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칼럼

▲ 박시현 교도/원남교당
한국외국어대 교수
'순리를 거스르지 않고 사람으로서 마땅히 하여야 할 도리를 지키는 사람'을 사람다운 사람이라고 한다. 모름지기 사람이 사람다워야 하듯이 원불교는 원불교다워야 할 것이다. 종교는 '근본 가르침'이자 '으뜸 가르침'이다. 그래서 누구든 종교를 신앙하는 사람은 자신이 믿고 받드는 종교의 교리가 으뜸 되는 가르침이기 때문에 그 가르침을 배우고 익히고 실천하려는 노력을 하는 한편 자신의 종교를 타인에게 권장하는 일 또한 중요시한다.

우리가 종교를 논할 때 흔히 '성스러움'과 '속스러움'을 구분하지만, 본디 제불 조사 범부 중생이 공히 불성을 가지고 있으며 일상생활 속에서 도를 실천하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우리로서는 수행을 일상생활 속에서 하므로 성·속을 구별할 것이 없다.

종교는 사회적 연대감을 긴밀하게 하는 긍정적 기능을 하지만 자칫 내세적 행복을 강조함으로써 현세적 가치를 평가절하하게 되어 부정적으로 기능하기도 한다. 학자들의 주장대로 종교의 역할이 '사회 구성원들에게 집합적인 의식과 정감을 마련해 줌으로써 사회로 하여금 하나의 도덕 공동체가 되고 질서와 안정을 누릴 수 있게 하는 것'이라면 사회에 종교로 인한 갈등이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사람이 태어나서 백일, 첫돌을 맞이하고 성장하여 결혼하고 회갑을 지나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 의례를 치르게 되는데, 단계마다 종교적 의식을 행함으로써 종교가 진리의 세계 또는 절대의 세계와 인간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때 종교의 의례적 기능이 중요하기는 하나 그 예법이나 의식의 규모가 '사회발전에 장애가 되고' 결국 '우리의 생활을 해롭게'하는 수준의 것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불교정전〉 '불공하는 법'에서 인용)

우리는 법신불의 진리가 크게 드러나는 시대를 기다리고 있다. 천지 부모 동포 법률의 은혜가 지중함을 알고 실천으로 보은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자유와 평등을 존귀한 가치로 알고 인권이 바로 서는 사회, 상생의 덕이 충만한 세계를 건설하고자 하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겠는가? 우리 교단이 대사회적으로 원불교답게 움직이고, 원불교인이 각자 일상생활 속에서 원불교인답게 처신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한 개인으로서도 원불교인답게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 수도 있지만 따지고 보면 그리 어려울 것도 없다. 일원상서원문 따라 서원 일념을 시시로 챙기고 계문을 잘 지키며 일상수행의 요법을 대조하면서 자리이타를 실천하는 노력을 끊임없이 하면 결국 공부와 사업을 고루 잘 하게 될 것 아니겠는가?

문제는 집단으로서 교단의 지도자들이, 교도들이, 원불교 공부인들이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원불교를 바로 인식시키고 사회에 올바로 기여하는 종교가 되게 하는 것인가이다. 원불교가 100년의 역사 속에서 수많은 교육기관을 통해 인재를 양성하고 장학사업을 펼쳐서 '세계진화와 인류문명의 발전에 기여'하는 한편 각종 산업기관을 통해 영육쌍전 정신을 구현하고 훈련기관을 운영하여 교도 및 일반인의 수행을 진작시켜왔는가 하면 신문, 방송, 출판 등의 문화활동을 통한 간접 교화에도 심혈을 기울여왔으니 과연 이소성대, 무아봉공의 정신이 아니고서 어떻게 그 많은 일을 해낼 수 있었겠는가? 은혜심기운동, 한울안운동, 삼소회, 봉공회, 여성회 등 교단 내 여러 단체의 활약, 그 밖의 사회 복지 실현을 위한 다양한 활동과 시설 운영 또한 사회에 기여하는 올바른 종교로서 원불교를 자리매김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된다.

현재 원불교는 중앙총부를 중심으로 국내에 14개 교구, 500여개 교당, 200여개 기관을, 해외 20여 개국에 5개 교구, 50여개 교당, 20개 기관을 설립하여 운영 중이니, 100년 만에 이룩한 규모로서는 참으로 대단하다고 할 것이다.

필자는 여기서 "도가의 명맥은 시설이나 재물에 있지 아니하고 법의 혜명을 받아 전하는데 있나니라"(〈대종경〉 요훈품 41)고 하신 소태산 대종사의 말씀을 상기하고 원불교다움이 어디에 있는가를 살펴보자는 제안을 하고 싶다. 대규모 행사를 치르는 일이나 교당불리기·키우기, 건축 사업에 동원되는 인력, 재물, 시간의 소모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때다. 교화를 위한 홍보가 불필요하다는 것이 아니다. 기왕에 계획한 행사는 물론 일심합력으로 잘 치러서 우리 각자 자신을 바르게 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어야 할 것이고, 세몰이를 위한 또는 세 과시용 교단홍보가 되고 마는 일은 결코 원불교답지 않은 일이므로 지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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