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민주화운동 속 원불교가 있었다
5·18민주화운동에 원불교 적극 활동한 내역 조사
광주교당은 당시 시위대와 시민들 피난처, 보급소

신록이 짙은 5월이지만 광주는 아팠다. 1980년 5월18일~27일까지 전라남도 및 광주 시민들이 군사독재와 통치 반대, 계엄령 철폐, 민주정치 지도자 석방 등을 요구하며 벌인 민주화운동에서 시민군의 최후와 함께 민주주의는 묻히고 말았기 때문이다.

지금에 와서 5·18민주화운동이 활발하게 규명되고 있지만, 그 주체는 주로 천주교와 기독교 종교단체가 자체조사한 연구에 의지하고 있어 사실적 역사 규명에 한계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5·18민주화운동에 원불교가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사실을 밝힌 증언록 〈2015년 불교계 5·18민주화운동 구술기록 조사 및 수집 연구용역 결과보고서〉가 작년에 나오게 됨으로써 5·18민주화운동 진실에 한발 더 다가서게 됐다. 이를 조사연구한 사)광주연구소 조원식(56·趙源植, 광주교당) 기획협력처장을 만났다.

그는 "5·18기념재단에서 밝힌 5·18민주화운동 종교계 참여조사에서는 천주교와 기독교 위주로 밝혀져 있어 불교계 참여에 대한 의혹이 제기됐다"며 "나중에 알고보니 5·18기념재단이 생기기 전부터 천주교와 기독교 측에서는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먼저 관심을 갖고 다양한 연구조사를 시작했다. 이렇게 정리된 자료들이 5·18기념재단에 그대로 넘어가게 된 것이다"고 문제의 경위를 설명했다.

그가 5·18기념재단에서 책임연구원으로 활동했던 시기는 각각 2007년, 2008년, 2012년, 2013년, 2015년 총 5차례로 각 연구조사 대상도 다양했다. 5·18민주화운동에 참여한 교육운동가, 농민운동, 기동타격대 대원 구술조사 등 매년마다 연구범위가 달라져 일관성 있는 연구가 쉽지 않았다. 그는 "예산은 한정돼 있지만, 조사연구해야 할 대상과 피해사례들이 워낙 다양하고, 연구조사하는 연구원 수도 한정돼 있다"며 "다양한 대상들을 지속적으로 규명조사하기에는 쉽지 않는 구조다"고 설명했다.

그가 5·18민주화운동에 원불교가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사실을 규명하기 위해 문제제기를 해 2015년 연구가 이뤄진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이런 부분에 대한 문제제기를 적극 공감하고 함께 진실규명에 앞장서 주셨던 분이 있는데, 올해 1월 열반한 정철이라는 분이다"며 "당시 5·18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승려였지만 후유증과 고통이 너무 심해 환속해 5·18민주화운동의 진실규명에 함께 의지를 모았던 소중한 분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역사적 진실규명이 잘 이뤄질 수 있도록 교단적으로 도움을 준 인연들에 대해서도 밝혔다. "퇴임하신 이정택 전 광주교구장과 이덕윤 교무님이 굉장한 노력을 기울여 주셨다"며 "당시 교단 내 5·18민주화운동에 가담 또는 활동했던 교무님이나 교도님들에 대한 인터뷰를 해야 하는데, 흩어진 그 분들을 찾아서 연락을 닿게 해주셨다. 덕분에 '원불교가 5·18민주화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핵심 정황들을 조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연결된 사람들은 당시 영광교당에 근무했던 고 김현 교무, 광주교당 부교무로 근무했었던 이선조 교무, 원광대학교 한의대 수학 중5·18민주화운동에서 희생된 고 임균수 청년교도(구술대행, 형 임양수), 전남대 학원자율화 추진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했던 한상석 교도, 전남대 학생으로 아내 김윤희 교도와 적극적 민주화항쟁 운동을 펼친 김광제 교도, 전남대 대학원을 다니며 활동을 한 양석호 교도 등이다.

특히 한상석 교도는 고 박관현 전남대 총학생회장이 전면에 나서기 전까지 사실상 전남대 학생운동을 이끌었으며 서울지역 학생운동 진영이 서울역에서 회군한 것과는 정반대로 광주지역의 학생운동 진영이 진군하는데 역할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천주교와 기독교 학생들이 5·18민주화운동의 수뇌부 역할을 이끌었고, 기타 종교인이나 일반인들이 여기에 따랐다는 기존의 조사연구를 뒤집는 증거가 새롭게 나온 것이기도 하다. 이 밖에도 당시 광주교당은 교무와 교도들의 합력으로 계엄군의 잔악무도한 학살을 피하려는 시위대와 시민들의 피난처가 됐고, 주먹밥을 나눠주고, 석존성탄절에 들어온 공양들을 학생들에게 보급, 상무관 장례를 치루기 위한 준비 장소로도 쓰였다.

그는 "나 역시 5·18민주화운동 때 전남대 사학과 1학년으로 시위대를 이끌고 항쟁을 주도했다"며 "살아남은 자의 고통과 슬픔을 한평생 끌어안고 각종 시민사회 단체에서 여러 운동을 펼쳐왔다"고 말했다.

현재 기흥교당 조법전 교무가 친동생이라는 그는 "일생을 사학자로서 민주주의를 연구하고, 시민사회운동가로서 참회의 길을 걷다가 뒤늦게 몇 해 전 원불교에 입교했다"며 "〈원불교교전〉을 읽고 그동안 헤매고 찾았던 답들이 모두 소태산 대종사께서 말씀하셨던 법문임을 이제야 발견하게 됐다"고 아쉬움과 기쁨을 회고했다.

그는 "올해도 5·18기념재단에서 시행하는 연구용역 사업에 '불교계 5·18민주화운동' 관련 연구조사를 계속해 나가야 한다"며 "교단에서 관심과 애정을 갖고 이러한 사업이 지속될 수 있도록 힘을 보태줬으면 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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