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미국 현직 대통령으로 처음 히로시마 방문
사죄 기대했던 일본, 사죄 아닌 애도 표한 오바마
잊혀지는 전범국가, 오히려 전쟁 피해국으로 기억

▲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히로시마에서 원폭피해자와 가족들을 만나 위로하고 있다.
히로시마를 찾은 오바마 대통령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원폭 피폭지 히로시마를 방문했다. 5월27일 히로시마를 방문한 오바마는 4마리의 종이학을 접어 2마리는 그를 맞이한 초·중학생에게, 남은 2마리는 자신이 기록한 방명록 옆에 놓았다. 그는 방명록에 "우리는 전쟁의 고통을 경험했습니다. 함께 평화를 확산하고 핵무기 없는 세계를 추구하는 용기를 가집시다"고 적었다. 종이학은 원폭 후유증으로 백혈병이 발병해 사망한 사사키 사다코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투병 중이던 사사키는 종이학을 천 마리 접으면 완쾌될 수 있다는 얘길 듣고 약 종이를 모아 964마리 학을 접다 병세가 악화돼 끝내 숨졌다. 이후 종이학은 원폭 피해의 비인도성을 고발하는 상징물로 자리 잡았다. 히로시마에 수학여행을 오는 일본 학생들은 어김없이 자신들이 접은 종이학을 사사키에게 바치고 있다.

이번 방문으로 오바마 대통령은 일본의 경제적·군사적 협력를 얻었다.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게 된 일본의 자위대는 군대가 됐고, 우방국인 미국을 도와 북한의 핵 위협으로부터 동북아를 지켜낸다는 명분을 내세워 언제든 군사력을 발휘할 수 있다. 미국은 일본이라는 카드로 중국세의 견제와 북한 압박에 하나의 문고리를 잡았고 군사무기 수출도 꾸준히 진행될 것이다.

또한 중국의 해양진출을 견제하기 위한 동맹국의 공조를 강화하고 중국을 고립시킬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히로시마 방문전 베트남에서 50년이 넘게 이어진 무기 금수를 해제했다. 이번 행보는 중국을 겨냥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결과적으로 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은 중국세의 확장을 견제함과 동시에 일본을 축으로 하는 동아시아 경제권을 다진다는 실리적 계산을 담았다.

아베 총리는 이번 오바마 대통령의 방문으로 지지율이 올랐고, 히로시마를 언급해 북한의 핵 억제에 힘을 모아야 한다는 주장 속에 집단 자위권의 명분도 살렸다. 집단자위권 용인 이후 일본의 재무장화에 대한 미국의 지원도 재확인됐다. 오바마는 과거사 인식을 문제 삼기보다 일본에게 힘을 실어줌으로써 아시아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임을 확인시켰다.

사죄 대신 애도한 오바마

오바마 대통령이 히로시마를 방문한 것은 일본의 입장에서 반가운 일이다. 원폭 피폭에 대한 미국의 미안함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사죄하지 않았다. 그는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을 찾아 헌화한 뒤 원폭 투하에 대해 "당시 판단이 옳았다"고 말해 이번 방문이 사과의 의미가 아님을 분명히 했다. 그는 이날 묵념할 때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꼿꼿하게 선 채 눈을 감았다.

그는 이날 연설문을 통해서 "71년 전 맑은 아침, 하늘에서 죽음이 떨어져 내렸다. 우리는 그날 숨진 십만 명의 일본인, 수천 명의 한국인, 십여 명의 미군 전쟁 포로를 애도하기 위해 이 자리에 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왜 우리가 이곳 히로시마에 왔는가"라고 반문한 뒤 "그들(희생자들)의 영혼이 우리에게 말한다. 그들은 우리에게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원폭 피해자들을 애도함으로써 원폭으로 민간인 폭격에 대한 정당성을 부정하지 않는 동시에 세계 유일무이한 원폭 가해자라는 찜찜한 도덕적 책임을 덜게 됐다.

전범국가 일본

일본은 전범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전쟁의 피해국으로 자신들을 묘사하며 은근 오바마 대통령이 원폭에 관해 사죄하지않은 것에 우회적 아쉬움을 드러냈다. 아사히 신문은 "사죄는 하지 않더라도 핵무기를 사용한 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인정하면 좋겠다"는 의견이 피폭자 사이에 많았다며 오바마 대통령이 그것에 대한 언급이 없음에 실망의 목소리가 나왔다고 전했다.

일본은 나치독일과 더불어 제2차 세계대전의 주 전범국이다. 그러나 일본은 종전 후 독일만큼 전범의 책임을 지지 않았다. 독일은 전범재판을 혹독하게 치르며 거대한 영토를 상실했고, 1300만에 달하는 독일계 주민의 강제 이주와 국토 분단의 아픔을 겪었다. 또한 자신들의 전쟁 범죄에 대해 사죄하게 됐다. 반면 일본은 쿠릴 열도와 러일전쟁 후 그들이 획득했던 사할린 남부를 소련에 반환한 것이 영토 손실의 전부였다. 오히려 자기네들의 역사적 근거를 제시하며 동북아 각국과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다. 전범국에게 영유권 주장을 위한 역사적 근거란 의미를 가질 수 없다. 철저한 전범 심판의 결과로 국가의 역사적 기원지인 '프로이센' 지역을 내놓게 된 독일의 경우를 보게 된다면 말이다.

과거 미국은 종전 직후 제국 일본의 이념, 정치제도, 대내외 경제 체제 등에 대한 전면적인 개혁을 준비했다. 특히 전쟁을 일으켰던 핵심 세력들을 철저히 응징하면서 일본 경제력을 악화시키고 다시는 군사적 부활을 꿈꾸지 못하게 하려 했다. 하지만 유럽에서 냉전이 본격화되던 1947년 그 정책의 기조가 변했다. 일본의 경제를 되살려 인도차이나 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 경제권의 핵심부로 삼는다는 계획이 우위를 점했다. 그러면서 일본인 주요 전범들은 하나 둘 석방되기 시작했다.

이런 미국의 일본 살리기 정책으로, 일본의 과거에 대한 반성은 양심있는 지식인들과 민간단체들만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일본은 점점 기억 속에서 전범 국가라는 역사보다 원폭 피폭국으로 전쟁의 피해국 이미지를 만들어가고 있다.

평화를 주장하는 미국과 일본의 과제

미국은 일본을 전범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오바마는 일본이 약간이나마 남아있던 전범 의식으로부터 벗어나는 데에 도움을 주고 오히려 2차 세계대전에서의 피해국처럼 연출해 줬다.

오바마가 전쟁의 억제와 세계의 평화를 위한 진정성이 있었다면, 일본이 스스로 지난 역사를 돌이켜 반성할 수 있는 길을 열었어야 했다. 과거 독일의 역사처럼 말이다. 독일처럼은 아니더라도 일본은 확실한 전범 국가로서 그 책임을 물어야 하고, 일본과 얽혀있는 역사의 나라들과 함께 풀어야 할 과제들에 접근했어야 했다.

일본 정부는 미국의 도움으로 자신만을 위한 과거청산을 했다. 정치와 외교 전문가들은 이 모습들에서 두 나라는 각국의 이익만을 생각했고, 그 이상의 평화와 반전의 가치를 발견할 수는 없었다고 평론한다. 오바마는 세계평화를 이야기하며 히로시마를 방문하고 원폭피해자들을 위해 애도했지만, 그것은 북한의 핵개발 견제와 미·일 동맹을 통해 얻게 되는 자기들만의 계산된 거래로 밖에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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