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를 만나 너무 감사해요"
갑작스런 가족의 병고, 신앙 더욱 깊게 해
뼈를 깎는 가족의 아픔 법문사경으로 극복

그의 집에 다다를 무렵, 족히 60년 이상은 될 듯해 보이는 키 높은 가로수들이 줄 지어 있다. 꽤 인상적이다. 각종 공사로 뿌리내리기 무섭게 옮겨져야 하는 도심 속 나무들과는 달리 한 자리를 지켜온 무언의 기품. 지난한 현실속에서 때론 무심하게 때론 치열한 자성의 회복력으로 살아냈을 나무들을 보며, 곧 만나게 될 신앙인을 떠올렸다. 그의 삶도 꼭 나무를 닮아있을 것만 같아서다.

그의 아파트에 들어서자 예상처럼 편안하고 푸근한 얼굴의 자타원 이자경 교도(75·慈陀圓 李慈京) 맞이한다. 남편 김제중 교도의 인연으로 원불교를 알게 된 그는 처음 자녀를 위한 마음으로 교당에 다녔다.

"결혼하고서 남편이 어느 날 종교를 가져야겠다고 말하더라고요. 그는 처음에 불교쪽이 맞을 것 같다고 했지만 불교는 산으로 가야 하고 어쩌다 한 번씩 법회를 보니, 매주 법회를 보는 원불교에 가야겠다며 광주 송정동에 있는 소촌교당에 나가더라고요. 그때가 원기67년이었죠"

이렇게 남편이 먼저 교당을 다니는 가운데 그 다음해에 광주 월산동으로 이사하게 되면서 남편과 아이들은 서광주교당을 다니게 됐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아이들이 교당에서 캠핑을 다녀오더니, 교무님과 약속을 했다며 저에게 교당에 가자는 거예요. 아이들이 엄마를 교당에 꼭 모시고 가겠다고 교무님과 약속을 한 거죠" 라고 원불교와 본격적인 인연을 맺게 된 연유를 소개했다. 이 교도는 그때 바로 입교를 했다. 이후 20여 년동안 빠지지 않고 교당에 다녔다. 그렇게 평생을 성실하게 남편, 아이들과 함께 원불교에 다녔지만 큰 시련이 닥쳤다. 남편이 원기96년 8월 뇌경색으로 쓰러지게 된 것이다.

그는 "심고와 법문 사경에 재미를 붙여갈 무렵 갑자기 남편이 아팠어요"라며 "당시 처음 병원에서 적절한 조치를 못해 병이 더 악화되고 말았지요"하고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남편의 초기 응급처지를 잘못하고 방치한 모 병원에 대해 자녀들은 소송까지 생각했지만, 이 교도는 생각이 달랐다.

"가슴이 찢어지고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었지만, 아이들에게 그러지 말아라고 당부했어요. 아버지 치료하는 데만 집중하자고요. 오로지 기도하고 모든 정신을 여기에 쏟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고 했다. 그는 뇌경색에 폐렴까지 왔던 남편을 위해 진정 해야할 일은 치료에 전념하고 남과 더 이상 척을 짓지 않아야 된다고 판단했다. 이후 남편의 병을 잘 치료하기 위해 광주, 안양, 서울 등 여러 병원을 전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러 지역 병원을 돌아다니면서도 교당 법회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법당에 들어서서는 오직 기도 일념을 모았어요 남편이 아프고 난 후로는 다른 기도는 안 하고 오직 이 자리에 설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하고 항상 이 자리에 설 수 있게만 해달라고 했지요."

당시 그는 강동교당으로 또 동안양교당으로 남편이 병원을 옮길 때마다 그 지역 교당을 찾아다니며 기도와 법회에 참석했다. 지금도 서울에 사는 아들집에 가면 신촌교당, 신림교당, 마포교당, 관악교당에 반드시 참석해 법신불 사은님과 약속을 꼭 지키며 법회에 빠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원기97년에 하늘이 내린 시련은 더 가혹했다. 둘째 아들이 밤길을 운전하다가 가드레인을 들이박아 장파열이 되고, 어린 손자는 양다리가 부러진 것이다.

"남편이 아픈 것과는 차원이 다른 고통이었어요. 이런 사고까지 당한 뒤로는 기도만이 절실했죠. 다행히 지금은 아들도 손자도 모두 완쾌했지만, 당시 뼈를 깎는 고통이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그를 지탱하게 해준 것은 '법문사경'이었다. 그는 "당시 울고 싶을 때, 짜증나고 너무 힘들어질 때 '법문사경'을 하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으면 잡념이 없어지고 마음이 평정되는 것을 느끼곤 했어요"라며 "대종사님 법문 속에 조금씩 위로를 얻어갈 수 있었고, 사경하면서 일심의 편안함을 느낄 수 있지요"하고 말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 힘이 된 법문사경은 원기98~100년 3년간 개근해 상까지 받았다.

"사경하면서 좋은 법문은 따로 적어가면서 공부 했어요. 사경 아니었으면 남편 병간호도 잘하지 못했을 정도였죠. 지금은 매일 아침마다 식구들을 위해 일원상서원문 독경과 기도로 축원을 올리는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또 일상수행의 요법을 철저하게 실행하는 데에도 노력하고 있고요."

그는 "남편이 아픈 뒤 철든 것 같아요"라며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돕고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된 것이죠"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가 늘상 하는 심고에는 반드시 아침에 심고할 때 남에게 피해 안주고 돕고 살 수 있도록 기도를 한다.

"원불교를 만나게 해 준 남편에게 너무나 감사하고 있어요. 대종사님 법으로 인생의 큰 곤란을 지혜롭게 넘기고, 법신불 사은님께서 가족들을 보살펴 주신 것 같아 너무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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