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주 토요일 서울에서 진행되는 종교인 탈핵순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체르노빌을 겪어 본 인류는 핵없는 세상을 향해 갈 것만 같았다. 원자력의 시대를 벗어날 것만 같았다. 다른 길을 찾을 줄 알았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체르노빌의 공포 속에서 살아간다.흙과 집은 주인을 잃은 채로 남아 있고, 들판은 다시 숲으로 변하고 있으며 사람의 집에 동물이 살고 있다. 수백 개의 죽은 전깃줄과 수백 킬로미터의 도로가 의미 없이 연결되어 있다. 나는 과거에 대한 책을 썼지만, 그것은 미래를 닮았다."

5월26일 광화문 KT 원자력안전위원회 앞. 예수회 사도직위원회가 벌인 탈핵난장에서 조현철 신부와 신자들이 조용히 <체르노빌의 목소리> 몇 단락을 읽어 내려간다.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쓴 <체르노빌의 목소리>는 군인, 의사, 소방관, 주부, 회사원 등 평범한 시민들이 1986년 4월26일 체로노빌 핵발전소 사고 이후 겪어내고 있는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 소설이다. 알렉시예비치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1986년 4월26일, 하룻밤 사이에 우리는 새로운 역사적 공간으로 이동했다."

체르노빌의 목소리는 이렇게 30년의 시공간을 이동해 2016년 5월26일 대한민국 현재와 잇대어 있다. 일본 비전력공방 대표이면서 철학하는 발명가 후지무라 박사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 "한국이 탈핵을 이뤄내지 못할 것 같으면 하루라도 빨리 사고 이후를 대비해야 한다."
소름과 두려움이 온몸에 퍼진다.

신고리 5, 6호기 건설허가 부결한다!

밀양에 있는 김준한 신부(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 공동대표)로부터 다급한 문자와 메일을 받았다. 급히 만들어진 '5. 26 원안위대응 텔레그램방'에는 전국의 탈핵운동 활동가들이 문자와 메일에 이끌려 속속 모여든다.
김준한 신부의 제안서에는 현재 7기가 가동 중이고, 1기의 가동을 앞두고 있는 부산 고리핵발전소에 또다시 신고리5, 6호기를 짓겠다는 건설승인 허가를 한수원이 제출했다. 승인여부를 놓고 9명의 위원이 심의와 의결을 하는 원자력안전위원회가 5월 26일 열리니, 탈핵을 염원하는 전국의 시민들이 모여 탈핵난장을 열자는 이야기가 짧지만 무겁게 담겨있다.

5월26일 오전 10시30분 기자회견 참석을 위해 밀양, 청도, 부산, 영덕, 영광활동가들이 가장 먼저 광화문으로 달려왔다. 기자회견이 끝나자 탈핵하는 청년들의 모임인 청년초록네트워크가 마이크를 잡고 후쿠시마 핵참사와 관련된 시낭송으로 첫 탈핵난장을 열었다.

이어진 종교환경회의 공동기도회에서는 '5대종단 탈핵공동기도문'이 올려졌다.
법신불사은님, 생명의주님, 신실하신 한울님, 대지혜이시며 대자비이신 부처님, 평화의 하느님께 올린 생명의 기도는 참회와 다짐, 기원으로 가득했다.

에너지자립마을, 녹색당, 부산울산경남탈핵연대, 대구경북탈핵연대의 탈핵난장이 끝나자 대안학교 '하자작업장학교'아이들이 무대를 채웠다.

"'신고리 5, 6호기 건설승인 허가 심의'라는 문자를 받아들고 당혹스러웠습니다." 국민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이에 부산 고리에 10개, 울산근처에 16개의 핵발전소가 들어서게 되는 이 일이 벌써 건설승인 운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사실에 기가 막혔다는 하자작업장학교 히옥스 교장은 핵발전소와 핵폐기물을 고스란히 떠 맡아야할 아이들과 '청소년원자력안전위원회'를 구성해 오늘 이 자리에 심의결과를 가져왔다고 전한다.

