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뚜벅 교리여행

▲ 이도광 교무/공군사관학교, 성무교당
원광대학교 원불교학과 학생시절 합장을 하고 '천지 하감지위(下鑑之位), 부모 하감지위, 동포 응감지위(應鑑之位), 법률 응감지위, 피은자 이도광은 법신불 사은전에 고백하옵나이다'하며 심고와 기도를 올렸는데 솔직히 그때는 법신불을 잘 알지 못했었고 그냥 글로 아는 정도였다.

그러나 스승님의 큰 가르침 덕분에 조금이나마 마음속으로 법신불을 모실 수 있게 됐다. 나는 군대를 제대하고 학교에 바로 복학하지 않고 경기도 양주교당에서 1년 9개월 동안 추천교무를 모시고 간사생활을 했다. 그렇게 긴 시간 동안 그리고 직접적으로 지도를 받으며 살았던 기회는 없었다. 그래서 스승님을 모시고 산다는 것이 그렇게 힘들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다.

스승님을 모시고 생활 하는 동안에는 설거지, 도량청소, 주변정리, 운전 등등 일을 할 때마다 혼이 났다. 설거지를 할 때는 '꼭 너는 하기 싫은 모습으로 설거지를 하는구나. 이 설거지가 뭐가 일이라고 그렇게 하기 싫은 모습으로 하느냐. 그럼 평생 힘들게 산다. 차라리 설거지를 일이라 생각하지 말고 그냥 마음 편하게 대해라'하며 혼을 냈다. 설거지를 마칠 때도 '뒷마무리가 이렇게 더러워서 어디 설거지를 시킬 수 있겠느냐'하며 싱크대 주변 정리부터 그릇 정리까지 하나하나 다시 가르쳐줬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고마운 가르침이었지만 그 순간에는 '남자가 설거지 좋아하고 뒷마무리 잘하는 것을 어디 써먹을 때가 있다고 그러나'하며 원망하기도 했었다. 어디 설거지 하나뿐인가. 청소면 청소, 운전이면 운전, 말하는 태도, 예비교무의 마음가짐 등등 하나에서 열까지 다 지적했다.

나는 지적을 받을 때마다 '사실 내가 어디를 가더라도 이렇게 모자란 사람은 아니었는데 왜 나만 미워하고 매번 혼내나'하며 교당에서 도망칠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나에게 그럴 기회도 주어지지 않고 스승님 건강이 좋지 않으셔서 병원에 입원하게 됐다. 병환이 호전되기를 간절히 기도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고 스승님은 열반에 이르셨다.

그 후로 뵐 수도 없고, 지도를 받을 수 없다는 생각에 스승님에 대한 그리움이 커져서 늘 마음이 공허했다. 하지만 나는 지금 스승님을 늘 뵙고 산다. 스승님의 가르침을 내 마음에 모시고 살기 때문이다. 지금은 설거지를 일로 생각하지 않고 청소도 정성스럽게 구석구석 깨끗하게 한다. 원불교 교무로서 그 역할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다른 일들도 잘 하려고 노력한다.

이런 일들이 나와 스승님의 관계를 계속 이어주고 있으며 스승님은 화신으로 계시지 않지만 가르침이 곧 법신이 되어 늘 나와 함께있다. 스승님의 법신을 마음속에 모시고 보니 만사만리 모든 것이 내가 모실 부처님 즉 법신불로 모셔지게 되었다.

아직은 많이 부족해 확실하게 법신불을 모시진 못하지만 앞으로 더 정진 적공해서 확실하게 법신불을 모시며 살아가도록 노력할 것이다. 이것이 나를 지도해주신 스승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라 생각하며 물심양면으로 호렴해주신 모든 스승님의 은혜에 감사한 마음을 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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