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성택 원로교무
앞에서 합(合)은 거시적 세계관이며 리(離)는 미시적 세계관이라 했는데 불교는 거시적 세계관을 부정하는 경향이 강하고 기독교는 인식론적인 미시적 세계관을 부정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이야기를 전개하여 왔다.

미시적 세계를 긍정하는 동양의 사상에서는 과학이 발달하지 않았다. 과학과 종교가 같이 거시적 세계와 미시적 세계를 인정하고 합리적이다 보니 서로 분쟁이 없이 진행되어 왔다.

그러는 반면 서양은 종교가 미시적 세계를 부정하다보니 과학이라는 학문이 신에 대한 반발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甚多니이다 世尊이시여 何以故오 若是微塵衆이 實有者인댄 佛이 卽不說是微塵衆이니 所以者何오 佛說微塵衆이 卽非微塵衆일새 是名微塵衆이니이다

"심히 많나이다. 세존이시여! 어찌한 연고인가 하오면 만일 이 띠끌들이 실로 있는 것일진대 부처님께서 곧 이 띠끌들이라고 말씀하지 아니하실 것이니다. 그 까닭이 무엇인가 하오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띠끌들이 곧 띠끌들이 아닐새 이것을 띠끌들이라 이름하나이다."

띠끌이 실제 있는 것이 아니라 띠끌이 공(空)했다는 뜻이다. 우리가 수행을 하다가 보면 아공(我空)의 경지를 이른다고 하는데 이 말은 아상이 없다는 말이다. 내가 비면 상대방도 비게 되고 내가 차 있으면 상대방도 차 있게 되는 것이 나를 통해서 상대방을 보는 이치 때문이다. 이를 아공(我空) 법공(法空)이라고 한다. 내가 한때 학생들과 대둔산에 소풍을 가서 계곡 옆에서 선을 하다가 한 글귀가 떠올랐다.

대둔선경계곡변(大芚仙境溪谷邊) 대둔산 신선이 노니는 계곡 옆에서
행인정좌청수성(行人靜坐聽水聲) 지나가는 사람 조용이 앉아 물소리를 듣고 있네
산공수공아역공(山空水空我亦空) 산도 비었고 물도 비었고 나 또한 비었으니
천지미분공겁외(天地未分空劫外) 하늘땅이 나뉘기 전이라 시간공간이 있기 전이구나

아상이 없는 마음으로 일체 티끌을 대하면 그 띠끌도 공하게 되니 그 공해진 띠끌을 시명미진(是名微塵)이라 한 것이다.

금강경이 처음부터 강조하는 것이 아공(我空)이라 할 수 있는데 나부터 공해지면 세상 모든 것이 공해지기 때문이다. 아공 법공을 반야심경에서는 색은 나타난 것이고 공은 빈 것이라 하여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라고 한다.

世尊이시여 如來所說三千大千世界도 卽非世界일새 是名世界니 何以故오 若世界- 實有者인댄 卽是一合相이나 如來說一合相도 卽非一合相일새 是名一合相이니이다

"세존이시여! 여래의 말씀하신 삼천 대천 세계도 곧 세계가 아닐새 이것을 세계라 이름하나이다. 어찌한 연고인가 하오면 만일 세계가 실로 있다 할진대 이것이 곧 하나의 큰 전체상(一合相)이나 여래의 말씀하신 하나의 큰 전체상도 곧 이 하나의 큰 전체상이 아닐새 이것을 하나의 큰 전체상이라고 이름 하나이다."

이 부분에서 금강경의 아주 중요한 단어가 나오는데 그것이 일합상(一合相)이다. 이 일합상의 세계에 가면 거시적 세계(맨눈으로 볼 수 있는 세계 또는 감각으로 직접 알 수 있는 세계, macroscopic world)와 미시적 세계(너무 작아서 맨눈으로는 볼 수 없고 현미경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세계, microscopic world)가 서로 만나 하나가 된다.

일합상의 범어는 'pinda-graha'로 모든 것을 하나의 전체로 보고 그것이 실체라고 집착하는 것을 말한다. 이 일합상이 단어를 가지고 가까에서부터 넓게 해석해 보기로 한다.

마음속에 있어서 일합상은 '번뇌(煩惱) 즉 보리(菩提)'이다. 중생의 세계에서는 번뇌는 번뇌고 보리는 보리이지만 부처의 세계에서는 모두 보리이다.

인간에 있어서 일합상은 화신으로써 32상과 법신의 수행상이 하나이다. 사람은 몸과 마음이 같이 있어야 하듯이 몸으로도 원만하고 마음의 깨달음으로 원만해야 한다.

형상에서의 일합상으로 일체 현상은 법신불의 응화신이다.불교는 변화의 가능성 때문에 합(合)을 부정하는 경향이 있듯이 흩어지면 법신에 합하고 나타나면 화신으로 들어난 것이다.

보시의 일합상으로 칠보보시와 사구계 보시는 하나이다. 복덕과 복덕성의 관계와 같은 것이다.

고락의 일합상으로 고와 낙은 하나이다. 고도 진급하는 고가 있는데 이를 대종사님은 정당한 고라고 하였고 결과적으로 락을 불러온다. 인간사는 수많은 고락을 겪어가며 가는 것인데 우리가 공부하는 이유는 고는 낙으로 바꾸자는 것이며 낙은 계속 지속하도록 하여 결국에는 고락에 얽매이지 않는 극락을 수용하자는 것이다.

지구의 일합상으로 민족·국가·언어·문자 등이 모두 다르다. 언어의 예를 들자면 유네스코에 등록된 언어가 6,000개 이며 문자는 300여개이다. 이렇게 다양하게 나뉘어져 있지만은 알고 보면 모두가 한가족이라는 것이다.

우주의 일합상으로 우주 공간은 합의 세계고 수많은 별들이 있는데 이는 미진의 세계인데 이 둘이 하나로 되어 있다. 이런 일합상의 세계가 일원상의 진리와 상통한다고 보다면 대종사님께서 이 금강경을 보시고 얼마나 기뻐하셨을까?를 짐작할 수 있다.

일합상의 세계에서 보면 이 우주는 이합집산 과정의 연속이라 할 수 있다. 그 모습이 변하는 이치다.

정산종사는 〈원리편〉에서 "한 큰 원상이 돌매 천만 작은 원상이 따라 도나니, 마치 원동기가 돌매 모든 작은 기계 바퀴가 따라 도는 것 같나니라"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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