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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 / 경기인천교구 구리교당 송천권 교도
신앙인 / 경기인천교구 구리교당 송천권 교도
  • 강법진 기자
  • 승인 2016.04.08
  • 호수 179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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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생에는 꼭 전무출신 하려고요"
새벽기도, 법문사경으로 하루 열고
차량봉사, 교당 텃밭관리로 복 장만
그는 담박한 사람이었다. 매순간 분별심이 일어났는지, 무관사에 동하지는 않았는지 체크하고 또 체크하며 하루의 시작과 끝을 맞는다. 더한 욕심은 없다. 남은여생 동안 교법에 더 가까이 다가가 다음 생에는 꼭 전무출신을 하겠다는 서원뿐이다.

인터뷰 도중에도 "무관사에 동하지 않으려고 수시로 마음을 챙기는데 어제는 유념이 6건, 무념이 1건이었어요. 전날만 해도 무념이 없었는데…" 라며 무척 아쉬워하는 그, 구리교당 송천권(59·宋天權) 교도다.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말처럼 사실 그는 12년 전, 큰 교통사고로 중환자실에서 한 달간 의식불명 상태로 누워있었다. 생사를 오가는 갈림길에서 기적같이 살아난 그에게 원불교는 삶의 원천이었다. 사고 후 다음 생에는 전무출신 하겠다는 일념으로 매순간 정신을 바짝 차리고 산다는 그. "가끔 <원불교신문>에 기간제전무출신 광고를 보면 마음이 불같이 일어난다"며 멋쩍게 웃어 보인다. 아직은 온전치 못한 그의 몸이 앞서가는 마음을 제어하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이번 생애에는 큰아들 송인법 예비교무(원불교대학원대학교 1년)의 출가로 만족해야 할 모양이다. 이렇듯 그날의 사고는 그의 인생을 바꿨지만, 담박한 그의 삶에 서원을 더욱 굳게 다지게 한 계기가 됐다.

경북 성주가 고향인 탓에 정산종사와 먼 친척뻘이 된다는 그는 고등학교 때 우연히 성주교당 학생회가 마을 봉사활동을 와서 원불교를 알게 됐다. 그 인연으로 학창시절 즐겁게 법회도 보고 전무출신의 꿈도 꾸었다. 하지만 인연은 닿지 않았다. 장성하여 가정을 이루고 나서도 한참 뒤에야 길에서 우연히 발견한 구리교당. 그다음 날, 아내에게 "아무것도 묻지 말고 오늘은 나만 따라 와" 하고 다시 찾은 교당에서 그는 매일 새벽기도를 올리며 신앙의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늦깎이 공부인의 신심을 시험하려 했던 것일까. 이제 막 신심의 뿌리를 견고히 다지고 있는 그에게 그날의 사고는 축산업 사업도 접게 했고 얼마간 교당에 발길도 끊은 채 두문불출 하게 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그에게 손을 내민 건, 양덕천 교무였다. "교무님이 어느 날, 저희 집에 찾아와 어딜 같이 가자고 하더니 어린이집에 데리고 가더라고요. 그러면서 월급 생각하지 말고 운전을 맡아달라고 하셨죠." 축산업을 했던 그에게 어린이집 차량운행은 조금 하찮은 일쯤으로 여겼다. 그의 마음을 알아챈 양 교무는 "봉사다 생각하고 월급 따지지 말고 해달라"고 했다. 이해가 되진 않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예" 하고 대답이 나왔다. 덕분에 지금은 5년째 오남복지어린이집 차량운행을 하며 건강도 찾고 일자리도 얻었다.

점점 자신감이 붙은 그는 교당에서 가까운 거리의 차량운행은 자진하여 봉사를 한다. "생각하면 그때의 제안이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그 래서 어린이집 퇴근하고 시간이 나면 교당에 들려 할 일을 찾게 돼요."

그렇게 챙긴 또 다른 유무념 하나, 한 해 교당 방문 횟수 160번 채우기다. 지난해 120번을 목표했다가 그 기준치를 훨씬 넘겨 올해는 상향 조정했다. 아픈 후로는 월~금요일 집에서 기도를 하고 토요일은 교당에서 새벽기도를 한다는 그. 기도도 기도려니와 다음 날 일요예회 준비를 위한 교당청소를 하기 위해 애써 새벽 찬바람을 맞고서 교당에 나와 기도를 하는 것이다. "제가 안 하면 교도님들이 해야 하고, 교무님이 해야 하는데 그러면 안 되잖아요"라는 게 그의 답이다.

한 해 두 해 그렇게 하다 보니 어느새 교당의 주인이 된 그는 교당 옆 작은 텃밭관리도 하고 있다. 날이 풀리면 채소 모종을 심으려고 땅도 일궈 놓은 상태다. 정성으로 가꾼 채소가 여름 한 철 구리교당 일요일 점심 식탁에 소담스레 차려질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기쁘다.

"지난해는 토란을 시범삼아 심어봤더니 튼실하게 열려서 교도님들과 함께 나눠먹었어요. 작은 것이라도 나눌 수 있다는 게 감사하죠."

몸이 완치되지 않았기에 그가 먼저 다가가기 전까지 교도들도 선뜻 그에게 부탁하는 법이 없다. 그걸 알기에 스스로 봉사하는 습관을 들여온 송 교도. 그렇게 사심 없이 순수하게 일궈온 공부가 그의 정신과 육신을 더욱 살찌게 한지도 모르겠다.

그의 하루는 4시50분 알람과 함께 시작한다. 잠에서 깨면 간단한 세면을 하고 5시부터 자리를 펴고 선에 든다. 6시 출정과 함께 원음방송을 틀어놓고 법문사경을 한다. 그 날 감각된 바가 있는 법문 구절은 매일 단원과 지인들에게 법문문자로 보내는 부지런함도 부린다. 구리교당 조인서 교무는 "교도님의 성실함은 모두가 알아주죠. 그래서 제가 부재 중일 때는 마음 놓고 교당을 맡겨요. 그런 교도 한 사람만 있어도 교무가 교화하기 훨씬 수월하죠"라며 그에 대한 든든함을 표했다.

"법문을 실천하는 교도가 되는 게 목표다"며 "다음 생에 전무출신 하려면 부지런히 교당과 가깝게, 법문과 가깝게 살아야 한다"면서 다시 바쁜 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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