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사에 대한 보은 작업 '우뚝 솟아 물은 흘러'
문화 교화 필요한 곳, 어디든 달려갈 것

'우리의 소리'가 젊어지고 있다. 연극, 대중가요 등과 더불어 새로운 색채를 덧입히고 있는 '요즘 판소리'는 신선함으로 대중과의 거리 좁히기에 나서고 있다. 신명나는 북 장단을 이용해 전통 소리를 전하고 있는 판소리 전수가 이은우 교도(호적명 이은숙·화산교당)를 전주 한옥마을에서 만났다. 단아하게 올려 묶은 헤어 스타일과 올곧은 자세에서 판소리에 대한 그의 뚝심이 느껴졌다.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소리를 시작했어요. 음악을 듣고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는데, 어머니 친구를 따라 국악원에 가게 됐죠. 그 때만 해도 소리꾼이 많이 어려웠어요. 국악이라는 장르가 곧 없어지겠다고 생각될 정도로 여건이 좋지 않았죠. 그런데 국악원에서 소리를 접하다 보니 더욱 빠져들 수밖에 없었어요. 나는 소리를 놓을 수 없겠다고 그때 깨달았죠."

경남에서 일반계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1986년 고향인 전주로 와서 소리 공부에 더욱 매진했다. 무형문화재 2호 홍정택 명창에게 수궁가를 사사받은 그는 1992년 남원 춘향제전 판소리 우수상, 1996년 부산 전국 국악 경연대회 명창부 대상을 수상했다.

"홍정택 선생은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판소리 '수궁가' 보유자예요. 선생님께 수궁가를 이수 받으면서 나는 내가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꾸중을 많이 들었어요. 서러워서 울며 연습을 했지만 내맘같은 소리가 나오질 않아 속상할 때가 많았죠. 2002년에 수궁가 완창 발표회 일정이 잡혔는데, 목이 따라 주질 않았어요. 그 때 선생님이 '누구를 가르치는 데에는 충분한 공부가 됐으니, 여기까지만 해라'라고 하면서 막으셨어요. 그 말을 들으니 더욱 오기가 생겼고, 그동안 소리에 매진해 온 지난 세월을 돌아보며 굳은 마음을 먹게 됐죠. 결국 발표회를 해냈고, 전주 대사습 명창부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그는 20여 년간 알고 지낸 이도심 교도(한국공연문화예술진흥회 뫼솔 이사장)를 통해 화산교당에서 입교했다. 같은 국악인의 길을 걷고 있는 이도심 교도가 법동지가 되어준 것이다. 이 후 이호인 교무를 만난 그는 인생의 더 큰 터닝 포인트를 맞게 됐다.

"이호인 교무님을 만난 뒤 제 인생에서 여러 가지 일을 이루게 됐어요. 첫 번째로 2006년 전주시 완산청소년문화의집에서 판소리 교실을 시작하게 됐죠. 교무님의 권유로 청소년, 일반인들에게 일주일에 2번씩 호남가, 농부가, 단가를 가르쳤어요. 이 때 소리를 익힌 교도들이 '화산교당 예술단'이 됐고 '제1회 전주시민 한 소리하기' 발표회에 출전해 대상을 받았습니다."

그는 이어 두 번째 일을 이룬다. 대종사에 대한 보은 작업으로 이뤄진 소태산 대종사 십상 '우뚝 솟아 물은 흘러' 창작극을 무대에 올린 것이다. 박청천 교무가 시나리오를 맡고, 박희태 교수와 도립국악단 유장영 단장, 신용문 교수가 그와 합심해 전국적인 행사를 치뤄냈다.

"이호인 교무님이 문화에 대한 안목이 있으셔서 공연을 해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한두 명이 아닌 예술단, 학생, 어린이, 어른 할 것 없이 한달 가까이 연습에 매진했어요. 그 때 어린 대종사 역할을 했던 아이가 제 아들 장삼수(서울대 국악과2)입니다. 그 이후 국악의 길을 걷게 됐죠. 지난해 국립국악원에서 개최한 제35회 온나라 국악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의 영예를 안았습니다. 다 사은님 덕분이에요."

2005년 한국 국악협회 부안지부 지도교수, 2007년 전국 김제 국악경연대회 지도자상 수상, 전국 국악 경연대회 심사위원 등 이제는 현직에서 물러나 후진 양성과 국악 전파에 매진하고 있는 그는 현재 영광교구 여성회 판소리 지도를 하고 있다. 누구나 처음엔 '나는 소리에 소질이 없다'고 얘기하지만 소리를 통해 스트레스를 푼다면 그게 정답이라고 얘기하는 그다.

"한 달에 두 번씩 신흥교당에서 소리를 가르치고 있어요. 처음에는 소리라는 것에 다들 겁을 내지만, 그들을 가르치고 나면 그 또한 배움이 되고, 공부가 됩니다. 예전에 앞을 못 보는 이를 가르친 적이 있는데, 배꼽 중앙으로 기준을 잡고 자기만의 선에 맞춰서 북을 쳐냈어요. 청각에 예민했기에 소리는 누구보다 잘해냈죠. 소질이 없다는 선입견을 없앤다면, 누구나가 할 수 있는 것이 소리입니다."

'명창'보다는 '소리꾼'이 되고 싶었다는 그는 스스로 일 중독이 아닐까 자문할 때도 있지만 판소리의 즐거움을 더 많은 이들에게 나눠주고 싶다고 말한다.

"사람들에게 많이 다가설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국악에 매료될 수 있다고 믿어요. 원불교와 국악의 정서는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합니다. 원불교와 국악은 사람들에게 안식과 편안함을 주죠. 저의 판소리 교실이 교화에 도움이 된다는 말을 들을 때면 더욱 힘이 납니다. 교화에 도움이 된다면 어느 곳이든 한 걸음에 달려가겠습니다."

전통 문화와 우리의 소리를 이끌어가고 있는 이은우 교도. 문화 교화를 향한 그의 단단한 의지가 엿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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