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환마을은평은 태양광발전소를 만들고, 보다 건강한 음식을 선택하며 지속가능한 의료를 실천하는 등 지역의 문화를 지켜가고 있다.
토트네스로부터 온 메세지

21세기가 시작되고 십년이 지난 2010년 나는 영국에서 한국의 구제역 소식을 듣게 됐다. 고향이던 강화도가 구제역의 진원지가 됐고 애지중지 키우던 동물들이 목숨도 끊기지 않은 채로 구덩이에 파묻혀 죽었다. 동네는 동물들이 우는 소리로 가득 차 마치 지옥 같았다고 한다. 동네의 동물이 모두 살처분 되는데 3일이 걸렸고 마을사람들은 초상을 치른 듯 슬픔으로 가득 찼다고 한다. 가축이 모두 사라지고 난 동네는 광기가 남았다.

사람들은 집에 불을 지르기도 하고 절망하여 싸웠다. 이웃들은 누가 구제역을 몰고 왔는지 서로 추궁했다. 환갑이 되어 처음 갔던 해외여행에서 돌아 온 이웃은 죄인이 됐다. 마을들은 무서워 마을로 들어오는 길을 막았다. 마을들은 섬이 됐고 사람들은 재앙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그리고 삼일 후 작은 어머니의 자살 소식을 들었다. 500마리 소를 집 앞에 산처럼 묻고서 자신도 이승을 떠났다고 한다.

그 해 350만 마리의 가축이 구제역으로 살처분 됐다. 2011년, 한국과 이웃한 일본, 후쿠시마 대지진으로 2만명이 죽었다고 하고 여전히 핵발전소에서는 방사능이 유출되고 있지만 아직도 위험지역에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방사능은 지구라는 공유재를 함께 쓰고 있는 지구의 생명들에게 모두 영향을 미치지만 자본은 모두가 해결된 것처럼 굴었다.

영국의 친구들은 절망한 나에게 한국에 돌아가라고 했다. "이곳 전환마을 토트네스(Transition Town Totnes)의 이야기를 전해 주렴. 우리도 너희처럼 절망위에 희망을 심었다고. 1997년 광우병으로 우리도 너희처럼 가축을 모두 죽이고야 알았다고." 그래서 나는 한국에 돌아왔고 전환마을을 한국에서 꿈꾸기 시작했다.

마을의 반격 '전환마을'

2006년 아일랜드의 킨세일(Kinsale)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시작된 전환마을운동은 지금은 전세계 40여개 나라 3000여 개의 마을과 도시가 참여하는 역동적인 마을운동이 됐다. 전환마을은 석유로부터 독립하고 에너지 사용을 줄이고 마을안에서 자립과 자족으로 나아가기 위해 마을 공동체를 회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마치 우리나라의 두레나, 계처럼 서로 돌보고 함께 공유하는 것 말이다.

전환마을은 개발과 돈이 중심이 된 마을만들기가 아니라 공동체의 복원이 우선이라고 말한다. 관계의 빈곤은 에너지의 빈곤이나 경제적인 빈곤보다 더 무서운 것이며 지구환경위기의 진짜 대안은 소통과 공유 그리고 우애와 협동이기 때문이다. 마을공동체의 복원과 이웃과의 관계 회복만이 에너지의 고갈과 환경위기에 맞설 재생가능한 자원이다.

환경이슈들이 등장한 1990년 중반 리우회의 이래 도시계획은 생태, 친환경, 환경, 지속가능한 녹색 등의 수사만 조금씩 다를 뿐 여전한 토건중심의 개발모형을 만들어냈다. 이는 주민의 자치적 역량이나 바람과는 다르게 관과 토건회사들이 중심이 된 계획들이 주를 이루었다. 친환경기술이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물량화와 자본화된 새로운 시장의 개척에 지나지 않았다. 그로 인해 마을 마치 친환경적인 사업들이 많이 벌어지는 것 같지만 그야말로 수사들만 화려할 뿐 결국은 토건족들의 배만 불리고 환경은 환경대로 훼손되는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토건 중심의 발전이 아니라 마을 안에서 순환하고 미래세대와 자원의 한계를 고려하여 스스로 지역 자원을 발굴하고 운영하는 '생태적 재지역화'를 고민하는 마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기후온난화와 석유정점이라는 인류의 당면한 문제를 정치인이나 기업은 절대 해결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이제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바로 지금부터 스스로 전환과 복원을 모색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바로 이것이 전환마을운동(Transition Town movement)이다.