"이제는 누군가의 희생으로 유지되는 에너지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앞으로 3년이면 방사능고준위폐기물포화상태 핵쓰레기 처분방법 없다. 방사능유산, 미래세대에게 떠넘기지 말라." "후쿠시마 핵사고 잊었는가? 2만건의 사망, 2만건의 소멸된 우주 우리는 지속가능한 삶과 생명을 지지한다." "핵발전소의 길을 걷도록 선택당하기를 거부한다."

원자력안전위원회의가 열리는 13층에 전달되도록 30여 명의 아이들은 '신고리핵발전소 5, 6호기 건설허가 부결'이유를 큰소리로 읽어 나갔다.

5월29일 아침9시 현재 한국전력 홈페이지에는 예비전력 40.43%, '정상'이란다. 남아서 버리는 전기가 40.43%이면 정상이 아닌 과잉생산, 즉 비정상이다. 20~60%까지 전기가 남아돌고 있음에도 왜 한수원은 핵발전소를 더 짓겠다고 하는지 궁금하다. 그러나 한수원이 영업비밀을 이유로 자료공개를 거부하는 통에 국민들은 이유를 알 수조차 없다. 내 생명의 안전은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

부산10번째·울산16번째 핵발전소, 수명은 60년

5월26일 55차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신고리 5, 6호기 건설승인'에 대해 결론을 못내리고 6월9일로 결정을 미뤘다. 정부와 여당측 원자력안전위원들조차 '다수호기(한곳에 여러 개의 핵발전소가 들어서는 것)'의 위험성에 대한 추가 검토자료를 요구했다.

신고리 5, 6호기는 부산과 울산의 아홉번째 열번째 핵발전소이며, 반경 45km 이내의 월성핵발전소까지 포함하면 15번째와 16번째 핵발전소이다.

신고리 5,6호기는 1,400MW급 핵발전소로 국내는 물론 전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핵발전 시설이다. 또한 이들 발전소는 설계수명도 세계 최장인 60년으로 현 세대를 지나 다음 세대까지 위협하며 가동된다. 이번 한수원이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제출한 안전성평가 자료에는 각 호기별 안전성평가는 있으나 총10호기, 다수호기에 대한 안전성평가가 없다. 인류사상 유례없는 최대규모의 핵발전소단지는 계획부터 안전은 안중에도 없어 보인다.
▲ 탈핵문제는 환경 관련 단체나 전문가들의 문제가 아닌, 미래 세대를 살아갈 청소년들의 문제다.
다시, 체르노빌의 목소리

"그날 밤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하늘에 솟은 화염을 보았다. 남편이 셔츠 바람으로 나가면서 '원자로에 불이 났다. 곧 돌아올 테니 창문 닫고 들어가서 자고 있어'라고 말했다.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다. 모스크바의 병원에 실려 간 걸 알고 병원으로 찾아갔다. 간호사가 방사능에 오염되어 사경을 헤매는 남편을 간호하려는 나에게 말했다. "이건 더 이상 당신 남편이 아닙니다. 방사능 물질이란 말입니다." (처음 출동했던 소방관의 아내)

"사고 한 달 후 체르노빌의 쇠고기는 쇠고기가 아니라 방사능 부산물이었다. 우유도 방사능 물질이었다." (벨라루스 과학아카데미 원자력연구소 수석엔지니어)

"어린 딸을 데리고 민스크의 동생 집으로 피난을 갔다. 모유로 아기를 키우던 동생은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역에서 잤다." (주민)

체르노빌과 후쿠시마는 전쟁 중의 전쟁이다. 방사능전쟁은 지하에도 물속에도 공중에도 숨을 곳이 없다. 우주에나 숨을 곳이 있을까?

아무래도 <체르노빌의 목소리> 강독회를 열어야겠다. 더 멀리 체르노빌의 목소리가 퍼져나가도록 말이다.
▲ 이태은 교도/원불교환경연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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