 극복하려는 종교단체들만이 한국민족종교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더불어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점으로 근현대 전환기 역사에 따라 종교 개념과 범주에 관해서 변화되어간다는 사실도 강조했다.

"전통종교는 민중의 삶속에 스며든 문화중심의 종교였지만, 근·현대로 넘어오면서 이성적 중심의 종교로 변모해갔다"며 "혼란한 시기에 사람을 모으는 포교가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보편적인 시각에서 종교를 교육시키고 이해시키는 과정에서 일어난 것이다"고 말했다. 포교중심의 종교가 되다보니 사람들에게 알기 쉽게 이해시켜야 하고, 논리와 교육 중심으로 이뤄지다보니 합리와 불합리를 기준한 지식적, 이성적 성격으로 변해갔다는 것이다. 이는 근·현대 종교들의 대체적인 공통점으로 한국민족종교도 여기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으로 봤다.

한국민족종교 역사를 개항기 시대, 일제 식민지시대, 해방이후 미군정과 6.25, 산업화와 유신시대 등의 사회사적 맥락을 나눈 윤 교수는 "19세기 조선 말기는 서세동점 으로 해 내외 위기를 맞게 되고, 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써 초기에는 민중 투쟁인 민란, 후기에는 민중종교들이 등장한다"며 "1900년대 애국계몽기를 거쳐 1910년에 일제의 식민지 국가로 전락하는 과정을 밟는데, 이러한 개항기 시대 등장한 종교들이 이른바 현세 이상세계를 내세우는 개벽의 종교들이다"고 말했다. 이때의 사회적 주체는 민중이 되기 때문에 민족종교란 개념보다는 민중종교가 맞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일제 식민지시대는 국가가 없는 시대이기 때문에 민족이 당연히 주체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국권이 상실됨에 따라 식민지국가의 저항적 종교문화가 형성됐다"며 "이 시대의 종교문화의 특색은 식민지 국가를 대신한 민족의 혼과 얼을 보존하는 종교운동이 주류를 이뤘다"고 설명했다. 민권보다는 국권을 찾기 위한 성격으로 종교운동이 활발했다는 것이다.

해방 이후에는 미군정기를 거치면서 분단의 냉전체제가 형성됐다. 그는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민족보다는 반공 또는 승공이 사회 중심주제가 됐다"며 "민족분열을 막고자 민족이념을 내세우는 단군단체들이 많이 생겨나기는 했으나 결국 반공에 밀려 퇴조했다"고 말했다. 한국민족종교가 남북이데올로기에 밀려난 시기였던 것이다.

산업화로 넘어오면서는 눈부신 경제발전과 민주화가 일어났는데 이는 종교계 물량적 성장의 토대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은 민족종교의 부흥이라기 보다는 개신교와 천주교의 성장세가 두드러졌고, 한국민족종교는 예전같은 위세를 얻기 힘들었다.

끝으로 윤 교수는 "이때부터 한국민족종교와 개신교 등의 차이는 크게 벌어지기 시작했고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며 "신도 숫자 등 여러가지 이유를 찾을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학문적 연구에서 굉장한 차이를 보인다. 한국민족종교를 연구하는 이들이 분발해야 하는 부분이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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