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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출가인연으로 정법 만나
아들 출가인연으로 정법 만나
  • 남화연 교도
  • 승인 2016.03.04
  • 호수 179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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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새벽5시 법당에 앉아 기도해
아들의 서원이 흔들리지 않게 해달라
기도정성은 어머니, 남편교화로 이어져
▲ 남화연 교도/동이리교당
아들의 출가서원으로 원불교를 알게 돼, 원기95년 11월에 교당 일요예회에 첫 참석을 했다. 원불교를 알기 위해서는 일요예회를 빠지지 않고 참석해야겠다는 마음으로 혹여 일이 있어 다른 지역에 가게 되면 그곳에 있는 교당을 검색해 예회에 참석했다. 그렇게 5년간 무결석 교도가 됐다.

마음공부를 알게 되면서 기쁘게 생활하고 있는데 간사근무를 하고 있던 아들로부터 연락이 왔다. 아들이 8개월째 되는 어느 날, 큰 경계를 만났고 너무 힘들어 근무를 못하겠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겪었다.

마음은 당장이라도 달려가 데리고 오고 싶었다. 굴뚝같은 그 마음을 참느라 눈물이 절로 났다. 나는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겪었다. 그러면서 무엇이 옳은 일일지 고민을 했다. 아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법신불 전에 기도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마침 교당에서 반백일 정진기도를 진행하고 있어 함께 기도에 정성을 다하게 됐다.

원기97년 8월19일 일요예회를 시작으로 나는 매일 새벽5시에 법당에 앉아 기도를 했다. 소중한 나의 아들의 서원을 지켜달라고 법신불 사은에 기도했다. 또한 남편이 원불교에 입교하기를 기원하며, 나 자신의 공부가 순숙되어지기를 염원했다.

아침잠이 많은 나는 매일 같이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맞춰 놓은 알람소리를 듣지 못할 때도 있었고, 무리가 돼 한 달 가량 속이 울렁거려 하루종일 비몽사몽으로 보내기도 했다. '이제 기도를 그만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생길 때마다 나보다 더 힘들어 할 아들을 생각하면 잠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났다. 힘들어도 버텨보겠다는 아들에게 나의 기도가 조금이나마 힘이 되기를 간절히 염원했다. 그것이 엄마로서 아들에게 해줄 수 있는 사랑이었다.

그렇게 기도를 시작해 반백일 동안 기도를 끝까지 했고, 그 기도가 끝나고서도 계속 새벽에 교당에 나가 좌선을 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이제는 기도와 108배까지 하며 열심히 실천하고 있다. 아들은 생각보다 잘 버텨주었다. 군 입대를 했을 때는 아들과 자주 연락할 수 없으니 일주일에 한 번씩 편지를 써서 보냈다.

나는 항상 아들로 인해 이 법을 알게 됐고, 행복한 삶을 살게 됐다며 고맙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그리고 일요예회 때 교무님에게 들은 설법 내용으로 실생활에서 마음공부 한 이야기를 써서 2년 동안 아들의 신심이 변하지 않도록 잡아주었다. 아들은 17사단에서 1년 동안 전문하사로 복무를 하며 그곳에 근무하고 있는 문정석 교무님을 도와 지난해 11월1일 번개교당 봉불식까지 마무리하고 하사전역을 했다.

봉불식 때에 나는 전날 꽃 공양을 하기 위해 3시간을 달려가 법당 꽃꽂이를 해주었다. 아들 덕분에 군부대 봉불식 꽃 공양을 하게 돼 얼마나 행운이고 감사며, 행복이었는지 모른다.

아들은 올해 원광대학교 원불교학과에 들어가게 됐다. 아들이 공부를 마치고 교무가 된다 해도 나는 기도의 끈을 놓지 않고 죽는 날까지 소중한 아들과 가족을 위해 기도를 할 것이다. 기도는 행복한 삶을 살게 해주는 힘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날마다 기도하며 지내던 재작년 설 명절에 시어머니가 갑자기 쓰러져서 다리수술을 받게 됐다. 나는 예고에 없던 대·소변을 받아내는 간병인 신세가 됐다.

낮에는 어머니를 간병인에게 맡기고, 저녁에는 내가 간호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병원에 들려 어머니에게 "이만해서 다행이고 다 좋아질 거예요"라고 웃는 얼굴로 간호를 했다. 어느 날은 새벽에 교당에서 기도하고 병원으로 가는 도중에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애미야! 언제 오냐?"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왜요. 어머니?"하자 "대변이 나올 것 같다"며 다급한 목소리로 나를 찾았다. 나는 너무 급하면 참지 말고 볼 일을 보라고 했지만 시어머니는 참을 수 있으니 어서 오라고 보챘다. 그렇게 정성으로 간호를 했더니, 어느 날 어머니가 내가 말했다. "애미야! 네가 평소 나에게 잘하는 거는 알지만 내가 아플 때 더 잘해줘서 고맙다. 다리 다 나으면 원불교 나갈란다."

그 말을 듣고 너무도 기뻤다. 교회를 다니던 어머니는 손자가 원불교 교무가 되려고 하니 원불교 같이 가자고 하면 대꾸도 하지 않던 분이었다. 그런 어머니가 나의 정성스런 간병을 진심으로 알아주는 듯해 뿌듯했다. 어머니는 재작년 12월에 동이리교당에 입교했다. 한글을 잘 모르는 어머니가 혹여 독경하는 게 힘들까 봐 "어머니, 교무님 설법 말씀만 잘 들어도 돼요"하며 어머니를 더 알뜰히 챙겼다. 그런 어머니가 남편에게 말했다. "애미가 다른 곳에 빠지지 않고 원불교에 빠져서 다행이다. 원불교가 참 좋은 종교인 것 같다"며 가족교화의 터를 닦았다.

이렇듯 나는 아들로 인해 원불교를 알게 됐고 새벽 좌선, 기도, 108배로 삶의 활력을 얻게 됐다. 앞으로도 꾸준히 실천하여 나날이 진급하는 공부인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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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천경교무 2016-03-08 16:05:08
아들이 큰 마중물이었군요. 어머니의 신성 대단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