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 교수의 현대건축이야기 14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차를 세우니 고요하기만 하다. 누가 몰래 다가올까 두려워 계속 두리번거리며 엘리베이터를 기다린다. 문이 열리고 황급히 들어가 우리 집 층수를 누른다. 문이 닫히니 좀 안심이 된다. 올라가다 1층에 멈추고 누군가 탄다. 얼굴은 알지만 이름은 모르는 같은 열 이웃이다. 갑자기 불편해진다. 내가 누른 층에 도착하고 도망치듯 빠져나온다. 집 안으로 들어오니 그제야 안도감이 밀려온다. 언제부터 이렇게 '이웃'을 만나는 것이 어색해졌을까?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덕선이네 정환이네 선우네는 마치 내 집 마당인양 '쌍문동 골목길'에 모여 수다를 떨었다. 굳이 '응팔'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그 무렵 동네 골목길은 우리 모두 공간이었다. 그곳에서 친구들과 구슬치기를 하며, 지나가는 우편배달부에게 인사를 드리고, 가끔은 동네 어르신에게 야단도 맞으며, 자연스럽게 같이 사는 법을 체득했다.

하지만 지금의 아파트 단지는 그런 골목길이 없다. 엘리베이터는 지하주차장에서 내려 최대한 빨리 내 집까지 가기 위한 수단일 뿐, 누군가를 만나기 위한 사회적 공간이 아니다. 모델하우스/주택홍보관에 가면 "평면이 잘 빠졌다"고 한다. 공용면적을 최소화하고 전용면적을 최대화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은 누군가와 만나는 공간을 최소화하고, 나만을 위한 공간을 최대화했다는 것이다. 어느 사회학자는 "도시에서 좁은 골목길은 중요한 사회적 교육 공간"이라 하며, 이런 골목길이 사라진 "단지화된 아파트는 '싸가지 없는 놈'을 양산한다"고 강변하기도 했다. 우리는 아파트에서 같이 살아가는 법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같이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다양한 건축적 실험들 역시 진행 중이다. 건축가 조성욱은 최근 자신의 가족과 친구 가족을 위한 듀플렉스(Duplex)형 주택을 판교에 지었다. '무이동(無二同)'이라는 이름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이 집은 두 가족이 따로 또 같이 살아가는 공간이다. 두 채가 나란히 붙어있는 이 집에서 제일 흥미로운 것은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이다. 건축가는 두 집을 나누는 벽을 없애고 계단을 하나로 합쳐, 두 집 애들이 같이 놀고 같이 영화도 볼 수 있는 공용 공간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옥상은 다시 하나로 모아져, 여름에는 아이들 수영장으로, 때로는 야외 피크닉 공간으로, 겨울에는 심지어 아이들의 썰매장으로 이용된다.

한편 만리동에는 건축가 이은경이 예술인들을 위해 디자인한 협동조합형 장기임대주택 '막쿱(M.A.Coop, 만리동 아티스트 코퍼레이티브(Mallidong Artists Cooperative))'이 있다. 협동조합형 주택은 같이 살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먼저 협동조합을 구성한 후, 건축가가 함께 설계 과정부터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입주 후에는 어떻게 건물을 관리하고 운영할지도 같이 모여 결정한다. 막쿱 외에도, 서대문구 홍은동에는 청년들을 위한 '이웃기웃', 강서구 가양동에는 공동육아에 관심 있는 가족들이 모여 만든 '이음채'도 최근 문을 열었다. 이렇게 공간을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서 같이 사는 마을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서울시 건축심의에 들어가 보면, 아파트의 입면 디자인에 대한 갑론을박이 오간다. 또한 서울시 공동주택 디자인 가이드라인에는 입면 다양화를 위한 다양한 인센티브 등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사회적 공간'에 대한 언급은 노인정, 유치원, 헬스장 등 분리된 공간에 국한된다. 로비와 엘리베이터 홀 그리고 계단에 대해 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공동주택으로서 의미를 잃은 아파트를 '공동의 주택'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다시금 '사회적 공간'을 고민해야 한다. 이미 젊은 건축가들의 제안에 답이 있다. 눈을 열고 귀를 열어보자. 그리고 그 '답'을 건축법규로 조례로 그리고 디자인 가이드라인으로 제도화하도록 같이 노력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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