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효천 교무/군종교구
약속 장소에 도착하여 지갑이 없음을 확인한다. 주머니를 다 찾아봐도 지갑은 보이지 않는다. 분명 나올 때 지갑을 챙겼다. 다시 차로 돌아가 운전석을 유심히 살펴본다. 보이지 않는다. 머물렀던 교당에 전화를 걸어 지갑의 유무를 물으니 없다고 한다.

생각이 멈추지 않는다. 만나기로 한 사람과 저녁을 먹으며 순간순간 지갑이 떠오른다. 명함이 들어있으니 만약 누군가 습득하면 전화를 줄 수도 있고, 카드를 썼다면 문자로 오겠지. 아직 누가 주운 것은 아닌가? 생각은 어느새 지갑의 유무를 떠나서 과연 누가 언제 가져 갔는가로 변해져 있다.

이렇게 마음이 붙어버리는 것을 착심(着心)이라고 한다. 착심은 나의 생각을 지극히 편협하게 하여 지갑을 확실히 잊어버렸다고 생각하는 순간 여러 가지 사고와 행동들에 제약을 주기 시작한다. 당장 앞의 인연에 오롯이 집중할 수 없게 한다. 현재로써 어찌 할 수 없는 상황을 붙잡고 모든 일들이 그것에 집중되어 나의 심신을 괴롭게 만드는 것이다.

또한, 착심은 주위의 모든 것을 의심하게 한다. 분명 챙겼으나 분실했다는 확신을 하며 주워간 누군가를 의심하고 명함의 연락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락을 주지 않는다고 은연 중 원망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일정을 마치고 돌아와 전화로 지갑이 없었음을 확인했어도 다시 그 주변을 세밀하게 찾아본다. 테이블 밑과 침대등 의심을 놓지 못한다. 결국, 이러한 마음은 최후일념이 되어 다음날 최초일념에도 지갑에 대한 생각이 떠오른다.

이제 놓자라는 생각으로 카드 분실신고를 하고 외출준비를 한다. 그 과정에서도 나의 눈은 아직도 구석 구석을 지갑에 대한 미련을 놓지 못하고 계속 찾아보고 있다. 머릿속으로는 착심을 놓는다 해놓고 실상 마음은 놓지 못하고 방에서 나와 차로 향한다. 뒷자리에 있는 짐들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의자 밑에 꽂혀 있는 지갑을 본다. 아~

어제 뒷자리에 물건을 옮겨 싣는 과정에서 물건 위에 올려놓고 떨어졌나보다. 지갑이라는 문제의 실체를 대면하게 되는 순간 모든 것을 인정하고 완전히 해결이 되어버린 마음을 본다. 모든 분별과 의심이 쉬었다. 갖고 있던 지갑이라는 착된 마음이 화로불에 눈 녹듯 사라져버렸다. 지갑이 법신불 일원상이 되었다.

내 마음의 착심과 그에 따른 분별을 놓기 위해서는 문제에 대한 실체를 확인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전화통화로 지갑은 이곳에 없다고 말해주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못한다. 내가 직접 경험해야 한다. 뒷자리에 있는 지갑처럼 실체를 봐야 모든 착심이 놓아지며 모든 분별이 쉬어버린다.

그 근본적인 노력이 수행이고 마음챙김이다. 육신의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성품에 바탕한 눈으로 본래 마음을 확인하는 노력이다. 분별이전의 그 마음자리를 내가 공부해 나가는 것이다.

모든 착심을 놓아버리고 자성의 정, 혜, 계로 세우는 노력이다. 내가 일원의 체성에 합해지지 않는 이상, 나를 괴롭게 하는 모든 마음작용에 대해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당연한 이치임을 알게 된다. 놓아지지 않는 일이 있다면 붙어버린 마음을 갖고 공부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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