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빛내는 정전

▲ 김준영 교무/벤쿠버교당
살아가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겉으로봐선 그저 편안하고 문제가 없어보여도, 개인마다 남모르게 헤쳐가야할 수 많은 도전과 과제로 두려움과 힘겨움 속에 살아가고 있죠. 그러니 주위를 돌아볼 여유가 없습니다. 다가가면 멀어지는 신기루처럼, 삶은 또다시 새로운 과제를 우리들 어깨 위에 올려놓죠. 이렇게 살아온 세월이 얼마입니까? 언제쯤 우리는 여유를 갖고 주위를 돌아보며 스스로 행복하고 타인에게도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방법은 있는 걸까요?

'무아봉공', 원불교 대종사님께서 제시하는 방법입니다. '개인이나 자기 가족만을 위하려는 사상과 자유 방종하는 행동을 버리고, 오직 이타적 대승행으로써 일체 중생을 제도하는 데 성심 성의를 다 하자'는 거죠. 나와 내 가족만 잘되려는 마음과 행동을 내려놓고 널리 대중에게 유익을 주라, 일체의 사욕을 떠나 국가 세계를 위하여 일하라는 것입니다. 사대강령의 정각정행, 지은보은, 불법활용이 모든 행위가 사실은 무아봉공으로 귀결이 되죠. 말하자면 불법을 배우고 깨닫고 활용해 없어서는 살 수 없는 은혜를 느끼고 알아서 은혜를 갚아가는 행위가 결국은 자신이나 자기가족만을 생각하지 않고 세상과 대중을 널리 이롭게 하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자기 문제도 해결을 못하는 우리들에게 자신을 잊고(무아) 세상을 위해 힘써 일하라(봉공)는 말씀이 쉽게 이해가 되지 않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종사님이나 성자철인들께서는 한결같이 타인과 다른 생명에 대한 사랑과 헌신을 강조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그것은 그 길이 지금도 행복하고 영원히 행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면, 우리 대부분의 인류는 오랜 세월 주로 자신과 가족의 행복만을 추구하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그 삶에 고통은 끝나지 않았죠. 그렇게 자기 밖에 모르는 행복이란 채워도 채워도 끝이 없고, 지금 가진 행복마저도 언제 잃어버릴지 모르는 불안함이 동반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잊으라고 하셨죠. '나를, 나만, 나에게, 내가' 등등의 그 나에 집착하는 마음을 내려놓으라고 한 겁니다. 그 마음이 내려놓아지는 그 자리에 진정 참되고 지혜롭고 가슴 따뜻한 진정한 내가 자리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 지혜롭고 사랑가득한 나에게 세상이란 크고 넓게 확장된 나에 대한 또 하나의 이름입니다.

사실, '나'라는 한 개체를 세상으로부터 별립된 독자적인 존재로 분리할 수 없죠. 태어나고, 먹고, 입고, 숨쉬고, 살아가는 그 일련의 과정이 세상 모든 인연들과 소통하며 만들어지는 합작품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실을 인식하고 내려놓으면 되죠. 나와 내 가족만을 위하려는 집착만 내려놓는다면, 세상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됩니다. 집착을 내려놓으면 시기나 질투는 물론 외로움이나 불안으로부터 많이 자유로와 질 수 있죠. 세상이 어느새 든든한 또 하나의 가족으로 우리를 보호하고 사랑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평소에 우리가 익숙한 방식은 아니죠. 그러기에 수행삼으라고 하십니다. 믿고 실행하면 스스로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죠. 무아봉공, 어디서부터 어떻게 실행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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