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병원은 호스피스 환자의 통증·증상 완화와 보호자 가족의 안정을 위해 마지막까지 알뜰히 보살핀다.
원불교 생사관 통해 본 호스피스

아름다운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욕구만큼 '아름다운 죽음'에 대한 현대인들의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 생과 사가 둘이 아니며, 잘 죽어야 잘 날 수 있다는 이치를 아는 사람들, 21세기 호스피스사업이 각광받는 이유다.

생과 사가 인생의 가장 큰 일이기는 하나, 소태산 대종사는 "생로병사의 이치가 춘하추동과 같이 된다"고 했다. 인간은 누구나 생로병사를 겪게 되지만 뭇 생명과 다를 바 없는 자연스런 삶의 과정임을 뜻한다.

교단은 원기80년(1995) 5월 '원불교 호스피스회'를 단체등록하고, 원기83년부터 현재 익산 신동에 위치한 원병원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발기인으로 참여한 이래 20년 넘게 교단의 호스피스사업을 이어온 원병원 이정선 원장은 '원불교 생사관을 통해 본 호스피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대종사는 '생은 사의 근본이 되고 사는 생의 근본이 된다'고 했다. 한 생을 마무리하고 떠나는 일이 슬프고 안타깝기만 한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삶을 준비하고 맞이하는 중대하고 존귀한 시간임을 밝힌 것이다"며 "원불교 호스피스는 떠나는 환자와 떠나보내는 가족들에게 힘이 되는 바른 안내자 역할이다"고 말했다. 특히 올해는 그간의 활동을 인정받아 원병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호스피스 완화의료 전문기관'으로 지정될 가망성을 안고 있어 교단의 기대가 크다.

호스피스의 목적은 환자의 증상에 대한 완화로써 통증치료, 증상조절, 완화가 있고 환자와 그의 가족들에게는 정신적, 사회적, 영적 지지를 해주는 데 있다. 또한 환자의 질병에 대한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의사결정의 수행을 돕고 지속적이고 포괄적이며, 전인적인 돌봄을 목적으로 한다. 또한 사별 이후 유가족들이 느끼는 충격이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사후 1~2년까지라도 지속적으로 보살펴 주는 일도 포함한다.

그는 마지막으로 당부하듯 말했다. "호스피스는 죽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마지막 모습은 언제나 살아온 모습과 닮아있기 때문에 오늘에 감사하고, 베풀고, 용서하고, 사랑하면서 순간이 영생임을 알고 소중히 가꿔 가야 한다"며 "행복한 삶이 행복한 죽음을 선물한다"고 말했다.

육신은 생로병사로 변화하고, 영혼은 불생불멸의 이치 따라 윤회하며, 지금 잘 살아야 잘 죽을 수 있다는 인과보응의 이치를 깨달아 실천하면 그것이 곧 생사대사를 해결하는 일이라고 말하는 이정선 교무. 아름다운 생의 만남만큼 아름다운 이별을 위해 신앙의 절대적 힘을 빌려 그들의 든든한 안내자가 되고 싶은 그는 오늘도 환자 돌봄에 여념이 없다.

그리고 여기, 신앙과 수행의 힘으로 폐암 4기의 위기를 극복하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공부인의 사례를 통해 우리의 삶을 돌아보자.
▲ 마지막 임종을 앞두고 환자가 기거하는 안정실.

▲ 2년 전, 폐암 4기 판정을 받은 유성경(가운데) 교도는 남편 김성배 교도, 아들 김종진 도무 등 가족들의 알뜰한 보살핌과 신뢰로 병을 극복할 수 있었다.
폐암4기 극복한 공부인

둔산교당 유성경 교도

매일 감사생활 유무념

일평생 큰 병마없이 살아온 유성경(柳聖慶·81·둔산교당) 교도가 폐암 4기 판정을 받은 건 2014년 1월이었다. 몸무게가 37kg까지 내려갈 정도로 갑작스런 몸의 변화에 심상치 않게 놀랐을 법도 한데 그는 오히려 태연했다. 유 교도는 그때를 회상하며 "의사선생님이 적게는 3개월, 길어야 6개월 정도 남았다고 했을 때, 나는 오히려 '그렇게 더 살아도 돼요?' 라고 반문했다"며 자신도 신기할 정도로 편안했던 당시의 마음을 전했다.

