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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책방 '숨' / 서로가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는 공간, '숨'
동네책방 '숨' / 서로가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는 공간, '숨'
  • 이여원 기자
  • 승인 2016.05.27
  • 호수 18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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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작가 경험과 사람들 인생이 공유되는 매개체
함께 공유하고 나누다 보면 '같이 살만한 세상'될 터
▲ 광주 수완로에 위치한 아담한 2층 건물, 동네책방 '숨'.
'지금 가만히 멈추어 서서 바라볼 시간. 혼자 있을 시간. 타인과 관계를 맺을 시간. 창조적인 일을 할 시간. 즐거움을 주체적으로 즐길 시간.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고 그저 근육과 감각을 움직일 시간.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을 구상하고 기획할 시간. 우리는 지금 이 시간들이 필요하다.'

폴 라파르그의 말이다. 이를 삶 속에서 실천해 가는 부부가 꾸려가는 책 공간이 있다. 광주 수완로에 위치한 아담한 2층 건물, 동네책방 '숨'.

'경험을 공유하는 곳'

동네책방 '숨'에서는 단지 도서만 판매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과 소통하고 기억하고 싶은 경험들을 공유한다. 하루에 1000권이 훌쩍 넘는 책들이 출판되는 요즘, '숨'에는 내용으로 따지면 흔히 볼 수 없는 귀한 책들로 가득하다. 자신의 삶을 살면서도 생각을 공유하고 공간을 함께 경험하는 공간, '숨'에서 사람들은 숨겨진 보물과 같은 책과 함께 그렇게 서로 연결되어 있다.

동네책방 숨의 '숨지기' 역할은 안석·이진숙 부부가 맡고 있다. 그들은 쇼핑몰과 식당가, 빼곡한 아파트가 전부인 광주 수완지구에 북카페와 도서관을 운영했다. 그렇게 5년을 꽉 채우고, 북카페를 '동네책방 숨'으로 전환하며 공간의 의미를 더 확장했다.

'아이들에게 추억을 심어주고 어른들에게는 자기성찰을 돕는 책방, 우리가 터 잡고 살고 있는 지역의 문화를 소중히 지켜나가는 책방, 대량화되고 획일화된 가운데 무차별로 받아들여야 하는 수동적 문화가 아닌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문화를 만들어 내는 데 구심점이 되는 책방. 경제적 접근이 아닌 문화적인 접근으로 책방의 운영과 방향을 세워가자'는 게 이들 부부의 뜻이다.

경제적 관점으로 '책을 얼마나 많이 사고팔고'가 아닌 그 안에 담고 있는 '문화적 접근'을 보다 더 드러내야 할 때라고 한 호흡으로 말하는 그들은, '숨' 공간이 더불어 살면서 서로가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는 곳'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 전라도 광주지역 사람들과 문화의 다양한 울림이 있는 '전라 광주문화' 코너.
'전라 광주문화'와 '세월호 기억'

'숨' 공간에는 변치 않을 자리가 있다. 전라 광주지역 문화를 알리는 '전라 광주문화' 코너. 무엇보다 지역의 이야기와 문화가 알려지고 공유되어야 '우리'의 이야기와 삶 역시 이어져 갈 거라는 생각에서다. 지역에서 10년 넘게 이어져오는 있는 문학잡지, <문학들>, '전라도 골골샅샅 질박한 동네 인심을 훑고, 구성진 이야기 챙겨 토종 잡지 한권을 만들어 내는 <전라도닷컴>'도 이 코너에 붙박여 제 빛을 발하고 있다. 역사와 지리, 사람들과 문화의 다양한 울림이 있는 광주와 전라의 넓고 깊은 곳곳이, '숨'에 응집돼 있는 것이다.

'숨'의 중심공간에는 세월호 기억 코너가 있다. 그들은 '세월호 참사가 우리 사회에 던진 충격과 질문은 너무나 크고 엄중하다'고 말한다. 여전히 기억하고 그에 대한 온전한 대답을 내놓기 위한 시민으로서의 책임을 느끼기 때문이다.

