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칼럼

▲ 박인건 교도/남대전교당
'5월1일 감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원불교100주년기념대회가 열렸던 그날, 눈부시게 아름다운 모습들이었다. 소통, 공감, 감동 그리고 대환희로 점철된 역사적 순간들이었다.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으로 정신개벽의 주인 되는 길, 모두가 부처되는 미륵불·용화회상이야말로 인류의 궁극적인 희망임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줬으니 이보다 더한 복음이 어디 있겠는가.

일원대도의 정법을 언제 또 다시 만날 것인가. 백천만겁난조우(百千萬劫難遭遇)라고 했다. 무량겁이 지나도록 정법 만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다행히 이 기회를 알아서 '처음 회상의 창립주'가 되었으니 그 공덕이 크지 않을 수 없다. 영생을 놓고 보면 수많은 만남 중에서도 대도정법과의 법연이 지중함을 알 수 있다. 스승님과 제자 사이, 동지와 동지 사이에서도 더욱 두드러진다.

대산종사는 대종사가 만고일월이라면 정산종사는 만고신의라고 했다. 회상을 창립하시고 키워주시고 일원세계를 건설하는 법맥을 면면히 이어주셨으니 우리들로선 세세생생 크나큰 감로수가 아닐 수 없다. '선후진의 모든 동지가 서로 서로 업어서라도 받들고 반기라'고 하셨다. 법동지간에도 능력을 갖춰 상부상조ㆍ상신상락하는 심사(心師)ㆍ심우(心友)가 될 것을 부촉하셨다. 예로부터 공부인들이 수행의 기쁨으로 다음 다섯 가지 불연을 서슴없이 꼽았던 이유를 알 것 같다.

첫째 육도윤회 과정에서 사람 몸 받기 어렵고, 둘째 정법, 셋째 스승 만나기가 각각 어렵고, 넷째 다 믿어주고, 다 받아주고, 늘 보살펴주고, 늘 깨우쳐주고, 늘 이끌어주는 도반 만나기 어렵다. 구름처럼 물처럼 무심하고 담담하면서도 마음과 마음으로 맞닿는 운형수제가 옆에 있다면 얼마나 큰 위안이자 행운인가. 다섯째 신앙과 수행의 청정도량인 교당까지 갖췄다면 더 말할 나위가 없겠다.

오늘날 원불교인이라면 이러한 조건을 대체로 구비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를 스스로 지키고 가꾸는 일이 더욱 중요해졌다. 교법 자체가 사방팔방 걸리고 막힘이 없다. '원융 무애'라는 말로도 부족하다. 모든 사람을 두루 교화할 십인일단의 단 조직과 운영방법 또한 독특하다. '몇 억만의 많은 수라도 가히 지도할 수 있으나 그 공력은 항상 아홉 사람에게만 드리면 되는 간이한 조직'이라고 하셨다. 원불교가 지금은 작지만 강한 교단으로 인식되고 있는 까닭은 이밖에도 여럿이다.

갈수록 세상 변화의 속도가 실로 엄청나다. 인지의 발달과 더불어 얼마 전의 지식이나 기술이 금방 낡은 것이 되고 만다. 지구촌 곳곳에서 문명·이념·자본의 패권주의적 성향으로 인해 인간성 상실의 시대가 가속화되고 있다. '문명의 충돌'이나 '사피엔스'의 종말을 예견하는 인류 멸종 시나리오가 난무한다. 그럴수록 정신개벽으로 인간이 주인 되는 세상, 상생·화해·평등의 행복공동체가 더욱 그리워진다. 위기에 직면한 지구촌을 살려내야 한다.

원불교가 미래 세계의 주세종교로 뻗어나가고 있다는 건 그런 점에서 문명사적인 의미를 지닌다. '미륵불이라 함은 법신불의 진리가 크게 드러나는 것이요, 용화 회상이라 함은 크게 밝은 세상이 되는 것이니, 곧 처처불상 사사불공의 대의가 널리 행하여지는 것'이라고 했다. 바로 우리 자신들이 새 시대의 주인이다.

'정신개벽 서울 선언문'에 새삼 주목한 것도 그래서였다. 인류사회가 '서로 없어서는 살 수 없는 은혜의 관계'이고 진리·세계·인류·일터가 하나임을 천명한 것은 뜻 깊다. 세계 10개 언어로 교서가 번역되어 세계교화의 문이 활짝 열렸다. 세계를 보듬는 보편적인 종교로서의 정체성이 오롯이 담겨 있기에 그러하다. 상생의 세계, 평화의 세계, 하나의 세계가 지향점이다. 이 시대와 한반도를 뛰어 넘어 인류의 밝은 미래를 가꾸는 소중하고도 담대한 메시지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원불교 자비의 훈풍이 세계만방에 널리 퍼질 수 있게 돼 마음 든든하다.

재가출가 전 교도들이 정진 적공으로 한 세기를 마감하고 새 시대를 열어가는 뜻 깊은 역사를 만들어낸 데 대해 자부심을 가질만하다. 이제 새 천년을 향한 결복기 대운을 열어가려면 더 큰 서원과 신심, 공심, 공부심 갖추기에 일심합력으로 열성을 다 해야 할 것이다. 미래시대 원불교 2세기 비전이자 당면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신앙과 수행 모두 내실을 다지자. 교도의 4대 의무는 필수적이다. 사은사요와 삼학팔조, 새시대 살아있는 교법 실천이 관건이다. '감사하는 생활, 보은하는 생활, 복 짓는 생활'이 저절로 이뤄지는 날까지 정진 적공하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