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인수 교도/수원교당
이제는 낯설지 않은 백세시대라는 말,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었다는 뉴스. 그렇기 때문에 생산인구인 청년세대를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 지도 오래됐다. 일본에서는 고령화, 저출산으로 인해 마을이 통째로 없어지기도 한다니 남의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는다.

'청년에게 힘내라는 말 대신 힘을 주세요' 서울시에서 청년들을 지원하는 정책을 만드는데 아이디어를 내달라며 만든 광고카피이다. 무심코 올려다본 지하철 안의 광고를 보며 '맞다, 이 말이다'라는 생각과 함께 가슴이 뭉클했다. 어딜 가나 청년이 화두다. 한편으로는 '교단은 어떤가?'라는 물음을 던져본다.

먼저 청년의 새로운 모습, 도전하는 모습을 믿어주고 응원해야 한다. 예전에 비해 물질은 풍요로워졌지만, 삶은 더욱 복잡하고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 시대 청년들은 실수에 관대하지 않고, 실패를 과정이라고 여겨주지 않는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 때문에 청년들은 새로워야 하고, 도전해야 한다. 그러면서 겪는 실수와 실패를 통해 단단해질 것이다.

또한 교법을 청년들 눈높이에 맞게 재해석할 수 있는 교화능력을 키우고, 청년들이 오고 싶어 하는 법회를 연마하고, 청년들이 흥미로워할 만한 활동을 개발해야 한다. LTE 시대에 맞춰 교화방법, 교화콘텐츠를 개발하려면 많은 시간과 투자가 필요하다.

설사 이렇게 노력한다고 해도 청년교화는 즉각적인 효과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보다는 청년들이 실패를 통해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고, 당장의 결과에 희비하지 않고 꾸준히 해나갈 수 있도록 주위에서 너그러운 마음으로 기다려줘야 한다. 이러한 작은 움직임들이 바탕을 이루고, 그 속에서 청년들이 성장한다면 원불교의 소중한 인재가 될 것이다. 아직은 성장이 진행 중인 청년들이지만 원불교가 새롭게 거듭날 수 있는 새로운 생각을 말하고, 실천하고, 도전할 수 있게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다음은 청년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고 함께 이야기해 줘야 한다. 수명이 길어지면서 생애주기 또한 길어졌다. 20~30대 청년들은 대학진학, 진로결정, 결혼 등 삶의 고민을 꽤 긴 시간 동안 하게 됐다. 고민과 함께 삶의 변화도 잦은 시기라 지속적인 신앙생활을 이어가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청년들과 맞닿아있는 삶의 고민은 신앙생활과 둘이 아님을 알게 해줘야 한다. 결정하기 어려운 일을 당할 때에는 결정될 심고와 혹은 설명 기도를 올리도록 안내해 주고, 경계 속에서 어찌할 바 모르고 헤맬 때는 본래 마음을 찾아가는 공부길을 안내해 자력이 없어 실천이 어려운 청년들에게 자신할 만한 법신불 사은의 은혜와 위력을 얻도록 옆에서 손잡아 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특히, 교당에서 청년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요즘 너희들의 관심거리는 무엇이고, 고민은 무엇인지. 청년법회를 통해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고민하고, 그들의 고민을 담은 설교를 해줘야 한다.

교무, 청년, 나 이렇게 3명이 청년법회를 본 시기가 있었다. 보통은 셋이서 법회를 보는데, 둘 중 한 명이 법회에 오지 않으면 일대 일 법회를 보는 상황이 된다. 지금 기억해보면 2년여 가까운 시간 동안 그랬던 것 같다. 그때 교무는 청년이 많지 않더라도 늘 그 자리를 준비했고, 그 시간에 우리는 기다렸다. 그 뒤에는 청년이 적다고 하여 일반법회에 편입해 법회를 보라고 권하지 않는 주임교무와 교감교무의 배려도 있었다. 그 시간을 지내온 그때의 나를 기억해 보면, 청년법회를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보다는 교당에 청년, 너희들의 자리가 있음을 늘 말해주고 있는 교무의 따뜻함을 느끼고자 했던 게 아닐까 한다.

언젠가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학교 시험, 면접 준비에 바쁘다며 한참 만에 법회에 온 청년에게 "오랜만이다"라는 말 대신 "왔니, 반갑다"라는 말을 건네 보라고. 얼핏 들으면 별 차이 없어 보이지만 오랜만에 마음을 내어 교당에 찾아온 청년에게 "반갑다"는 말은 따뜻한 마음의 표현이 된다고 했다.

어른들은 '청년' 하면 푸르고 활기차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 시대 청년들은 스스로 어둡고, 앞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을 걷고 있다. 미래에 대한 불안, 끝없이 경쟁사회 속에 낭만은 포기한 지 오래다. 그런 청년들에게 힘과 안식처가 되어 주는 곳이 교당이고, 인생의 갈피를 잡지 못할 때 방향로가 되어주는 것이 교전이다. 청년들에게 보내는 작은 관심이 그들의 희망찬 밝음을 켜는 스위치가 된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청년들에게 한 번 더 마음을 내어 응원과 관심을 보여 달라. 그렇게 성장한 청년들이 새 시대 원불교의 동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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