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원불교100주년기념대회에 참여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과 정치계 대표들이 경산종법사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원불교, 민족종교의 '근대화' 주체적으로 달성한 종교
국가와 민족·인종·종교 차이 뛰어넘는 '보편성' 중요
원불교100주년기념대회, 교단적 대전환 계기 되길 염원
국민신자에서 세계시민 신자로, 세계적 종교로 거듭나길

 

5월1일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원불교100주년기념대회'에 다녀왔다. 1916년 일제강점기에 소태산 대종사가 원불교를 창립한 이후 한국의 4대 종교로 발전한 원불교로서는 '100년 이후 시대'를 열어가는 큰 행사를 한 셈이다.

원불교 인사들과의 인연들

개인적으로 원불교와 인연의 끈이 적지 않은 편이다. 원불교 인사 가운데 교유해온 친구들이 적지 않다. 참여연대에 몸담고 있던 시절에는 원불교 대표로 이선종 교무가 공동대표로 함께 했기 때문에 이래저래 원불교 인사들과 만날 기회가 적지 않았다. 원불교 인사들이나 원불교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특강에도 몇 번 초대받아 이야기할 기회를 얻기도 했다. 2000년대 초반 〈박정희와 개발독재시대〉를 쓸 적에는, 소태산 대종사가 탄생한 전남 영광에 있는 당시 영산선학대학교의 황영규 총장이 기회를 줘서, 한 3주 정도 그곳에서 먹고 자고 생활하면서 그곳 교수님들과 교유했던 적도 있다. 그뿐 아니다. 내가 재직했던 성공회대에서 시민사회 활동가를 위해 개설한 NGO 대학원에는 목사, 신부는 물론 원불교 교무들도 적지 않았다.

혁신 통해 민족종교의 근대화 달성

나는 종교인은 아니지만 원불교에 대해서는 대단히 흥미롭게 생각해왔다. 내가 이해하는 바에 의하면, 원불교는 일제 식민지 지배 하에서 이른바 '전근대적인 불교'를 근대적 민족종교로 재정립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식민지 시기의 암울한 상황에서 다양한 개혁운동이 민족독립운동, 사회주의운동, 안창호 등의 교육운동 등으로 표현되었다고 하면, 원불교는 '종교적 삶의 근대화'라고 하는 큰 역사적 노력이었다고 생각된다.

어떤 의미에서 원불교는 민족종교의 '근대화'를 주체적으로 달성한 셈인데, 과거 종교에서 전근대적 허례허식과 기복적 성격을 떨쳐내고, 과감하게 남녀평등을 실현해내고, 근대적인 대의체계로 종교행정을 운영하는 등 당시로서는 대단히 혁신적이었다. 현재 1500명의 교무 중에 남녀 비율이 거의 반반이라고 한다. 원불교에서는 출가와 재가 교도 대표가 공동으로 구성하는 '수위단회'(모두 35명으로 구성됨)라고 하는 최고 결의기구에서 종법사도 선출하고 중요한 사안들을 결정한다고 한다. 근대 초기에 성직자 수준에서 남녀평등을 실현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다.

이런 혁신의 역사보다 내게 더 경이로운 것은, 해방 이후 우리 사회가 미국의 강력한 영향력 하에 있었고, 개신교와 가톨릭의 교세가 사회를 압도하는 분위기 속에서도 원불교가 명맥을 유지해온 것은 물론, 신도 100만여 명에 이르는 한국 4대 종교로 자리매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해외로까지 교당이 확산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해방 이후 한국에서 교회를 다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로 여겨지고, 절에 다닌다고 하면 '특이한' 일로 받아들여질 정도였는데, 거기에 '원'불교를 믿는다고 하면 이건 매우 '범상하지 않은 일'에 속하는 사태임에도, 원불교가 이런 눈부신 종교적 발전을 이룩한 것이다.(크리스마스가 1949년에 공휴일로 지정되었고, 석가탄신일은 1975년에야 공휴일로 지정되었다는 사실이 상징하는 바를 생각해보면 우리 사회의 분위기를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10개국 언어로 번역된 경전

원불교와 조우하면서 내가 특히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는 것은, 민족종교가 어떻게 세계종교로 변화해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원불교는 현재 해외 각지에 약 50여개의 교당이 있다고 한다. 100주년기념회에서 가장 중요한 프로그램도 10개국 언어로 번역을 완료한 경전(교서)들을 봉정하는 행사였다. 영어, 일본어, 러시아어, 아랍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는 물론 에스페란토어로도 번역이 되었다고 한다. 기독교는 그리스어, 희랍어, 영어로 된 경전이 여러 외국어로 번역되고 한국어로도 번역되었다. 원불교의 경우는 한국어에서 세계 각국어로, 정반대의 경로를 밟고 있는 셈이다.

