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회관 철거 봉고식이 지난 2월25일에 있었다. 원불교100년기념관을 짓기 위한 기존 건물의 철거가 시작된 것이다.

서울회관은 33년이 넘는 장구한 세월에 수도 서울에 교단의 상징적 건물로 역할해 왔다. 흑석동 올림픽대로 한강변에 위치한 관계로 수많은 차량이 오가면서 사람들이 바라다본 건물이었다. 원불교를 홍보해온 건물인 것이다. 서울교구청의 역할을 하며, 수도권 교화의 전진기지이자 원음방송국 건물로서 위상을 더하기도 했다.

이번에 철거된 서울회관은 교단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긴 역사적 건물이기도 하다. 원기54년 개교 반백년 기념사업으로 교단 자체의 역량으로 소박하게 시작한 서울회관이 남한강개발주식회사의 제의를 받아 갑자기 확대변경이 되었다. 원기55년 10월13일 지하 1층, 지상 15층의 서울회관 신축 기공식이 있었으나 한달만에 문제가 발생, 소위 말하는 교단의 '남한강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건축 계약을 맺은 회사가 부도가 나면서 교단은 물질적 정신적으로 막대한 손해를 입었다. 교단은 이 손실을 극복하기 위해서 거교적으로 교단 창업기의 창립정신을 재결집해야만 했다. 이로부터 10여 년을 골조만 앙상하게 남겨둔 교단의 병근으로 한강변의 흉물이 되어 갔다. 이 당시 동작동 국립묘지를 다니던 박정희 대통령의 눈에 띄이게 되고, 청와대 사정특보였던 김영준(감사원장 역임)씨가 "저 건물이 무엇인데 짓다가 말고 방치되어 있느냐"는 박 대통령의 질문에 "원불교 건물인데, 짓다가 문제가 생겨 중단된 채 있다"고 답하자. "일이 될 수 있게 도와 주라"는 대통령의 지시로 서울회관 건축이 급물살을 타게 된다. 몇가지 법에 묶여있는 것을 풀어 1980년 9월13일 서울회관 신축 허가가 나오고, 10월5일 서울회관 건립 재공사 기공봉고식을 올리고 공사를 속개, 원기 67년(1982) 10월10일 지하 1층, 지상 6층의 준공 낙성 봉불식을 거행했다.

서울회관 건물은 교단에 중대한 가르침의 메시지를 남긴 역사적 상징물이다. 무지와 과욕, 욕속심으로 인해 큰 사기를 당한 남한강사건이었고, 재가출가 전 구성원들이 일심합력과 무아봉공으로 정재를 모아 위기를 돌파한 증표인 것이다.

교단은 원기 100년을 맞아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갖고 있는 서울회관을 허물고 그 자리에 원불교백년기념관을 짓기로 한 것이다. 건물 2채를 짓는데, 앞 건물은 지하 3층, 지상 12층 규모로 교화 공간 사무실과 100년기념실 등이 들어설 예정이며, 뒷건물은 지하 3층, 지상 3층으로 솥모양에 자연채광이 되는 대법당과 소법당 등 교화 전용 교당이 들어설 계획이다.

서울회관 건물이 아무런 사고없이 잘 철거되고, 그자리에 원불교백년기념관이 우람하게 세워지길 염원한다.
백년기념관 건축으로 서울회관 건물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지만, 서울회관이 남긴 역사적 교훈은 교단이 길이 잊지 않고 반추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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