'숨'이 자리한 수완마을의 촛불모임에서는 '세월을 빚는 사람들: 12번의 16일'을 진행하고 있다. 매달 주민들이 보다 손쉽게 참여할 수 있는 기억행동들을 하나씩 하자는 의미에서 시작한 것이다.

지난 3월16일에는 '세월호 기억소품 만들기'시간을 가졌다. 가죽공예로 작은 동전지갑을 만들고 세월호 기억문구 도장을 찍고 노란 리본을 달아 완성했다. 그렇게 지역주민들은 '숨' 공간에서 소장하고 기억할 수 있는 소품을 만들어 세월호의 교훈을 기억하고자 했다.

목공예를 하는 지역작가의 세월호 나무목걸이와 책갈피, 대안학교인 지혜학교 학생의 디자인으로 만들어진 에코백, 단원고 희생아이들의 생일이 표시된 생일달력, 세월호 이후 출간하는 책에는 어김없이 세월호 배 모양의 엠블럼을 인쇄하는 꽃자리 출판사의 도서 등이 담담하게 놓여져 있는 이 코너는 변함없이 '숨'의 중심공간을 차지할 것이다. 진실이 밝혀지는 그날까지, 가슴 안에 자식을 묻고 그 아픔을 삭혀내며 살아내고 있는 우리 이웃들의 흔적들이기 때문이다.
▲ 누군가에게 선물로 전해질 책들이 예쁜 사연들과 함께 진열돼 있는 '책 미리내'.
릴레이 책 선물, '책 미리내'

그 시작은 세월호 희생 아이들을 추모하는 생일시 모음집 <엄마.. 나야>(난다, 2015)부터 였다. 광주시민상주인 한 독자가 이 책을 지인들에게 선물하겠다며 미리 계산을 하고 '숨'에 맡겨 뒀다. 예쁜 빨간책에 리본을 묶고 책 일부를 인용한 쪽지글을 적어 끼워뒀다. 책을 받으러 온 지인은 선물로 책을 받았으니 또 다른 누군가에게 다른 책을 선물하겠다며 다시 맡겨뒀다. 그렇게 놀라운 일이 이어졌다. '책 미리내'는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잇고, 마음을 잇고, 삶과 삶을 연결하며 지금도 계속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숨'에서는 책을 매개로 많은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다. 아무 페이지나 펼쳐 읽으며 머리를 식힐 수 있는 책, 사춘기에 들어서서 고민이 많아진 아이에게 격려가 될 만한 책, 이웃들과 더불어 마을살이를 더 잘 만들어 가도록 돕는 책, 지인에게 선물하기 좋은 책 등. '숨'에서 책을 고르며 의견을 나누다 보면, 이내 책을 좋아하는 자신들이 누구보다 수다쟁이라는 사실을 알아간다.

"책은 더 이상 만 몇 천 원짜리 물건이 아니다. 책을 고르기 위해 대화를 나누고 서로 공감하고 결정하고, 또 포장을 해서 소포로 보내고 받아서 설레는 맘으로 풀어보고 보낸 이의 맘을 헤아리는, 그 일상의 문화를 경험하는 것이다. 그것은 단지 몇 번의 클릭으로는 알 수 없는 여러 과정과 감정들을 포함하고 있고 우리 자신의 삶과 이야기를 닮고 있다. 그래서 경험을 공유하는 일은 개인의 소유를 넘어서 공동체의 문화가 되는 것이다." 이진숙 대표의 말이다.

"책은 단순히 마트에서 사고파는 물건이 아니다. 작가의 경험이 공유되고, 사람들의 인생이 공유되는 매개체다. 자기 삶의 나침판으로 여기고 있는 것들이 책을 매개로 서로 공유되면 좋겠다. 함께 공유하고 나누다 보면 '같이 살만한 세상'이 된다." 안석 대표의 말이다.

공간은 사람을 닮는다고 했다. 동네책방 '숨'과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그렇게 닮아가고 있었다.
▲ 문화적인 접근으로 동네책방의 운영방향을 세워가자는 게 공동대표 안석·이진숙 부부의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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