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화자의 삶

▲ 길혜선 정무/통영교당
나는 한 가지를 잡으면 끝장을 보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나라에 처음 가정용 컴퓨터가 보급될 시기에 남편이 한 대 설치해 줬다. 그때부터 사용하게 됐다.

요즘도 한나절을 꼬박 컴퓨터 앞에 앉아 있을 때가 많다. 그 일에 시간 투자를 많이 한 것이 지금은 교당의 문서는 물론이고 교당 행사시엔 현수막 디자인과 안내장을 만든다.

또한 교당의 행사사진을 화보집으로 편집을 해서 사무실에 비치해서 놓는다. 연말이 되면 '한해를 마무리하며'라는 제목으로 일 년 동안의 이모저모를 동영상으로 제작하여 교도들에게 보여준다.

해가 바뀌는 과정에서 지나간 것은 말끔하게 묶어서 보관을 해야 하고 새롭게 한 해를 맞이하는 과정에서 교당 사무실은 몹시 바쁘게 돌아가야 한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다. 아무리 바빠도 순서대로 일을 하면 순조롭게 잘 풀린다. 부교무는 우스갯소리로 그런 나를 보고 사달이라고 부른다. 사달은 사무의 달인을 줄여서 한 말이다.

그동안 앞만 보고 달렸다. 내 앞에 뭐가 있을지도 모르고 종착지가 어디까지 남았는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달렸다. 그러면서 내가 왜 달리고 있지? 무엇 때문에 달리고 있는 거지? 누굴 위해, 또는 어디로 달리고 있는 것일까? 멈추고 싶지만 그것이 내 맘대로 되질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에 정무라는 직책과 나를 잠시 멈추게 했다.

그래도 달릴 준비를 하는지 엔진소리를 쿨럭쿨럭 내고 있다. 뭔가를 끊임없이 하고자 하는 나, 잠시도 가만히 있으면 오히려 몸살이 나고 만다. 머릿속에서는 계속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야지'하고 보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도 많다.

교무님이 교당홍보 전단지를 만들어보라고 한 지가 한참 지났다. 하지만 나는 손에 다른 뭔가를 들고 있다. 그것은 손뜨개 바늘과 털실이다. 할머니 교도에게 신겨주려고 덧신을 짜고 있다. 법당이 마루라서 차가운 날이 되면 발이 시려온다.

시장에 가면 싸고 널린 게 덧신이지만 그냥 손으로 떠서 신겨주려고 싶은 마음이다. 그런 나를 뭐라고 야단도 못치고 교무님은 그냥 바라만 보고 있다. 그러고 보니 내 꼴 봐주기도 참 어렵겠다는 생각을 한다.

친한 정토가 묻는다. "혜선아 너는 아이들 다 키워서 혼자 살면 편안 할 텐데 왜 교당에 들어가서 고생하고 있냐?"

남들이 보기에 교당생활이 엄청 고생하며 살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가 보다. 하기야 혼자 살면 편할 것이다. 그러면 삶의 보람을 못 느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교당생활하면서 내가 받는 것이 너무 많다. 보이는 것과 잡히는 것은 물론이요 안 보이는 것까지 혜택을 받고 사는 느낌을 갖는다. 주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교당생활하면서 받는 입장으로 바뀌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행복한데 교당에 와서 받으려고 하니 처음엔 마음이 불편했다. 인생은 거래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니 이제는 그 불편함도 내려놔야겠다.

때론 교당에서 썩히기엔 나의 가진 재주가 아깝다고 하는 교도가 있다. 하지만 내 능력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는 곳은 교당생활이라고 생각한다.

내 재주가 울타리가 되어 교무님으로 하여금 일체중생을 제도하는 데 미약하게나마 보탬이 된다면 나 또한 지은이 되고 보은이 되지 않겠는가. 또한 정무가 나이가 익어가면서 교무와 함께 영생공부를 한다면 참으로 멋진 인생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봄이 오는 소리에 놀라 정원 한편에 수선화 싹이 무더기로 나왔다. 그 여린 싹들이 들썩들썩 땅을 헤집고 올라오듯이 정무도 많이 배출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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