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 용어

'강자·약자의 진화상 요법'은 최초법어 가운데 세 번째 등장하는 법문이다. 〈불법연구회창건사〉에 따르면 1928년(원기13) 2월26일 서울 계동 이공주의 집에서 민자연화ㆍ이성각ㆍ이동진화ㆍ이공주ㆍ이철옥ㆍ이현공ㆍ성성원 등 회원에게 구체적인 내용으로 다시 설해졌다. 이 법문이 초기교단의 간행물인 〈월말통신〉 창간호에 이공주 수필 '약자로 강자되는 법문'이라는 제목으로 실렸는데, 현재 〈정전〉에는 많은 내용이 생략된 요체만 드러나 있다.

그 생략된 내용 가운데에는 가난하고 배운 것 없는 갑동리 사람들과 가세가 넉넉하고 견문 많고 똑똑한 을동리 사람들을 약자와 강자로 비유한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당시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과 일본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일제강점기의 어려운 시국 가운데 소태산 대종사가 불법연구회를 통해 대중교화를 직접 실천해 가는 모습을 본 도산 안창호 선생은 "나의 일은 판국이 좁고 솜씨가 또한 충분하지 못하여, 민족에게 큰 이익은 주지 못하고 도리어 나로 인하여 관헌들의 압박을 받는 동지까지 적지 아니하온데, 선생께서는 그 일의 판국이 넓고 운용하시는 방편이 능란하시어, 안으로 동포 대중에게 공헌함은 많으시면서도, 직접으로 큰 구속과 압박은 받지 아니하시니 선생의 역량은 참으로 장하옵니다"(〈대종경〉실시품45)고 했다.

'약자로 강자되는 법문' 가운데 약자가 강자를 현명하게 상대하며 큰 피해를 내지 아니하고 강으로 성장해 가는 갑동리 사람들의 예화처럼 소태산 대종사는 그와 똑같은 실천적 평가를 받은 것이다. 더불어 이러한 평화적 독립운동 전개는 소태산 대종사가 '조선의 간디'라 불려지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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