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도광 교무/공군사관학교, 성무교당
청명(淸明)이다. 요맘 때부터 날이 풀리기 시작해 화창해지기 때문에 청명이라고 한다. 이로 인한 봄기운에 주변 벚꽃들이 활짝 폈다. 길을 따라 만개한 벚꽃은 더욱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어디 벚꽃뿐이랴? 아무것도 없었던 딱딱하고 앙상한 나뭇가지에 푸릇한 새싹들이 야들야들하게 피어오르며 세상을 푸르게 물들일 준비를 하고 있다.

이런 봄기운 풍경에 요즘 산책을 하면 여기저기서 피어나는 새싹들과 꽃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 쏠쏠함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내가 생활하고 있는 주변을 예쁘게 꾸미고 싶은 마음으로 인한 욕심이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나뭇가지마다 활짝 핀 벚꽃에 나의 발걸음이붙잡혀 "이거 우리 교당 올라오는 계단 옆에 심었으면 참 좋겠다", "이거 우리 교당 뒤편 휴식공간에 심었으면 참 좋겠다" 하고 욕심 부리며 산책을 한다. 하지만 내가 욕심을 부린다고 옮겨 심을 수도 없는 일임에 괜히 내 마음속에 커다란 벚꽃나무만 심었다 잘랐다 하면서 허전함을 키우고 돌아올 뿐이다. 이 허전함을 달래기에 딱 맞는 대종사 법문이 있다.

"너는 어찌 좁은 생각과 작은 자리를 뛰어나지 못했느냐! 교당이 이 소나무를 떠나지 아니하고 이 소나무가 교당을 떠나지 아니하여 소나무와 교당이 모두 우리 울 안에 있거늘 기어이 옮겨놓고 보아야만 할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네가 아직 차별과 간격을 초월하여 큰 우주의 본가를 발견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니라." 이 내용은 대종사가 조송광 선진과 전음광 선진을 데리고 교외 남중리(현 남중교당 인근 구 도로 옆)에 산책을 하는데 조송광 선진이 길가의 아름다운 큰 소나무 몇 주를 보며 "이 아름다운 소나무를 우리 교당으로 옮기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하는 이야기를 듣고 대종사가 한 말이다.

사람의 마음은 똑같다. 욕심이 생기는 그 마음. 그러나 대종사는 그 마음에 큰 우주의 본가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 했다. 그럼 내 마음에 큰 우주의 본가를 발견하면 욕심도, 짜증도, 미움도, 원망도 생기지 않는 것일까? 정말 그런 걸까? 그럼 큰 우주의 본가는 어떻게 찾아야 하나? 대종사는 이 물음에 살며시 땅에 '스윽' 하고 일원상(O)을 그려주며 "일원상을 찾아 그 주인이 되는 방법은 삼대력의 열쇠를 얻어야 하고, 그 열쇠는 신·분·의·성으로써 조성한다"고 말했다.

오롯한 믿음 신(信)과 용장하게 나가는 마음 분(忿)과 확실한 해답을 얻기 위해 탐구하는 마음 의(疑)와 거짓 없고 정성스런 마음 성(誠)으로 삼대력을 얻어 내 마음 가운데 큰 우주의 본가 일원상을 모시는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이 세상 모든 만물이 무궁한 묘리와 무궁한 보물과 무궁한 조화가 하나도 빠짐없이 갖추어짐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무궁한 묘리, 무궁한 보물, 무궁한 조화가 하나도 빠짐없이 갖추어진 세상이라니…. 상상만 해도 행복하고, 충만하다. 이 자리는 나와 만물이 곧 하나이니 말이다.

이 자리에서 내 벚꽃이 어디 있고 네 벚꽃이 어디 있을 것인가? 그저 교당 앞에 피어오르는 푸른 새싹으로 온천지 봄기운을 만끽해보며 즐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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