사람은 누구나 생과 사의 이치를 거스를 수 없다. 소태산 대종사는 '나이 40이 되면 죽어가는 보따리를 챙겨야 한다'고 했듯 원불교 교법을 신앙·수행하는 그로서는 죽음의 길이 두려움이 아닌 언젠가는 거쳐야 할 과정이었다. 그는 의사가 처방한 표적항암치료제를 복용하며 마음을 다스렸다. "원망할 게 뭐 있나. 언젠가는 가야 할 길인데…"라는 게 그의 답이다.

그리고 6개월쯤 지나 다시 찾은 병원에서 그는 암세포가 모두 사라졌다는 결과를 확인했다. 2년이 지난 지금은 매일 먹던 표적항암치료제도 4일에 한번 꼴로 먹는다. 대신 한약을 매일 챙겨먹는다. 양방과 한방 협진 치료로 몸도 마음도 몰라보게 달라진 그를 보며 주치의는 기적이 아닐 수 없다고 한다.

이렇듯 그가 암을 이겨낼 수 있었던 배경에는 크게 세 가지 은혜가 있었다. 하나는 한의사인 아들(김종진 도무, 한국한의학연구원)의 적중한 한약 처방이고, 둘은 지극정성으로 보살펴준 가족의 사랑이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했던 처방은 자신의 과거 원망심을 내려놓고 감사의 기도로 매일 매일을 즐겁게 살아온 삶의 자세였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병을 거부하지 않고 온전히 받아들이는 일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그도 진통이 심할 때에는 몸에 열이 40도까지 올라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 적도 있었다. 그때마다 아들이 곁에서 지켜줬고, 손주들은 밤새 얼음찜질로 할머니를 간호했다. 살림은 당연 며느리와 남편의 몫이었다. 그는 "가족이 항상 고마웠지만 아픈 이후로 더 소중하고 고맙고 사랑스럽다. 감사가 절로 나온다"고 회고했다.

본래 천주교 독실한 신자였던 그는 아들의 출가로 인해 원불교를 처음 알게 됐다. 하지만 믿음을 옮긴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어서 그는 남편과 함께 다니던 성당을 끊고 1년의 긴 휴양기 겸 원불교 탐색기를 거쳐 2004년 입교했다. 그 이유에 대해 "가톨릭이나 원불교의 신앙이 크게 다르지 않지만 원불교의 교리가 더 구체적이고 실천적이다"고 말했다. 그렇게 스스로 선택한 종교였기에 공부에도 재미를 붙였다. 남편 김성배 교도도 곁에서 한몫했다.

특히 천주교에서 정성으로 올린 기도생활은 원불교에 입교하면서도 변함없는 힘이 됐다. 묵주기도를 하듯 염주를 돌리며 기도하고 조석심고며 교당에서 하는 100일 기도는 하루도 빼먹지 않고 성실하게 이행하는 교도로 거듭난 것. 남편 김성배 교도는 서울삼성병원에 정기검진을 하러 갈 때면 항상 108염주를 챙긴다. 아픈 아내를 위해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기도로 마음의 안정과 위안을 주고자 함이다. 좌산상사가 주었다는 108염주를 김 교도가 꺼내드는데 그 기도정성이 반질반질 윤이 난 염주에 묻어있다.

돌아보면 유 교도에게 지난 2년간의 투병은 자신과의 싸움이기도 했지만 그로 인해 얻은 게 더 많은 시간이었다. 자신의 병으로 가족 간 사랑이 깊어졌고 어려울수록 화합하려는 마음이 뭉쳤다. 뒤늦게 원불교에 입문했지만 감사생활의 원리를 확실히 알게 됐다. 특히 과거 어려운 시절에 쌓아둔 원망을 다 내려놓고 지금은 순간순간 감사하는 마음을 챙기는 유무념 공부에 정성을 들이고 있다.

그는 "건강이 많이 좋아진 것도 다행이지만, 지금 내 마음이 이렇게 편안한데 이렇게 살다가 언제 간들 무슨 걱정인가?"라며 소박한 웃음으로 텅 빈 마음을 내보인다. 병마와 싸우며 더욱 단단해진 마음으로 남은여생은 더 많이 웃고 감사하며 살고 싶다는 그를 구순의 남편은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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