전환마을은평 네크워크

은평에서도 2014년 11월29일에 전환마을은평 설명회를 열고 은평전환마을네트워크(가칭)를 구성해 전환마을의 가치를 알리고 마을에서 함께 살기를 고민했다. 마을 텃밭을 일궈 지역먹거리를 생산하고, 태양광발전소를 만들고, 보다 건강한 음식을 선택하고, 지속가능한 의료를 실천하고, 지역의 문화를 지켜가고, 지역의 생태와 마을을 보다 건강하게 꾸려가기 위해 노력하는 마을의 여러 단체와 모임들이 함께 참여했다.

그리고 마을에 전환의 가치를 알리기 위한 여러 활동들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전환마을예술학학교, 퍼머컬처학교, 잡초라도 충분한 풀학교, 은평발효학교, 자립자족학교, 생명의 논학교 등을 통해 지역의 생태자원을 찾아내고 그 안에서 소비를 벗어난 생산하는자로서의 시민을 길러내는 일들을 은평에서 해나갔다.

'전환마을은평'은 지금까지 해온 실천들을 보다 체계적이고 유기적으로 만들어가며, 기후변화와 지구 위기에 함께 대응해 나가는 일을 마을에서 구체적으로 해나가기 위해 일년만인 2015년 11월29일에 총회를 통한 단체를 설립했다.

마을에 전환의 씨앗심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위해 구산역 사거리에 전환마을은평의 첫 번째 사업소로 전환마을부엌인 밥·풀·꽃을 개업했다. 도시지역인 은평에서 로컬푸드를 생산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실험에 도전한 것이다. 은평의 도시농부들이 직접 생산한 먹거리를 은평의 요리사들이 요리해서 밥상에 올리고 마을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밥·풀·꽃은 오늘도 농사를 짓고 밥을 한다.
▲ 전환마을은평을 방문한 오래된 미래의 저자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큰 것은 작은 것들의 합일 뿐

전세계의 많은 전환마을들은 그저 한두 명의 작은 고민으로부터 시작했다. 그들은 뛰어난 활동가도 정부의 관료도 아니었다. 다만 이웃의 문제를 걱정하다가 그들의 행복을 위해 이웃인 내가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의 고민은 또한 미래 세대의 고민과도 맞닿아 있었다. 그래서 아주 작은 일부터, 아주 작은 모임부터 시작했다.

쓰레기를 만들지 않기 위해 쓰레기를 재활용할 방법을 만들고, 몸이 불편한 이웃이 편하게 이동할 수 있는 마을교통을 함께 고민하고, 비싼 전기료 대신 함께 나누어 쓰고 바꿔 쓰면서 에너지를 절감하고 빈땅에서 함께 농사짓고 잉여를 나누면서 자연과 사람을 돌보면서도 공정하게 분배 하려고 노력했다. 이런 작은 일들이 모여 그들은 마을 공동체를 복원해 내려고 했다. 큰 것은 작은 것들의 합일 뿐 결코 작은 일은 없다는 것을 전환마을운동을 동의하는 마을들의 확산으로 증명하고 있다. 전환마을 운동은 이처럼 행정에서 혹은 정책으로 하는 운동이 아니다. 아래로부터 위를 바꾸어내는 주민 스스로 기획하는 주민 주도형 지역을 만드는 일이다.

우리가 사는 곳을 지속가능한 마을로 만들어내자. 내가 도시가 싫어 시골로 떠난다고 지구가 안전해지는 것이 아니듯이 우리는 지금 내가 사는 곳을 가장 안전하고 건강한 곳으로 먼저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이제 내가 사는 이곳에서 바로 지금 위대한 전환을 시도할 때만이 기후 변화와 피크오일(Peak oil)의 대안이 될 수 있다.
▲ 소란(유원정) 교도/전환마을은평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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