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며느리 교화위해 법문문자 보내기
단원, 비교도 공부심 챙기는 데 일등공신
아내와의 경계, 법문으로 해결실마리

▲ 박정설 교도/남원교당
나는 자신성업봉찬 4정진 운동 가운데 유무념 공부로 매일 아침 단원들과 지인들에게 법문문자 보내기를 하고 있다. 법문문자 보내기를 하게 된 동기는 나의 며느리를 교화하기 위해 시작됐다.

나는 아들 둘이 있다. 큰아들은 출가해서 교무를 하고 있고 작은아들은 전주에서 타악기 아퀴를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둘째 며느리가 교동교당에 입교만 하고 법회에 잘 나가지 않는다. 나무랄 수도 없고 며느리 부처님에게 불공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매일 아침 법문문자를 보내게 되었다. 그러다가 이왕 보내는 거 교화단 단원들에게도 보내면 좋겠다고 여겨 법문을 보냈더니 단원들 반응을 너무 좋았다. 그래서 비교도지만 잘 아는 지인들까지 포함하여 법문문자를 보내는 것이 나의 하루 유무념이 됐다.

매일 아침 나는 5시에서 6시 사이에 법문을 하나 골라 휴대전화 문자로 전송을 한다. 매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귀찮은 날도 있고, 하기 싫은 날도 있다. 그런데 법문문자를 기다리고 있을 사람들과 법문 문자를 받아보고 마음 흐뭇해할 사람들을 생각하면 끊을 수가 없다.

또 하나 매일 법문을 선정하는 일이 신경이 많이 쓰여 머리가 아플 때도 있다. 법문문자를 받는 사람이 교도뿐 아니라 일반 지인들도 있다 보니 어렵지 않게 그들도 이해할 수 있는 법문을 찾으려면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게다가 너무 긴 법문은 입력하기 부담스럽고 한자를 병행해야 하는 법문은 피해야 하므로 어려운 점이 많다.

최근에는 아내와 가정사로 언쟁이 붙어 며칠 동안 팽팽한 긴장과 침묵의 시간을 보냈다. 언쟁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 시작됐다. 오래된 화장실을 리모델링하고 보니 깨끗한 화장실에 낡은 문짝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아내에게 화장실 문을 바꾸자고 했더니 아내는 괜한 돈을 왜 들이느냐고 반대를 했다. 그런데도 나는 새 문으로 교체하고 싶었다. 하루는 혼자 가게에 가서 화장실 문을 맞춰 버렸다. 드디어 화장실 문이 도착했고 달고 보니 주위 색깔과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 아내는 기왕 맞췄으면 색상이나 잘 맞추지 미적 감각이 그렇게 없느냐며 원망을 했다. 자신과 상의도 없이 혼자 처리한 것뿐 아니라 전에 잘못했던 일까지 들먹이며 아내는 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그렇게 끌렸던 마음을 저녁에 일기를 쓰며 보게 됐다. '아, 내가 공중사를 단독히 처리하지 말라는 특신급 계문을 어겼구나' 하고 발견하고 보니 반성이 됐다. 하지만 지난 잘못까지 들추는 아내를 생각하면 그냥 다시 헌 문짝을 달아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그러다가 어느 날 법문문자를 보내려고 법문을 찾고 있는데 <정산종사법어> 도운편 19장 말씀이 눈에 딱 들어왔다. 말씀하시기를 "물질위주로 균등사회가 되겠는가? 중도정신이 골라져야 균등사회가 되고, 투쟁위주로 평화가 되겠는가? 은혜를 서로 느껴야 참다운 평화 세계가 되나니라."

아, 나는 지금 아내와 투쟁 중이었구나. 어서 이 투쟁을 멈추고 평화로운 가정을 이루려면 은혜를 서로 느껴야 한다. 아내에 대한 은혜를 떠올려 보았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우리 집에 시집 와 농사일도 안 해 본 사람이 농사일에, 시아버지 오랜 병수발과 빚 청산에 얼마나 고생이 많았나. 게다가 동네에서나 집안에서 얌전하기로 소문난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으니 집에서 큰소리를 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의 아내는 병석에 누워 있는 시아버지에게 식사 잘 했다는 그 말 한마디 듣고 싶어서 정성스럽게 반찬을 해드렸지만 끝내 하지 못하고 열반했다. 그래도 아내는 내색 한 번 없이 양 부모를 열반하는 그날까지 18년간 정성을 다해 봉양했다. 내 부모에게 나보다 더 잘해준 아내에게 항상 고마웠다.

그 가운데에서도 아내는 사회활동도 열심히 해서 지역사회에 봉사도 많이 하고 지역주민들에게 인정도 받고 산다. 신앙생활도 열심히 하여 수지교당 교무들의 든든한 의지처가 되어 준다. 생각해 보면 날마다 업고 다녀도 못 갚을 은혜를 아내는 베풀었다.

이렇게 많은 은혜를 주었는데 그동안 잊고 살았구나,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내에 대한 은혜를 느끼는 순간 그동안 괴롭고 힘들었던 마음이 스르르 녹았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 누구와 서운하고 괴로운 일이 생기면 은혜를 먼저 생각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 그것이 "서로 은혜를 느껴야 참다운 평화세계가 된다"는 스승님의 뜻이었다. 아침마다 유무념 공부로 법문문자 보내기를 하지 않았더라면 내 마음은 고통이 심했을 것이고, 가정의 침묵은 더 오래 길어졌을 것이다. 이제 둘째 며느리는 법회에 잘 나가고 있다. 어느 날 며느리가 나에게 전화해서 "아버님, 원불교 법문이 현실 생활에 딱 맞는 것 같아요"라고 기뻐했다. 불공의 효과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점은 법문문자를 매일 발송하다보니 내 자신이 날마다 교전을 읽고 법문을 마음에 새기게 된다는 것이다. 법문을 공부하면 경계가 생길 때마다 법문에 대조하여 실천하게 된다. 이보다 더 좋은 마음공부가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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