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교화 이야기

▲ 최수진 교무/태국개척교화
해외교화는 어느 곳을 막론하고 교민교화를 뺄 수 없다. 인연따라 이곳에 모인 한인들을 만나고 그들로부터 새로운 문화를 공부하게 된다. 1년 전 부타원님의 안내로 입교를 하게 된 이도광 교도를 소개 받았다. 아는 이 하나 없던 이곳 타지에서 나에게는 너무도 큰 선물이었다. 그 만남을 시작으로 박도전, 채도융, 변도진 교도를 만나게 됐다. 현지에서 경험이 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차차 교당을 안정시키고 법회를 보기 시작했다.

해외에서는 한국어 교육도 또한 경쟁력이 있다. 교화의 한 방편으로 한국어교사 자격증과정을 등록하고 대학원과 학부과정을 밟기 시작했다. 대학에서 한국어과정을 만들고 수업을 시작했다. 한류에 대한 관심이 높은 태국인들은 한국어수업에 적극적이다. 이들을 통해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알리면서 자연스럽게 내가 누구인지도 소개하게 된다. 이 시간은 태국인들을 만나 서로의 문화를 공유하는 소중한 시간이 된다.

학생들과 주간을 보내고 주말엔 교도들과 선공부를 위주로 교화가 시작됐다. 현재의 법도량을 마련하고 법신불을 모시고 기도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교화를 시작하는 모습에 스스로 감탄하기도 한다. 교당 마련 300일 기도가 끝나고 100주년 기도를 함께했다. 한인사회에 아직은 소극적으로 활동하고 있으나 삶에 대한 아픔이 있는 사람들이 교도들을 통해 교당을 방문하고 상담을 하고자 하나둘 드나들기 시작한다. 이들에게는 잠시라도 마음을 내려놓을 곳이 필요했다. 그들이 마음을 잠시 쉬어가면서 또한 자신의 삶의 주인공으로 다시 일어서기를 기도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방콕은 정말 관광의 도시답게 쉬지 않고 손님들이 드나든다. 한국에서 3000명이 매일 방콕으로 들어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인구 전체의 50%가 농업에 종사하고, 나머지 50%가 관광업에 종사한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동남아 지역에는 현재 캄보디아 바탐방, 프놈펜, 베트남의 하노이와 호치민, 태국의 방콕, 그리고 라오스와 미얀마에 삼동인터내셔널이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동남아 지역 교무들은 1차 바탐방에서 모였다. 그리고 2차에는 하노이에서 모였다. 우리들은 새벽기도와 오전 선방 그리고 오후에는 대산종사 법문 녹음, 저녁에는 108배, 7일간의 일정을 갖고 각 교당의 상황을 보고받고 현재 가장 어려운 점이 무엇인지 공유하고 헤어졌다. 이곳 동남아에 나와 같은 서원으로 일하고 있는 교무들이 있다는게 얼마나 든든하고 힘이 되는지… 정말 좋았다. 언제라도 문제가 생기면 한국보다 먼저 달려와줄 도반들이 있다는 생각에 말 못하는 고독이 저멀리 달아나는 것 같았다.

상좌부불교의 나라. 이곳에서의 이색적인 경험은 대종사의 교법을 어찌 전해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고뇌를 쉬지 않고 하게 해준다. 한국불교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개혁된 원불교의 정신이 어떻게 스며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 그리고 나는 한국사회의 그 때 그 날의 일들을 조사하게 됐다. 차별제도가 없어진 세상을 만난 우리는 교육과 사회적 활동에 있어 어떤 제약도 받지 않고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곳 태국이라는 나라가 가진 가부장적 전통사회가 200년 넘게 그대로 전해지고 있어 곳곳에서 그 차별문화를 접하게 된다.

더욱이 사계절이 뚜렷한 대한민국에서 30년 넘게 살다가 4계절 내내 덥다, 조금 덥다, 많이 덥다, 아주 덥다라고 묘사되는 이곳에서의 생활은 어느 계절에 어떤 곤충이 집에서 발생하는지, 어느 계절엔 그 벌레들이 오지 않도록 어떻게 해야 하는지, 습도가 갑자기 높여졌을 때 왜 몸이 아픈지 등을 배우기에 급급하다. 여전히 언제 상추씨를 마당에 뿌려야 할지, 무엇을 하면 벌레들의 공격을 받는지 등의 문제들은 나를 긴장시킨다. 누구나 타향살이를 쉽게 생각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토록 더운 나라에서 혼자 감당하는 일은 때때로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나 능력을 무력화시키기도 한다.

외국어를 구사하는 것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의사소통 정도의 영어 실력뿐인 내가 새로운 언어인 태국어에 도전하는 것은 그야말로 고통이 아닐 수 없다. 4성 성조가 존재하는 것 뿐만 아니라, 문자 자체가 70여개로 구성되어 있어 그 순서를 익히는 일 또한 쉬운 일은 아닌 듯하다. 스승과 창자를 이어야 한다는 말은 이걸 뜻하는 것인가?

때때로 그 법문과 이곳에서의 삶을 상상한다. 아 이런 거였나. 아 그렇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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