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빛내는 정전

▲ 김준영 교무/벤쿠버교당
종교는 길입니다. 목적지에 닿을 수 있는 길이죠. 걷는 것은 우리들 몫입니다. 스스로 걸음을 내디뎌야 원하는 곳에 갈 수 있죠. 마음을 챙기고 몸을 움직이는 실천을 통해 삶이 변하고 행복에 다가갈 수 있습니다.

"성주야! 아무리 해도 살이 안 빠지네. 어쩌면 좋아?" "고모, 아무리 한 것 맞으세요? 혹시 생각만 하고 노력은 안 한 거 아니에요?" 며칠 전 조카와의 대화입니다. 어디 다이어트뿐일까요? 이 모습이 우리의 실상입니다. 살도 빼고, 공부도 잘 하고, 돈도 잘 벌고, 부부관계도 원활하며 아이들도 잘 키우고 싶죠. 남들로부터 대우도 받고, 칭찬도 받고, 존재감을 드러내며 잘 살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게 뜻과 같이 쉽지가 않죠. 좋은 것은 갖고 싶고, 싫은 것은 피하고 싶습니다. 가지면 더 갖고 싶고, 나만 갖고 싶죠. 욕심이고 탐욕입니다. 게다가 개선을 위한 실천은 싫어하죠. 살던 대로 살고 싶고, 불편하거나 힘든 일은 하기 싫어합니다. 게으름이죠. 때로는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원만하게 원하는 것을 얻고, 원치 않는 것을 피할 수 있는지 방법을 모르죠. 힘들다고 하면서도 멈출 줄 모르고 자초한 고통에 끊임없이 괴로워하는 어리석음이죠.

한 마음 돌이키면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있더라도 마음을 못 내고 의심하며 결정을 못합니다. 믿지 못하는 마음, 불신이죠. 이 모든 불신과 탐욕과 나태와 어리석음이 우리를 유혹하며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게 합니다.

사정이 그러하니, 아무리 마음이 있어도 실천은 더디고 삶은 쉽게 변화하지 않죠. 그렇기 때문에 마음을 챙겨야 합니다. 굳건한 진리에 믿음의 뿌리를 내리고, 꼭 이루려는 분발심을 일으켜, 끊임없이 의문하며, 끝까지 정성을 다해 우리가 원하는 길을 걸어가야죠. 오늘도 내일도 조금씩 쉼없이 걸어가야 하는 겁니다. 잊지 않고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죠.

그래서 원불교인은 모일 때마다 '일상수행의 요법'을 암송합니다. 매일 좌선을 할 때마다, 모임이 있을 때마다 그 실천을 돌아보며 외우고 다짐하죠. '1. 심지는 원래 요란함이 없건마는 경계를 따라 있어지나니, 그 요란함을 없게 하는 것으로써 자성의 정을 세우자. 2. 심지는 원래 어리석음이 없건마는 경계를 따라 있어지나니, 그 어리석음을 없게 하는 것으로써 자성의 혜를 세우자. 3. 심지는 원래 그름이 없건마는 경계를 따라 있어지나니, 그 그름을 없게 하는 것으로써 자성의 계를 세우자. 4. 신과 분과 의와 성으로써 불신과 탐욕과 나와 우를 제거하자...'

갈 길은 멀고, 유혹은 달콤합니다. 정말 잘 살고 싶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죠. 그래서 우리는 경전을 봉독하며 성현들이 본 세상을 믿고 진리에 대한 이해를 깊이하며, 좌선으로 마음을 맑히고, 기도를 통해 서원을 키워 나갑니다. 노력없이 이루어지는 일은 없기 때문이죠.

명심하세요. 무슨 일이든 한 방에 얻어지는 신비의 묘약은 없습니다. 돌리고 세우고, 일으키고 제거하며 쉬임없이 나아가야 하죠. 끊임없이 챙겨야 합니다. 놓아도 자유로울 때까지 챙겨야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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