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지 교무의 성지마음스케치

일러스트레이션에서는 'Observation drawing'이라고 해서 관찰한 것을 그리게 한다.
교외에서 그림 그리는 것을 무척 부끄러워했던 내가 방안에서 그린 그림이나, 보고 그린 그림이 담긴 스케치북을 내밀면, 마틴 지도교수가 왜 나가서 그림을 그리지 않느냐고 물었다.

나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내가 그림 그리는 것을 쳐다보면 부끄럽다"고 답했다.
그때 교수님은 "부끄럽다고? 너는 아직 그림 그리는 것에 배고프지 않구나"라고 야단쳤다.

어쩔 수 없이 스케치북을 가지고 교외로 나가 영국 캠브리지 곳곳의 역사적인 건물과 생동감 넘치는 삶을 스케치북에 담아왔다. 그제서야 교수님이 나에게 왜 직접 현장에 나가서 '살아있는' 그림을 담아오라고 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림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가면 우리 성지 곳곳을 스케치로 담아내겠다는 서원을 세웠다.

익산성지 '공회당'은 지난해 11월, 내가 7년간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성지를 담기 위해 처음으로 스케치북을 펼친 장소다. 원기100년 11월의 늦은 어느 날, 곱게 내려오는 눈꽃송이들을 피해 행여나 펜이 번질까 조심스럽게 시린 손을 호호 불며 그림을 그리는 동안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렀다.

공회당은 교단초기 불법연구회 시절에 대중집회 장소로 쓰였다. 이후 공회당은 선실 등 다양한 용도로 쓰여 왔다. 예전에는 총부 건물 중에 하나로 지나쳤던 공회당 앞에 스케치북을 펼치고 서니 새로운 느낌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서까래를 그리고 지붕을 얹으며, 지금 내가 보는 이 건물 하나가 얼마나 많은 시간과 얼마나 많은 인연과 얼마나 많은 법문들을 담아낸 곳인지 마음 깊이 전해진 날이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어쩌면 어느 시절에 누군가와 이곳에서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강연지 교무는 캠브리지 스쿨 오브 아트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했다. 저서로 〈A Journey To Me〉가 있으며, 청소년 교구교재, 원불교 달력 디자인, 어린이 영어동화책 발간 등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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