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을 앞두고 노트를 정리하다가 오래 전에 쓴 성리에 관계된 정기일기 몇 편이 발견되어 그중에 하나 만 소개하고자 한다. 내 나이 41세 중앙훈련원에 근무할 때이다. 당시 중앙훈련원은 선학원 졸업생 합동 훈련을 6개월간 실시하고 교화 현장으로 인사발령을 받아 갔는데 당시 김현진 교무를 대동하고 안양교당으로 갔다.

일요일 아침 좌선을 마치고 교당 뒤에 장안사라는 절이 있어 산책 겸 가볍게 나섰다. 절 마당에 들어서니 60세가 넘어 보이는 노승이 흩트러짐 없는 단정한 자세로 절 마당을 쓸고 계셨다.

내가 다가가서 “스님 안녕하셨습니까? 저는 이 아래 원불교에서 왔습니다.” 하고 내 신분을 소개 했는데도 스님은 신경도 쓰지 않고 내 인사에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은 채 그냥 마당만 쓸고 계셨다.

나는 속으로 ‘아! 이 스님은 묵언으로 수행하시는 철저한 구도자이구나’라고 생각되어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한마디 던졌다. “스님 마당이 이렇게 깨끗한데 왜 수고스럽게 쓸고 계십니까?” 이 말은스님의 마음 바탕 심지는 원래 물들임이 없이 깨끗하여 닦을 것이 없는데, 뭐하러 수고스럽게 닦고 계십니까? 하는 선문(禪門)이었다. 그래도 스님은 묵묵 부답이었다.

나는 절 마당을 지나 부처님을 참배하려고 법당 쪽으로 올라 가는데 젊은 스님 한분이 걸어 나오면서 헛기침을 하며 조금 모가난 음성으로 “어찌 오셨소” 하고 퉁명스럽게 묻는다. 이른 아침 절을 찾아온 나를 좀 못 마땅하게 생각한 것 같았다. 나는 “스님 활구도 아닌 무슨 헛기침을 그리 하십니까” 하고 한마디 던졌더니 스님은 퉁명스러운 말로 “나가시오”하는 것이었다. “스님 본래 온바가 없는데 나가라고 하니 온 바를 일러 주시오. 그리 나가겠습니다.” 성품의 본래자리는 와도 온 바가 없는 거래가 끊어진 자리인지라(體無去來相) 선문으로 답했더니 스님은 약간 당혹해 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때 노 스님이 마당을 다 쓸고 법당쪽으로 오시기에 제가 목례 인사를 올렸더니, 노 스님이 “이분 원불교 선생님이시다”하니까 그때서야 젊은 스님이 “예 그렇습니까? 원불교 선생님은 여자분 이신데 새로 오셨습니까?”했다. “아닙니다. 저는 이리 총부에서 왔습니다.”하니 “아! 법사님으로 오셨군요”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예” 하고 답했더니 “조금 전에 미안하게 됐습니다. 아침 공양이나 같이 드시겠습니까?”해서 처음 찾아간 장안사에서 내 생전 처음으로 아침 죽밥을 들고 왔다.

노 스님은 진즉 고인이 되었을텐데 지금 어느 땅에 자리를 펴고 계시는지 가끔 그리워질 때가 있다. 공부인이 말이 많으면 도에 상응하지 못하고, 말이 끊어지고 생각이 끊어지면 통하지 아니함이 없다는 옛 조사의 가르침이 이 연말에 뭉클하게 다가온다.

그동안 애독해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노승은 이만 사라집니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