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은 이웃종교들도 잔치다.

천주교는 병인박해 150년을 맞아 특별미사와 심포지엄 등을 열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1월까지를 자비의 특별 희년으로 선포, 행사들을 펼치고 있다. 개신교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한 해 앞두고, 한반도 평화조약 체결을 위한 서명 운동을 세계적으로 전개한다.

그런데 이 의미있고 즐거운 한 해, 실제 우리 사회 체온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머리로는 알겠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는 굼뜸, 될 것 같다가도 확 타오르진 않는 답답함. 종교계 전반이 뜻뜨미지근한 분위기다.

국내 종교인구는 2명 중 1명, 그러나 '종교를 신뢰한다'는 사람은 10명 중 1명(11.8%)뿐이다. 지난해 10월 <한국의 사회·정치 및 종교에 관한 대국민여론조사> 결과는 전년 25.0%의 반도 안되는 수치로 충격을 줬다.

반면 종교인의 사회참여에는 찬성 27.8%가 반대 24.7%를 처음으로 앞질렀고, 종교가 사회에 해야 할 일로는 '약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보살피고 위로한다'가 꼽혔다. 우리 사회는 약자를 보듬고 행동하는 종교를 원하는 것이다.

지금 종교계 전반의 침체는 이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쓰디쓴 성적표일 것이다. 초기 교단 정신을 지키고, 죽기로써 불의에 저항하며 정의를 지키는 '존경받는 종교'의 모습에서 너무 멀리 와버린 건 아닐까.

최근 조계종이 밝힌 올해 계획은 잃어버린 신뢰도를 찾기 위한 노력을 보여준다. 기존 노동위원회를 사회노동위원회로 확대, 노동·인권·환경·성소수자 등의 문제를 풀어가는 한편, 사찰 햇빛발전소 도입, 지역 생태에너지 공동체 등 우리에겐 익숙한 포부도 당차게 세운 것이다.

다종교 국가 한국은 특정 종교의 노력이나 변화를 빨리 알아보고 또 요구한다. 끊임없이 사회 현안에 대해 살피고 교법에 바탕한 목소리를 내야하는 이유다. 서울광장에서 진행될 천도재가 고맙게도 우리 역사를 보듬겠지만, 최근 잇따르는 자녀학대 및 살인, 독도와 '위안부' 교과서 개악 등 종교가 지켜줘야 할 이들은 날로 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21일 세계인종차별철폐의날을 맞아 원불교시민사회네트워크(원씨네)가 발표한 성명서는 가뭄에 단비와 같다. 심해지는 차별과 혐오, 선동에 맞서는 귀한 목소리. 작지만 큰 이 걸음 하나가 한바탕 잔치보다 훨씬 거룩할 수 있을 것이다, 종교에 '약자를 위로'해주기 기대하는 저 많은 국민들에게는 말이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