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생수

▲ 전종만 교도/수원교당
토요일 새벽. 당직을 서는데 술 문제가 있는 입원 환자가 와서 이런저런 실랑이를 벌이느라 2시가 넘어서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다가 교무님 전화벨 소리에 비몽사몽하며 잠에서 깼다. 느닷없이 감상담 발표를 하라고 해서 얼떨결에 대답을 하고 말았다. 막상 대답해 놓고 보니 잠이 완전히 달아났다. 나름대로 감상이야 있지만 사실 앞에서 발표할 만한 특별한 감상이 아니기에 걱정이 됐다. 그냥 전화를 받지 말 것을 하고 후회하다 보니 문득 한 생각이 났다.

원불교 개교표어이자 이번 100주년 기념대회의 슬로건인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구호도 일종의 전화벨 같은 것이 아닐까라는 감상이다.

물질에 취해 온전한 정신을 갖지 못하고 비몽사몽 하고 있는 중생들에게 대종사는 '이제 그만 깨어나 정신을 수습하라'고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계속 당부의 전화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어제 교무님의 전화를 무시하고 계속 잠을 잤다면 나는 그냥 잠충이가 됐을 것이다. 하지만 전화벨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어났기에 자칫 막연한 느낌만으로 지나칠 수 있었던 시간들을 다시 한 번 돌아보고 정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그처럼 대종사의 법문을 들은 우리도 항상 그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고 깨어난다면 우리가 맞이하는 새로운 100년은 더 의미 있게 발전하고 진급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교무님의 전화 한 통을 통해 얻은 이 감상을 염두해 잊지 말고 늘 깨어있는 정신으로 대종사를 비롯한 여러 선진들과 부지런히 마음의 통화를 나눠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이번 기념대회를 치르며 나는 가슴을 울리는 몇 가지 감동적인 순간들이 있었는데 첫 번째 감동은 독경과 함께 시작됐다. 집사람 이름이 '영주'라서 독경시간에 '영주'하면 평상시에도 가슴 설레고 경건한 마음으로 독경을 했지만, 이번 기념대회의 독경은 더 특별했다. 경기장의 거의 꼭대기 층에서 5만 여명의 인파들을 보며 '모든 이들이 지금 다 한 가지씩 생각만 하고 있어도 어마어마하겠구나! 말로만 듣던 오만 가지의 생각이라는 것이 바로 이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독경이 시작되는 순간 그 오만 가지의 생각들이 오직 독경 일념으로 모아지면서 형언할 수 없는 장엄함과 경건함이 온몸을 정화시키는 느낌을 받았다. '마음을 하나로 모은다는 것, 일심을 갖는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하고 경험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두 번째 감동은 전 세계에서 전해진 축하영상이다. 지구촌 작은 나라인 대한민국. 그 가운데서도 궁촌 벽지에 살던 한 젊은이의 깨달음이 불과 1세기 만에 인종과 문화와 언어가 다른 세계 시민들에게까지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며 정신 개벽이, 그 깨달음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세계 10개 언어로 번역된 경전을 봉정하는 장면은 〈대종경〉 전망품의 법문을 직접 눈으로 확인 하는 듯한 생생한 감동의 순간이었다. 이소성대 정신으로 격동의 한 세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해 온 원불교가 다음 1세기에는 또 어떻게 하나의 세계를 개척하고 있을지 사뭇 기대가 되는 시간이었다.

세 번째 감동은 돌아오는 차 안에서 바라 본 교도들의 표정에서 느낄 수 있었다. 기념식 시간과 대회식이 끝나고 버스 탈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거의 동일해 어찌보면 지루하고 짜증이 날 법도 한데 볼멘소리 한 번 없이 양보하고 배려하는 모습은 정말 감동이었다. 특히 교통 상황을 생각해 들고 나는 시간까지 정확하게 통제하고 일원의 체성에 합하는 마음으로 이를 잘 따르며 원만하게 행사를 치르는 우리 원불교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사실적 도덕의 훈련이 무엇인지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많은 교도들과 함께 이번 행사를 치르며 경험한 이런 감동의 순간들은 내가 앞으로 신앙과 수행을 해나가는 데 든든한 힘이 될 것 같다. '지난 100년의 가르침을 통해 다가올 100년을 우리가 함께 준비한다면 광대무량한 낙원세계 건설은 결코 공허한 말로만 그치지는 않겠구나! 그리고 낙원세계 건설의 책임은 결국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있겠구나'하는 생각을 하며 우리 모두가 함께 같이 한다면 못 이룰 세상이 없겠다는 '같이'의 '가치'를 되새겨 보았다.

마지막으로 '100주년'이라는 일생 단 한 번의 시간을 감동으로 함께 맞이할 수 있게 도와준 수원교당과 전국에서 모인 교도들에게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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