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생수

▲ 김천호 교무/대성교당
첫 발령지로 대성교당에 부임해 겸하여 노인요양원에서 같이 일한지 6년이 되어가고 있다. 정말 노인복지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 내가 요양원에 일하면서 어려움이 많았지만 재미와 느낀 점도 적지않다.

치매에 걸린 어르신들은 무섭고 무조건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 만들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정말 고운 치매에 걸린 어르신들도 있다. 치매가 있으므로 해서 유치원생만큼이나 순진하고 해맑은 모습도 발견하고 의외의 행동으로 주변사람을 크게 웃게도 했다.

한편으로는 어르신들의 힘들어하는 부분도 많이 알게 되었다. 점점 기력이 떨어져서 산책도 쉽지 않고 취미생활도 주위의 도움이 없이는 할 수 없다. 활동범위가 줄어들다보니 생각은 자연히 자기 중심적으로 흐르고, 그러다보니 전에 없던 고집도 생긴다. 하지만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은 매우 외롭다는 점이다. 항상 가족들을 기다리고 조금이라도 관심을 받기 위해서 꾀병을 부리기도 하고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이야기하려고 한다. 외롭지만 어르신 입장에서는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고 기존에 알고 지내던 사람과 헤어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요양원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직원들은 말동무가 되어서 외로움을 달래어주려고 하지만 다른 일이 많을 때는 그것도 쉽지 않다.

그리고 어르신들이 맞이해야 할 큰 어려움은 바로 죽음이다. 어르신들의 마지막 임종을 지켜보는 일이 처음에는 너무 힘들고 두려웠다. 어제만 해도 그렇게 잘 이야기하고 식사도 잘 하던 분이 오늘 저녁에 힘들게 숨을 몰아쉬면서 손발이 점점 차가워지고 입술에 청색증이 나타나는 모습을 보면서, 죽음에 대한 공포가 나에게 밀려왔다. 그 앞에 원장과 직원은 당황하지 않고 어르신의 몸을 닦아주고 옷을 갈아입혀주는 모습에 놀라웠고, 잠시후 찾아온 가족들이 눈물을 흘리며 우는 모습을 보며 나도 작별의 인사를 마음속으로 했었다.

죽음은 사람사이에 더 이상 만나 이야기할 수 없고 온기를 느낄 수 없는 다른 차원으로의 단절이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미지의 세상이다. 이러한 죽음을 바로 코앞에 둔 어르신들은 어떤 마음일까? 출가하면서 해탈, 천도, 내생 등등 죽음에 관련한 많은 법문을 읽고 배웠지만 정작 죽음에 대해서 아는 것도 없고 준비된 것도 없다. 기존 호스피스교육이란 것이 있지만 현실적으로 요양원에서 이러한 호스피스교육이 진행되는 곳이 거의 없고 단순히 심리학에 바탕한 프로그램이라 한계가 있음을 느낀다.

그래서 원불교에서 운영하는 요양원만큼은 어르신들에게 죽음에 대해서 알리고 준비할 수 있도록 한다면 이것이 어르신들에게 최고의 서비스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죽음 이후의 세계를 어떻게 과학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오직 신앙적 믿음으로 마음의 안정을 얻고 영적 세계을 통찰한 성인의 가르침만이 죽음에 대해 알고 준비하는 길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원불교 교법에 바탕한 호스피스 교육기법을 개발하고 회기별로 나누어서 어르신들이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또한 매일 기도, 좌선, 염불로 마음을 닦고 수행하는 법도 함께 이루어지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라 생각된다. 요양원에 일하기 시작하면서 교무님의 권유로 아침마다 어르신들에게 염불과 요가를 지금까지 지도하고 있다. 처음에 일이 많을 때는 정말 귀찮은 프로그램이었다. 과연 이렇게 조금씩 하는 것이 무슨 소용일까 했다. 하지만 계속해오면서 느낀 점은 이 짧은 시간의 염불요가 프로그램이 어르신들이 기다리는 중요한 시간이라는 점이다. 염불요가 시간에는 항상 어르신들이 먼저 기다리고, 염불 한 구절 구절에 마음을 모으는 모습을 보면 나도 절로 마음을 모아진다. 사정이 있어서 염불요가를 안 하는 날이면 못내 아쉬운 말씀을 건내는 것을 보면서 이제는 될 수 있는대로 염불요가를 빼놓지 않기 위해서 노력한다.

노인인구는 550만명, 전체인구의 10%이며 앞으로 꾸준히 늘어가는 추세이다. 점점 노인복지에 대한 필요성이 강조되면서 경제적 지원은 풍부해지지만, 노인들이 가지고 있는 정신적 괴로움에 대한 인식은 부족한 듯 하다. 한평생 가족을 위해서 사회 국가를 위해서 헌신한 여러 어르신들이 말년에 안정을 얻고 내세를 준비할 수 있는 노인복지에 힘써야겠다. 이것이 곧 나의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며, 일체생령을 고해에서 낙원으로 인도하는 제생의세의 사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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