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칼럼

▲ 박인건 교도/남대전교당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는 막강한 독재자가 등장한다. '빅 브러더'는 정보독점 및 국민감시 체제를 통해 가공할 만한 위력을 발휘한다. 그 수단으로는 사상통제와 과거통제 방법을 동원했다.

텔레스크린으로 시민의 감정, 표정까지 완전 통제한다. 절대 권력에 반항할 경우 즉각 잡아간다. 개인의 사생활이나 인권 따위는 그 어디에서도 보장 받을 수가 없다. 과거를 날조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모든 기억에서 '자유'나 '평등'이니 하는 말의 의미를 아예 삭제해버린다. 사고 가능성조차 완전 차단된 상태다. 개인은 그저 독재 체제에 길들여질 따름이다.

과연 이게 소설이나 영화 속의 얘기로만 머물까? 아니다. 그러잖아도 국가기관의 무차별적인 통신자료 조회 논란이 빚어지곤 한다. 테러 방지 명분으로 일반 국민들이 빅브라더에 의해 감시당하는 사회 구조가 가속화될 개연성을 배제하기 힘들다. 국가권력이 사용화(私用化)될수록 첨단 기법을 활용한 그런 유혹을 벗어나기가 어렵다.

인간 최고수 이세돌 9단과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알파고'의 세기적인 바둑 대결 결과가 우리 사회에 던진 메시지에서도 이와 유사한 우려가 그대로 읽힌다. 인간의 고유영역으로만 여겨졌던 '통찰'과 '직관'에서 조차 이세돌의 그것을 능가하고 말았으니 향후 알파고가 어떤 모습으로 인류에게 다가설지 무거운 과제를 던져준다.

인공지능이 자율 판단에 따라 인명 살상을 결정할 경우 여러 윤리적 문제가 따른다. 인공지능이 각종 판단을 하고 행동하는 과정에서 어느 수준의 자율 결정권을 맡길 건지, 그리고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지 윤리 문제가 나올 수밖에 없다. 어떤 경우든 윤리적 판단 주체는 인간이 돼야만 한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판단 보조기능에 국한시키는 규제가 필요하다.

물질문명이 날로 발전을 거듭하면서 인간의 생활수준이 대폭 향상되고는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은 물론 국가, 사회적으로도 정신문명은 오히려 후퇴하고 있으니 위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른바 신자유주의 시장경제 논리에 대한 비판이 작지 않다. 빈부격차의 심화, 환경문제 등 지구적 위기 또한 간과할 일이 아니다. 어디를 가나 인류공동체의 가치나 만 생령의 존엄성은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다. 그럴 때마다 이를 극복할만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표어가 바로 인간이 비로소 주체가 되는 길을 제시해준다. 소태산 대종사는 개교의 동기에서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으로써 정신의 세력을 확장'할 것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그리하여 물질세력을 항복 받아 파란고해의 일체생력을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함에 방점을 찍었다.

소태산의 후천 개벽사상은 물질을 배척하거나 극복의 대상이 아닌 활용의 대상으로 본다. 도학과 과학의 병진·영육쌍전·이사병행을 통하여, 과거의 모든 사상과 종교를 현대에 맞게 하나로 살려냈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 인공지능 또한 잘 활용할 수 있어야하고 스스로 통제할 수 있도록 우리의 정신적 힘을 단련시키고 키우는 데 있다.

4차 산업혁명은 지난 1월 스위스 다보스포럼에 이어 오는 6월 중국 톈진에서 열리는 하계 다보스포럼에서도 주제로 선정될 만큼 세계적인 대세로 자리 잡았다. 지구촌이 4차 산업혁명의 흐름에 빨려 들어가는 모양새다. 연구 기술, 고용, 비즈니스 모델 등에 획기적인 혁신이 불가피하다.

세월호 참사 이후 인성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됐듯이 알파고 충격 이후에도 똑 같은 논리가 적용된다. 지식이나 지능 위주의 교육방식에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인문사회·도덕적 가치를 더 크게 살려야 할 때다. 원불교 창립 100주년을 맞아 인류가 당면한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행복한 정신개벽 공동체를 비롯해 생명존중, 상생상화의 평화 세상 등의 대종사님의 가르침이 더욱 빛이 난다.

100주년 기념식에서 제시될 '정신개벽 선언문'은 재가 출가를 막론하고 원불교인이라면 당연히 실천해야 할 덕목이 돼야 할 것이다. 상극으로 서로 막혀 있는 울을 트고 서로가 잘살게 되는 상생의 기운으로 뒤바꾸는 개벽이야말로 만생령을 살린다. 가정과 직장, 사회 그리고 국가, 세계를 대상으로 참다운 봉사와 무아봉공에 헌신해야 한다.

공부와 사업 모두 확실한 지향점을 설정하고 불법을 생활 속에서 잘 활용해서 가는 곳마다 불은화할 수 있어야 하겠다. 100주년을 맞아 세상에 더 큰 둥근 빛이 되고 세상에 따스하고 밝은 은혜와 희망을 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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