세계종교의 보편성을 확보할 것인가

원불교에서 특강을 할 기회가 있을 때, 나는 단지 해외교당을 만든다는 의미를 넘어서서, 혹은 경전을 여러 해외 언어로 번역한다는 차원을 넘어서서, 어떻게 원불교가 세계종교적 보편성을 창출할 것인가, 어떻게 원불교 윤리를 세계종교 윤리로 재구성할 것인가 하는 점이 중요하겠다는 이야기를 했던 기억도 나고, 지금도 그런 생각을 한다. 이 점은 한류가 한국의 문화상품일 뿐만 아니라 세계인이 즐기는 문화상품이 되려고 한다면, 그 내용에서 보편성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과 마찬가지이다. 앞으로 한류의 확산도 그런 과제를 안고 있다.

100주년을 기한 '서울선언문'에서 밝힌 것처럼, "오늘날 인류사회는 국가와 인종, 종교와 사상에 따른 독선과 오만, 욕심과 갈등으로 인한 전쟁과 테러, 질병과 기아, 환경파괴와 인간의 존엄을 잃어가는 시대에 직면해 있다"고 할 때, 이러한 현시대를 뛰어넘는 종교적 내용과 메시지를 어떻게 창조해낼 것인가 하는 점이 관건이다.

종교란 창시자와 창시자가 남긴 언어와 메시지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창조는 '재해석'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해야 할 것이고, 그런 점에서 나는 근대 민족종교로서의 원불교가 세계화시대에 보편성을 갖는 세계종교로 확장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심지어 한국 '민족' 종교라는 것도 넘어서야 할 것이다. 국가와 민족, 인종, 종교의 차이까지를 뛰어넘는 어떤 '보편성'을 내장해가야 할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유대교가 기독교로 재정립되는 과정과 유사한 과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국민을 넘어 세계시민으로

나는 '들은풍월'로, 원불교에서 마음에 드는 메시지 가운데 '공도심(公道心)'이란 말을 좋아한다. 요즘처럼 사익과 자기 중심주의적 경향과 '선사후공(先私後公)'이 지배하는 시대에, 공도심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지 않을까 싶다. 세계시민윤리에도 국경을 넘는 공도심의 실현이라는 지향이 들어가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100주년 대회를 기해 '경산종법사'가 전한 설법에서 "국민을 넘어 세계시민이 됨이 필요하다"는 표현이 있었다. 세계시민교육을 강조하는 내 입장에서는 귀가 번쩍 틔는 대목이었다. 아마도 원불교가 민족종교에서 세계종교로 승화해가는 과정은, 신자의 입장에서는 '국민 신자'에서 '세계시민 신자'로 변화해가는 과정이 될 것이다.

인공지능시대의 정신개벽?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가 선포한 핵심적인 메시지는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였다. 인류사회는 물질적 기술적 변화 발전을 끊임없이 이루어왔으며, 그에 상응하여 정신적, 윤리적 차원도 부단히 혁신을 이루어왔다. 알파고의 충격이 아직 가시지 않은 오늘날은 인공지능시대,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맞고 있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물질적, 기술적, 경제적 변화로 인해 머지않아 유토피아가 도래하기라도 할 것처럼 생각하는데,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 변화들은 이전 보다 더 큰 권력과 부의 차원에서 더 큰 불평등과 사회관계의 왜곡을 동반할 수도 있다. 반드시 그렇게 되지는 않겠지만, 로봇과 인공지능이 가진 자들과 권력자들의 도구가 되어, 서민들은 더 심한 '노예'가 될 수도 있다.

나는 '정신개벽'은 이런 차원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정신개벽은 그러한 새로운 시대에 부응하는 신념, 문화, 행위양식, 관계양식, 인식과 태도, 윤리 등으로도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원불교 100주년 서울선언문'에서 "우리는 물질을 선용하고 환경을 존중하는 상생의 세계를 만들어간다"라고 한 구절에 주목했다. 나는 이 구절이 단지 표현에 그치지 않고 원불교의 윤리와 문화, 행동 속에서 살아 움직였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본다. 경산 종법사는 설법 중에 "인간은 능히 선할 수도 있고 능히 악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정신개벽이 물질개벽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선한 미래'가 열릴 수도 있을 것이고, '악한 미래'가 열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이번의 원불교 100주년 기념사업을 진행하느라 무척이나 고생했을 정상덕 교무(기념대회 집행위원장)는 그가 성공회대 대학원 다니던 시절 나의 논문지도 학생이라, 더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기념대회를 지켜보았다. 원불교 100주년을 다시 한 번 축하하며, 100주년이 원불교가 보편적 메시지를 바탕으로 세계종교로 발돋움하는 대전환의 계기가 되기를 기원한다.

▲ 조희연/서울시교육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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