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종교로 도약하기 위해
교화의 세계화라는 도전적 과제와 만나야

▲ 홍정호/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전문연구원

개신교(감리교) 목회자의 한 사람으로서 원불교 10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소태산 대종사의 가르침을 받들어 제도종교의 허식을 버리고 일원상 진리의 한 길로 깨달음을 추구해 온 원불교도 여러분의 지난 100년 정진이 새로운 세기를 맞아 더욱 보람 있는 결실로 무르익어 가길 기원한다.

2세기를 맞이하며 보편종교로의 도약을 모색하는 원불교와 20세기를 넘긴 그리스도교 사이에는 역사의 간극을 뛰어넘는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그리스도교와 원불교 모두 기존 종교의 쇄신에서 출발하여 독자적인 교리와 제도를 갖춘 종교로 발전했다는 점, 식민체제에서 고통당하는 대중의 삶에 뿌리내린 민중운동의 성격을 지녔다는 점,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의 연대를 신앙과 실천의 우선적 관심으로 여긴다는 점이다.

그리스도교의 여러 교파 가운데에서도 근대 계몽주의의 신앙적 유산을 계승하는 감리교회는 원불교와 더 많은 부분을 공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감리교회는 성공회 사제인 존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의 부흥운동으로 출현한 개신교의 한 교파로서 유럽의 종교개혁과 계몽주의적 합리성의 전통을 계승하는 교리와 실천의 체계를 지니고 있다.

웨슬리의 감리교 운동이 새로운 종교의 창시로 이어지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원불교와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지만, 칭의(justification)와 성화(sanctification)의 조화를 통한 믿음과 실천의 균형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근대 합리주의의 영향 아래 태동한 원불교 신앙과 활발히 대화할 수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한국의 감리교회는 신앙의 토착화(土着化)라는 맥락에서 원불교와 근대성의 유산을 공유하고 있다. 한국 그리스도교의 역사에서 신앙의 토착화에 관한 관심은 선교 초기부터 시작됐으나, 토착화 신학의 논의가 본격화 된 것은 1960년대 이후 문화신학자들의 공헌을 통해서다. 감리교 신학자들을 중심으로 전개된 토착화 문화신학의 흐름은 서구화와 그리스도교화를 동일시하는 이른바 '선교사 신학'의 한계를 비판하며, 아시아적 영성에 기반을 둔 한국적 그리스도교의 형성을 위해 노력해 왔다.

이들 토착화 문화신학자들은 그리스도교 전래 이전의 전통 종교를 그리스도교적 맥락에서 재해석하고,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전통 종교의 시각에서 재구성함으로써 서구와 그리스도교의 결합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간주해 온 종래의 신학적 편견을 극복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착화 신학의 논의는 그리스도교의 보편적 일치와 화합이라는 연속성의 맥락에서 전개됨으로써 새로운 한국적 종교의 탄생과는 거리를 둔 지역 신학의 보편적 흐름 안에서 발전해 왔다.

이와는 달리 지난 세기 원불교의 토착화는 불교와의 단절성을 심화시키는 방식으로 전개되어 온 것으로 보인다. 원불교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불법(佛法)에 연원을 두면서도 소태산 대종사의 가르침에 따라 불교를 급진적 재해석함으로써 불교의 한 분파에 머물지 않는 독자적인 근대 민족종교로 발돋움해 왔다.

이것은 그리스도교의 2세기가 유대교와의 차별성을 모색하며 독자적인 교리와 제도를 갖춘 종교로 발전해 온 과정과 유사하다. 그러나 원불교가 보편종교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교의 2세기가 그러했듯 토착화를 넘어서는 교학의 세계화라는 도전적 과제와 만나야 할 것이다.

2세기의 그리스도교는 내적 모순과 씨름해야만 했다. 유대교와 로마제국에 대해서는 신앙 고백적 차이에 대한 관용과 인정을 요청하는 한편, 다른 그리스도 교파들에 대해서는 불관용과 박해를 통해 교리의 보편적 동일성을 획득해야만 하는 이중적 과제를 수행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이제 원불교는 그리스도교 2세기의 모순과 한계를 넘어 더 나은 종교로 발전해 주시기를 바란다. 원불교는 기존의 종교, 특히 불교와의 차별성을 지속적으로 구성해 나가는 동시에 세계의 여러 지역에서 출현하게 될 다른 원불교들에 대해서도 관용과 인정의 태도를 철회하지 않는 진정한 자비의 종교로 인류의 정신사에 기여해 주기를 바란다.

일원상의 진리로 토착화와 세계화의 모순을 극복하는 새로운 보편종교를 이 세기에 만날 수 있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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