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칼럼

▲ 서광덕 교무/통영교당
통영은 남쪽 끝이라 백주년의 여러 행사에 직접 참여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많았다. 그러나 원음방송을 비롯한 미디어를 통해서 실시간에 볼 수 있었던 건 퍽 은혜로운 일이었다. 이번 백주년 행사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서울시청 앞의 특별천도재였다. 서울의 중심이요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시청 앞 광장에서 근현대사의 어려운 문제를 원불교가 풀어주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영계가 해원 상생이 되어야 양계도 평화가 올 것이다. 원불교가 사회를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을 했다는 자부심과 많은 사람들이 원불교를 인식하는 데 도움을 준 행사였다. 세상의 여러 가지 변화 속에서 교법으로 치유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일들이 교단의 2세기에는 한 번씩 있었으면 좋겠다.

5월1일 기념대회는 서울에서 5만여 명의 교도들이 모였다는 것만으로도 교사에 기록이 될 만하고 전국에서 한 마음으로 모아서 질서정연하게 행사를 마감한 것도 뿌듯한 일이다. 큰 행사를 사고없이 원만히 마무리 했다. 특히 어느 경찰의 글에 원불교같이 행사를 하여야 한다는 말은 원불교인으로서 긍지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욕심을 부린다면 운동장 전체를 무대로 공연이 펼쳐지고 끝날 때 모두 내려와서 마당놀이를 했더라면 전교도가 어울리는 큰 마당이 되지 않았을까. 우리의 문화에 마당놀이가 있고 남녀노소가 함께 어울리는 멋이 우리의 문화가 아니겠는가.

그리고 멀리 아프리카에서 온 교도들을 잠시라도 소개를 한다든지 100년의 역사 속에서 가장 공적을 세운 사람들에게 격려를 해주는 시상이 있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또 아쉬움이 있다면 선언문도 중요하지만 100주년 사업으로 청정그린에너지 태양광 발전소 100곳을 설립했다는 보고가 나왔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도 생각해 본다. 원불교가 나서서 한 가지라도 실천사례를 보이고 함께 하자고 제안하는 것이 선언문 보다 더 느낌을 주지 않을까.

이제 원불교100주년을 지냈으니 어리다고만 할 수는 없다. 우리의 정체성을 찾고 진리적이고 합리적인 교단을 보여 주어야 한다. 대종사가 깨친 일원상 진리를 모든 사람에게 전달하는 조직이라 원불교라 할 수 있으며, 그 법을 전달하는데 어떻게 해야 효율적인지 살피고 미래를 예견하면서 시대에 맞는 체계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현재의 문제점은 보완과 개혁을 하고 기존에 좋은 점은 그 장점을 더욱 살려야 '주로 창조하시고, 혹 혁신, 혹 인용(因用) 하셨나니라' 하신 〈정산종사법어〉경의편 39장 말씀을 실천하는 길이기도 할 것이다.

필자는 원불교가 대종사에 의해 설립되었고 그 법맥을 이은 분이 종법사며, 종법사를 비롯해서 수위단으로 항단으로 저단으로 법맥이 흐른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온 인류가 교화단 조직 속에 함께하는 그날을 꿈꾸며 그 흐름이 원활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하지 않을까. 대종사님께서 염원하셨던 교화단 제도를 명실상부한 교단 중심조직으로 뿌리 내리게 하는 것이 2세기의 시작점에서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종법사의 일을 돕기 위한 참모조직이 교정원이고 수위단원은 대체로 교구장을 맡으며 수위단원을 보좌하는 참모조직이 교구사무국이 되고 항단원은 지구장을 맡고, 저단원은 교당을 맡는 그런 구조가 교화단 조직이 아닐까 생각한다.

또한 법을 전하는 방식도 강연으로 전달하는 게 아니라 단활동을 통해 법을 전하는 주된 방법이 되어야 할 것 같다. 감정에 호소하며 군중의 힘을 이용하려면 대규모가 필요할 것이나 이성에 바탕해 공부하고 실천하면서 법을 알아가는 거라면 소규모라야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최근 학교 교육을 보면 과거에 60명 이던 교실이 대체로 학급당 학생 수를 줄이고 있다. 공부하고 실습하고 토의하기에는 적은 수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교당이 대형교회 같은 전달방법을 택하느냐 아니면 학교 같은 전달방법을 택할 것이냐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일요일 법회도 교화단 법회로 전환해 일주일동안 상시훈련한 것을 단장을 중심으로 문답감정하고 단원이 공유하며 다음 한 주일을 다짐하는 것이 우리의 법회가 아닐까. 교무는 단장들을 모아 단법회를 보고 단장들은 단원들을 모아 단법회를 보며 교당에서는 단장교육과 신입교도훈련 등 교육을 시키는 그런 교당이 표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최근 마음공부를 하는 공부인들이 한주일 동안 심신작용처리건을 적어와서 각각 발표를 하고 서로 문답감정을 하면서 이 시간이 참 좋다는 말들을 한다. 교단2세기에 우리에게 맞는 법 전달시스템은 어떤 것일까를 생각해 본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